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회 북핵 가면놀이는 그만!

이대근 논설위원
북한이 발사한 ‘화성-14’의 모습/ AFP=연합뉴스

북한이 발사한 ‘화성-14’의 모습/ AFP=연합뉴스

■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았다”

웃는 낯에 침 뱉은 북한

북한이 29일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에 떨어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 분위기를 깼다고 생각해서, 일본의 아베 총리는 북한이 일본을 직접 위협한 것 때문에, 미국의 트럼프는 유화적 태도를 보였는데도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것 때문에 모두 감정적으로 격앙되었다. 미사일 한 발로 한미일 3국에 교훈을 주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였으므로 이런 반응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북한의 화성-12형 발사는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예고 이후 북한이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고 경고한데 따른 나름의 행동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결코 미국으로부터 역습을 초래하는 도발을 할 생각이 없다. 둘째, 북한이 빈 말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고한 대로 다 하지는 않더라도, 칼을 뺐으면 호박이라도 베는 시늉을 한다. 셋째, 한미의 기대를 배반한다.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예고로 북한과 한미가 말의 전쟁을 치른 직후 잠시 관망기가 있었다.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의 규모를 축소하며 일부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자 이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북한도 잠시 추가 도발을 중지했다. 한미는 이를 긍정적 신호로 여기며 대화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한미는 꾹 참으려 애썼다. 그러나 북한은 기어코 화성-12형 발사로 한미의 웃는 낯에 침을 뱉었다.

북한에 쩔쩔 매는 트럼프

트럼프는 지난 17일 트위터에 “(북한이)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고 했다.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을 갖고 논다. 트럼프도 북한에 놀아나고 있다. 트럼프는 대북위협 발언도 하고 북한을 달래보기도 했다. 트럼프는 30일 다시 “대화는 답이 아니다”고 돌아섰다. 하지만 북한은 트럼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은 트럼프다.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다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트럼프를 흔들 수 있다. 김정은 앞에 트럼프는 화를 내다 미소 짓고 애를 태우다 폭발하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초강대국의 트럼프는 왜 최빈국의 하나인 김정은에 쩔쩔 매고 있을까? 부시, 오바마, 이명박, 박근혜 때문이다. 이들이 집권하던 긴 시간 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했다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지속했다면, 갑작스러운 관계 단절과 대북 제재는 북한에 상당한 고통을 안겨주고, 혹시 북한의 태도도 바꿀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에게는 다행스럽게 네 명의 집권기간 북미관계 단절하고, 남북교류 끊고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북한의 자생력을 키워준 것이다. 지금 북한이 대북 제재에 미동도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김정은이 내부 시장화를 묵인하면서 북한 사회는 과거의 극심한 식량난에서 벗어나고, 생산활동도 활발하다. 대북 제재를 강화한다 해도 그것이 안보를 포기할 만큼 경제적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체제가 경제나 안보냐 양자택일이 요구될 때 당연히 안보를 우선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체제, 그것도 항상 주변국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 북한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북한과의 대화는 공짜가 아니다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없다면, 외부세계가 북한에 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제재, 혹은 또 다른 제재, 제재 강화, 추가 제재뿐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 제재를 잘 견딜 수만 있다면, 북한은 역설적으로 행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단거리 미사일을 쏘다가, 중거리 미사일을 쏠 수도 있고,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쏘다가 잠시 쉰 뒤 다시 쏠 수도 있고, 상대가 계속 쏠 것이라고 여길 때 쉴 수 있고, 상대가 이젠 그만 쏠 것이라고 안심할 바로 그 때를 골라서 쏠 수도 있다. 쏘고 안 쏘고는 김정은의 마음이지 트럼프 마음이 아니다.

물론 북한이 보기에 트럼프가 마음에 들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할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트럼프는 북한의 마음에 든 적이 없다. 트럼프는 대화를 애걸하기도 했지만, 북한에게 대화는 공짜가 아니다. 트럼프는 대북압박을 하면서 혹은 압박 강도를 약간 낮춰서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대화를 않겠다는 북한과 대화하려면 선물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 북은 미사일 쏘는데 트럼프는 왜 트위터만 할까?

북한의 관심 끌지 못하는 트럼프

그동안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것은 죄다 미국이 과거에 했던 것, 그것도 실패한 것들이다. 트럼프는 지금 그걸 재현·반복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 것도 처음이고 북한을 상대하기도 처음인 트럼프로서는 자신의 대북 조치들이 모두 새롭게 보일 수 있다. 최대한의 압력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스스로 새로운 정책이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가끔 대화라는 단어를 쓰면서 대단한 발상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빌 클린턴 정부가 대화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 대화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런데 겨우 대화할 수 있다는 말을 해 놓고 뭔가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대화라는 것도 말 뿐이다. 트럼프가 한 새로운 시도는 오직 하루 이틀 사이에 오락가락한 것이다. 그건 어느 전직도 흉내 낼 수 없는 트럼프 고유의 행태이다.

북한 체제 전환, 북한 붕괴, 조기 통일, 미군의 휴전선 이북 진입의 의사가 없다는 미국의 약속은 북한을 전혀 유혹하지 못한다. 혹시 그런 제안을 20년 전쯤 했다면 북한의 귀가 솔깃해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스스로 체제 수호의 보검을 확보했다. 핵무기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체제를 지킬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당신 체제를 내가 지켜주겠다’니? 트럼프는 너무 늦었다.

과거 실패 반복하는 트럼프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지금 20년의 시행착오를 온 몸으로 겪고 있다. 압축 경험이라고 할까? 그게 빨리 끝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면 다행이지만, 임기 내내 과거 실패의 늪에서 헤맬 가능성도 있다. 대북정책 실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았다면, 불필요하게 실패한 과거를 되풀이 하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겠지만, 트럼프에게는 그런 지혜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쟁할 수도 없고, 제재해도 먹히지 않을 때 트럼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트위터 밖에 없다. 그게 트럼프가 트위터만 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트위터로 북한을 때린들 북한은 아프지 않다.

■ 북한은 미사일을 언제까지 쏠까?

운전석에 앉은 김정은

김정은은 일본 상공을 넘어 태평양으로 중거리 미사일을 쏜 뒤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전략군이 진행한 훈련은 미국과 그 졸개들이 벌려놓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일 따름이다.” 이런 말도 했다.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할 것이며 그에 따라 차후 행동을 결심할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또 쏠 수 있다는 경고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추상적으로 말하면,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구체적으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와 같은 것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는 이걸 거부했다. 이러면, 북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완성된 핵미사일을 한미의 코앞에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중거리 미사일,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고 마지막 난관인 탄두부의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을 타격할 능력을 보유하고 나서야 미국이 북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핵탄두 소형화도 해야 한다. 미국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2차 공격력을 확보하기 위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의 능력도 향상해야 한다. 미군 지원 전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이른바 반접근 및 지역 거부 전락(A2/AD Anti-Access/ Area Denial)에 따른 지대함 미사일도 개발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제재? 극한 압력?

이 능력을 완비할 시기가 이르면 내년, 아니면 후년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한창 개발 중이므로 북한도 언제 완성할지 모를 것이다. 어쨌든 그날이 오기까지,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능력 국가임을 한미가 실감할 때까지 핵실험하고 미사일을 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북한을 말릴 수 있는 국가가 없다. 한미일 정상이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견딜 수 없게 제재해야 한다”를 “극한까지 압력을 가해야 한다”로 수사를 조금 바꾸는 것이다.

물론 그것 말고 한미가 하는 것 한 가지가 더 있기는 하다. 중국의 등을 떠미는 일이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더 밀어붙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중국을 비난한다. 더 몰아붙일 수 있는데 안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수입품에 고관세를 물리는 등 무역보복으로 중국의 목을 조를 수 있지만,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미중관계를 파탄 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의 목을 조르지 않는 것도 북중관계를 파탄 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하지 못하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자기 일을 남에게 시켜서 마음에 들도록 깔끔하게 처리하는 경우란 본래 드문 법이다.

이런 것 말고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게 없다. 이건 북한이 고맙게도 한미가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 논설위원

■ 왜 북한이 미사일 쏘게 놔둘까?

북한 바꾸기전에 미국이 바뀌어야

북한 비핵화를 하자면 북한 변화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국도 변해야 한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유일 초강국이고 경제적으로도 최강국인 미국, 그리고 역시 강국인 일본, 한국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적대관계이다. 이런 주변 환경에서 북한이 무얼 할 것 같은가? 북한이 핵 및 미사일에 집착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아도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평화체제로 전환했다면 굳이 핵무장까지 하지 않았겠지만, 한미는 평화체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유가 있다. 한미는 한반도 기존 질서의 수혜자이자 기득권자이다. 한미는 중무장 상태,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번영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조건에서 쇠퇴했다. 당연히 한미는 현 상황을 유지하려 하고, 북한은 현상 변경을 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한미연합훈련 중단, 평화체제 구축을 북한이 요구하고 한미는 반대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한미는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배경과 역사적 과정을 무시하고 밭에서 잡초를 뽑듯 핵만 쏙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 그건 가능하지 않다. 비현실적이다. 밤송이에서 밤을 얻으려면 두 가지 방법뿐이다. 저절로 아람이 벌어져 밤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밤송이를 조심해서 깐 다음 밤을 꺼내는 방법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아람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밤을 갖고 싶은 쪽이 스스로 밤송이를 까는 수밖에 없다. 그게 싫다면 밤을 얻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북 제재만 외치면서 시간을 보내 봤자 시간은 북한 편이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얹고 재진입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핵 실험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한미도 북한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완전한 핵국가임을 선언할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지금이 이런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협상을 시작해도 부족하다. 핵실험을 한 국가가 스스로 핵을 포기한 사례가 없다. 그런데 한미의 대화는 오직 말뿐이다. 제재 강화만 반복하는데 이건 북한을 핵국가로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미는 북한이 마음껏 핵·미사일 개발하라고 시간을 내주고 있다.

북핵을 막으려면 지금처럼 북한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안보 환경을 바꿔야 한다. 한마디로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그걸 위해서는 한미가 기득권을 양보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아도 될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한미가 하는 것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북 제재는 도덕적이고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걸로 북핵을 막을 수는 없다. “열려라 참깨!”하듯이 “비핵화하라!”고 아무리 주문을 외어봤자 저절로 비핵화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미는 비핵화와 제재만 반복하고 있다. 성가시고 까다로운 협상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미는 이렇게 가면 놀이에 빠져 있다.

흔히 사형수는 사형집행 날짜가 다가와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만은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사면될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한미도 마찬가지다. 사형수처럼 눈앞의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있다. 곧 닥칠 일이지만,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을 그냥 이렇게 맞이해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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