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트럼프 방한을 환영함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의 단언컨대] 157화 트럼프 방한을 환영함

청와대의 간곡한 호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방한을 앞둔 지난 5일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시민들에게 간곡한 호소를 했다. “국민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 따뜻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우리 정부를 믿고 지켜봐 주시고,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일본정부도, 중국정부도 영국 정부도 이렇게 까지 세심하게 트럼프 환영분위기 조성에 나서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트럼프 국빈 방문 추진 소식에 많은 영국 의원과 시민이 반대했다. 하원 의장은 트럼프 의회 연설을 거부한다고 했고, 영국 시민 180만명은 트럼프 국빈방문 반대 청원 운동에 서명을 했다. 이런 영국 여론 때문에 트럼프의 영국 방문은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정말 내년에는 방문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트럼프가 내년에 방문하는 것도 반대했다. “많은 영국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이행하는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오는 데 우리 정부가 그를 위해 레드 카펫을 펼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우리가 트럼프를 환대하는 이유

한국인이 얼마나 트럼프를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모르지만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때는 하지 않던 국빈 대우라는 것을 25년만에 트럼프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환대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한국 정부가 당신를 왜 이렇게 극진히 모시는지 대강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가? 트럼프 당신은 매우 특별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 정상은 공조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한미 상호 방위조약은 상대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당신과 우리의 발이 서로 묶여 있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거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남북이 서로 군사적 충돌하지 않아도 한국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트럼프 당신이 대북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불가, 한국 시민들이 전쟁 대신 평화를 아무리 외쳐도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당신의 결심에 달려있다.

북핵만큼 위험한 트럼프

지난 8월 1일 린지 그레엄 미 상원의원은 트럼프로부터 들은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만일 (김정은이 ICBM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전쟁은 그곳(한반도)에서 일어날 것이다. 만일 수천 명이 죽는다면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레엄 상원의원은 김정은이 핵무기 탑재 ICBM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수백만 명이 죽는 전쟁은 불기피하며, 자신은 트럼프 대통령 말을 믿는다고 했다. 그레엄 의원은 또 미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충성’은 미국 국민에게 바쳐지는 것이므로 동북아 지역안정 보다는 미국의 국토안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은 한반도 전쟁에 관한 한 우리와 처지가 다르다. 피할 수 없다면 남의 나라에서 하는 전쟁은 해볼 만할 것이다.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은 그랬다. 특히 21세기 들어 미국이 치룬 전쟁은 미군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신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도 당신이나 미국시민과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행복을 찾고 불행을 피하려는 똑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미국인 총기 사고로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듯이, 당신과 미국인도 무고한 한국 시민이 재앙을 겪는 걸 싫어하는, 같은 세계 시민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확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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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는 많은 미국인, 주한미군이 있다. 그러나 미국을 사랑하는 더 많은 한국인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정치 집회에서 성조기를 빼놓지 않고 흔드는, 미국인 보다 미국을 좋아하는 이들 이 적지 않다. 이들 모두가 당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희생될 수 있다. 바라건대 미국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당신이 서울에서 만나는 한국인 한 명 한 명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방한 중 가슴으로 느끼면 좋겠다. 한국인 사이에 당신과 미국을 좋아하는정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당신이 그들을 구별해서 구제할 수 없으니 웬만하면 차이를 무시하고 세계 대통령으로서 한국인 전체를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서울에서 얼굴을 익히게 된 한국인들이 있다면 당신이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결정을 하게 될 때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러면 너무 쉽게 결정해서 당신이 심적 고통에 빠지는 일을 조금이라도 피할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은 왜 사드로 중국 압박하지 않았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는 한중관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중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드 배치는 미국정부의 정책이고 그걸 가장 반대하는 쪽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신이 한국정부를 밀어부처 배치를 한 것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압박했는데도, 당신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을 도와주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말로는 한국을 제재하는 중국에 따지겠다고 했지만, 적어도 한국이 보기에 중국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않았고, 중국을 따끔히 혼내주지도 않았다.

당신도 사드 문제로 미중간 대결하는 상황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미중이 사사건건 대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중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잘못했다고 북중관계를 중국이 파탄내기는 어렵다. 북한이 도발한다고 남북간 군사적 대결을 지속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모든 국가가 최고의 수준으로 북한을 압박해 모든 관계를 끝장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과 사사건건 대립할 수 없다면, 북중, 남북관계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트럼프 당신은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도 중국에 대해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그게 공정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당신은 공정하지 않았다. 한국인에 전쟁 위기를 부추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파기를 위협하면서 한국인의 혼을 빼놓고는 군수품 판매, 미국 상품 판매를 압박해왔다. 친구를 거꾸로 쥐고 흔들어서 떨어지는 동전을 줍는다면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 논설위원

당신처럼 한국인도 김정은 좋아하지 않아

당신은 한국, 한국인을 존중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당신의 한국방문을 환영한다. 당신이 우리의 처지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조금은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약간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신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북한의 행태를 매우 싫어한다. 아니, 70년간 온갖 일들을 겪어본 우리만이 북한의 나쁜 행동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지금 한미간에 부족한 것은 대북 적개심이나 북한 위협 인식이 아니라, 지금 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전략이다. 그러니 한국인의 대북인식을 너무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솔직히 한국인 만큼 북한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누가 있을까? 한국인이 북한에 대해 말할 때 조금이라도 경청해주면 어떨까?

한국인은 겁쟁이라서 전쟁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한국인이 겁쟁이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다. 구한말 일제에 맞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3•1 운동으로 중국인을 놀라게 했을 뿐 만 아니라 독재에 맞서 목숨을 바친 이들이 바로 한국인들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가 순전히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건 정말 북핵 해결에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완전히 굴복시키려면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 직전까지는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 문명 세계에서 한반도 전쟁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쓸 수 없는 카드로 문제를 풀려는 헛된 수고를 당신이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인은 트럼프 당신을 미워해서 전쟁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을 미워하지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전쟁 위험에 다가간 우리에겐 누가 곱고 밉고를 따지는 따위의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전쟁은 너무 위험한데다 문제 해결의 길도 아니기에 반대하는 것 뿐이다.

김정은이 서울와도 환영할 것

물론 당신 뿐 아니라 김정은이 서울을 방문해도 열렬히 환영할 것이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김정은이 예쁘거나 착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평화가 절실하다. 김정은 보다 당신을 더 믿고 싶다. 당신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데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각국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사령관 가운데 현장 시찰을 하지 않는 지휘관이 있었다. 현장을 찾아 병사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는 다른 사령관과 달리 그는 일선 병사를 만나지 않는 것이 군대 지휘의 관점에서는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굶주리고 병들고 지친 병사들을 보고나면 어떻게 적진으로 돌격하라고 재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위험에 처한 한국인을 만나고 나서도 전쟁으로 내달리라고 채찍질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트럼프 당신을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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