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바지락 반지락

전라도 어느 잡지에선 이런 상을 주었다는데 질로존상, 팽야오진상, 어찌끄나상…. 질로존상은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닐 것이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 질로존상으로 무지무지하게 맛난 물김치 한 사발. 거기다가 서해안 어디 항구들 근처에 가서 바지락죽을 끓여먹고 바지락전을 지져먹으면 비로소 ‘바지락바지락’ 몸이 깨어나는 거 같아. 껍데기 집에 인디언 문양을 저마다 새겨놓고 갯벌에 흔하게 살던 바지락. 동무들이랑 바지락을 캐며 놀기도 했지. 여기서는 바지락이라 않고 ‘반지락’이라 부른다.

나 어려서 이야기꾼 장로님이 그러셨지. “반지락은 말여. 원래 뻘구덩이에 안 살고 밭뙈기에 살았재. 그란디 하도 게으른 할마시(할머니)가 물을 안 주니께 쩌런 것도 쥔이라고 기둘리다 기둘리다 망달이 나부렀재. 백일정성으로 기도를 바쳤재. 그랑게 하늘이 감화를 받어가꼬 비가 솔찬이 내렸다등마. 반지락은 저그 앞바다까정 확~ 떠내려 가부렀재. 저실(겨울)이 오니라고 바람 끄터리가 차가운디도 물을 만낭게는 조아서 입을 짝~ 벌렸재. 오매 그란디 이거시 짠물 아닌갑서. 으짜쓰까잉 묵는 대로 내뱉었재. 묵으믄 뱉고 묵으믄 뱉고 안되겄다 싶어징께 봉창문을 딱 닫아걸어부렀재.” “그래서요?” “그걸로 끝이재 뭐여.” “에이 거지깔(거짓말).” “나가 느그들 놔두고 거지깔하긋냐.” “얘기가 싱겁잖아요. 더더 해주세요.” 그제서야 장로님은 씨익 웃으셨다. “싱거우믄 반지락한테 가서 입 좀 벌려보라고 그랴. 짠물이 나올 거시다. 땅금(땅거미)이 진디 질검나게 놀았으믄 날쌉게 집에들 돌아가그라잉.”

문득 바지락이 생각나 하루 먹을 치 사들고,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날쌔게 집으로 돌아왔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저지대>에서 읽었지.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가슴 밑바닥 저지대에 고여 있는 거라고…. 부레옥잠으로 가득한 늪을 건너거나 간이침대나 곡물자루에서 잤던 기억,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이토록 평생을 끈덕지게 휘감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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