멈춘 세월, 봄은 아직도 시리다

글·사진 | 김정근 기자
세월호 참사로 외아들 성호를 잃은 최경덕씨(47)가 동거차도 움막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인양 작업선인 중국 상하이 샐비지호와 센첸호의 불빛이 말 없는 밤바다를 밝히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외아들 성호를 잃은 최경덕씨(47)가 동거차도 움막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인양 작업선인 중국 상하이 샐비지호와 센첸호의 불빛이 말 없는 밤바다를 밝히고 있다.

슬픔이 벚꽃처럼 흩날리는 팽목항에서 뱃길로 2시간 반을 달려가면 만나는 섬 동거차도. 주민이 200명도 채 안되는 이 작은 섬에 어둠이 내리면 산등성이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불을 밝히는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6㎞. 손을 뻗으면 금세라도 닿을 것 같은 바닷속에 세월호가 누워 있다. 인양 준비 작업이 시작된 지난해 9월부터 현장이 가장 잘 보이는 이 산등성이에 유족들이 움막을 치고 작업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인양 작업선 동승은 물론이고 현장 접근조차 거부당한 유족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다. 온종일 망원렌즈로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보이는 건 말 없는 바다뿐. 답답한 마음만 쌓여 간다.

유가족들은 3명씩 11개조를 편성해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움막에서 지낸다. 외딴 섬 산꼭대기에서 지내는 움막 생활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차디찬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 9명의 아들딸들을 떠올리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는 유족들. 좌로부터 승묵이 아빠 강병길, 하용이 아빠 빈운종, 성호아빠 최경덕씨.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는 유족들. 좌로부터 승묵이 아빠 강병길, 하용이 아빠 빈운종, 성호아빠 최경덕씨.

움막 안에서 최성호씨와 강병길씨가 세월호 인양준비를 살펴보고 있다.

움막 안에서 최성호씨와 강병길씨가 세월호 인양준비를 살펴보고 있다.

강병길씨가 인양선의 특이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강병길씨가 인양선의 특이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유족들이 텐트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거나 가족들과 통화하고 있다.

유족들이 텐트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거나 가족들과 통화하고 있다.

이들에게 바다는 상실과 슬픔, 고통의 기억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무섭고 끔찍한 기억과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속죄하는 마음입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우리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겁니다.”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벌써 2년이 지났다.

[포토다큐]멈춘 세월, 봄은 아직도 시리다(김정근 기자)

세월호 인양선인 중국 상하이샐비지컨서시움의 선박들.

세월호 인양선인 중국 상하이샐비지컨서시움의 선박들.

동거차도로 차와 사람을 실은 선박이 접근하고 있다

동거차도로 차와 사람을 실은 선박이 접근하고 있다

움막으로 오르는 산길에 동백꽃이 떨어져있다.

움막으로 오르는 산길에 동백꽃이 떨어져있다.

빈운종씨가 산아래 마을에서 지게로 날른 물과 식품을 움막안으로 옮기고 있다.

빈운종씨가 산아래 마을에서 지게로 날른 물과 식품을 움막안으로 옮기고 있다.

세월호 인양선체를 망원경으로 살펴보는 빈운종씨와 최경덕씨.

세월호 인양선체를 망원경으로 살펴보는 빈운종씨와 최경덕씨.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는 최경덕씨.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는 최경덕씨.

세월호 인양선인 중국 상하이샐비지호.

세월호 인양선인 중국 상하이샐비지호.

동거차도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

동거차도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

동거차도 산등성이 움막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다.

동거차도 산등성이 움막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다.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기 위해 동거차도에 세워진 움막.

세월호 인양선체를 바라보기 위해 동거차도에 세워진 움막.

동거차도 움막에 세운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우산.

동거차도 움막에 세운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우산.

인양선을 감시하는 카메라 앞에 세월호 리본이 흔들리고 있다.

인양선을 감시하는 카메라 앞에 세월호 리본이 흔들리고 있다.

해질녘부터는 폭우가 쏟아졌다. 100㎜ 이상 내린다는 예보를 전해줬지만, “그보다 더 큰비도 맞아봤다”며 느긋해했다. 저녁식사는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칫국과 깻잎, 멸치볶음, 김 등이 아이스박스 뚜껑에 차려졌다. 밑반찬은 안산집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다고 했다. 움막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입에 떠넣던 국물을 쏟기도 했다. 밥을 먹은 뒤엔 ‘부처손 차’가 나왔다. 1㎞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다 바위틈에서 캐왔다고 했다. 빈씨와 최씨는 차 대신 약봉지를 꺼내 털어넣었다. 빈씨는 지난해 초 어깨를 수술했고, 무릎과 허리까지 무리가 가면서 진통제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도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땀을 많이 흘려 약을 끊을 수가 없다.

잠시 흐르던 침묵을 깨고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요. 이런 짓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아들을 만나 정부가 한 거짓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파도 떠날 수 없는 유족들 - 동거차도 움막 아빠들의 하루(배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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