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의 인물탐구

국정감사 베스트의원 이재정-파괴력 있고 유쾌한 진보의 진수를 보이다

원희복 기자
이재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재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번 촛불혁명에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청와대의 움직임 역시 중요하다. 무능과 탈·불법의 증거이며, 시대를 평가할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 기록을 30년간 열어볼 수 없는 대통령기록물로 봉인해 버렸다. 재임기간의 진실을 잠시 감춘들 역사적 평결을 피할 수 있을까.

■비서실장 지시 문건 ‘필사’ 공개

그런데 한 국회의원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요즘 수석보좌관) 회의 시 비서실장 지시사항 문건을 ‘필사’해 공개했다. 역시 거기에는 박근혜 청와대의 무능과 편법, 그리고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2017년 국정감사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평가해도 아깝지 않다. 그는 초선의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비례대표)이다.

-청와대를 담당하는 운영위도 아닌 행정안전위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문건을 볼 생각은 어떻게 했나.

“국가기록원 기록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했다. 박근혜 정부 기록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관심이 있어 국가기록학회와 6~7차례 간담회와 토론회를 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행이 국가기록물로 지정하려 할 때 우리(기록학회와)는 ‘지정하지 말고 동결해 국가기록원으로 넘겨라, 지정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건이 정치적 공방이 되고 법도 공백이 있어 국가기록원이 등사를 안 해주는 조건으로 국회의원만 보게 한 것이다.”

-요즘 같은 ICT시대에 필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이 ‘고려시대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통에 숨겨오던 시대냐’. 어떻든 일일이 옮겨 적기 힘들었겠다.

“(하~하~하). 꼬박 이틀 걸렸다. 두 번째 날은 새벽에 출발해 세종시에 도착, 아침 9시 ‘땡’하면 필사를 시작해 밤 12시까지 꼬박 했다. 기록을 내가 보고 체크한 부분을 보좌관이 필사하는 방법으로 적어 왔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물도 안 먹었다, 그런데도 못 옮겨 적은 부분이 많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직접 ‘자료를 주라’고 요구하면 되지 않나.(국가기록원은 행안부 하부기관이다)

“지난여름부터 자료 요청을 독촉했다. 그런데 ‘분류가 끝나지 않아 끝나면 주겠다’고 계속 늦췄다. 국감이 임박해 할 수 없이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자료를 열람할 때 국가기록원 직원 3명이 사진촬영을 할까봐 옆에서 감시 아닌 감시를 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비서실장 지시문건은 2015년 3월 16일 이후 것만 있다. 이병기 실장체제 문건이다. 그런데 2013년 8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전임 김기춘 실장 시절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가 더 적나라하고 편·불법이 난무했을 것이다. 김기춘 실장은 ‘독일장교’란 평가를 받는 지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김기춘 실장 시절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등 주요 공안몰이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김기춘 실장 시절 문건을 찾았는데 나중에 이관이 돼 아직 파일 분류가 안 됐다고 해 보지 못했다”면서 “그 당시 문건이 이관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지금도 매일 그 자료 분류가 다 됐느냐고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비보도를 조건으로 몇 가지 사실을 말했다. 이는 물증만 확보되면 정국을 강타할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공개한 문건을 보면 역사교과서와 종북몰이,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와 세월호 참사 대응에 관한 논의가 많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종북좌파’라는 말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또 ‘좌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면 역사인식이 어느 시절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문건을 보면 당시 청와대에서 국정교과서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회의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데, 거의 매 회의마다 점검했을 정도다. 나머지 4분의 1은 박근혜 개인의 심기관리 내용이다. 이는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시발이 된다.”

이재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재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기춘 실장 시절 문건 찾으면 폭발력
이 의원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비서실장 지시사항을 공개했을 때 야당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공개한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을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흐지부지됐다. 국정감사 마지막날 야당이 ‘우리도 참여정부 기록물을 보지 않겠으니 여당도 더 이상 과거 청와대 문건을 보지 말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당 간사가 이를 전하면서 전체적으로 수긍하고 넘어갔다”면서 “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국회의원끼리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이 자료는 국회의원만 아닌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볼 수 있어야 할 기록이다. 야당은 자꾸 ‘과거만 들춰낸다’며 당장 언론의 보도만 생각하는데, 앞으로 많은 정치·역사학자들의 냉엄한 평결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역사적 교훈을 얻으라고 많은 예산을 들여 국가기록원을 만들어 국가기록물을 관리·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74년 대구 출신이다. 대구 성화여고와 경북대학교(법대)를 나왔다. 그는 “아버님 사업(장사)에 기복이 심해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10개월 만에 옮기는 등 사글세방을 전전했다”면서 “그래서 초등학교만 대구에서 서울까지 5~6군데나 전학 다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6년, 중학 3년 등 온전한 교우관계를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고 고백했다.

이 말을 들으며 기자는 20년 전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생각났다. 이 전 총재 역시 공무원인 부친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 광주와 청주 등 전학을 많이 다녔고, 이것이 ‘새로운 세상과 맞닥뜨려 생존하는 법’을 체득한 기회가 됐다. 어린 시절 잦은 전학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인생에 득이 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재정 의원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부터 잦은 이사와 전학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과 맞설 수 있는 자질을 단련시켰을 수도 있다. 이 의원의 장기인 누구에게나 금방 가까워지는 ‘전천후 적응력’은 이때 체득된 것이 아닐까.

그는 1998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취업할 직장은 없었다. 그는 “친구 대부분이 졸업을 연기하고, 공무원시험에 몰렸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신림동 고시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사법시험도 뒷바라지, 즉 재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그는 “고시는 재력이 우선이고 다음은 체력, 그리고 실력은 마지막”이라며 “주변에서 내가 합격하리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보란 듯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 ‘죽도록’ 공부했을 것이다. 2005년 사법연수원을 마친 그는 ‘당연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가입했다. 그는 “야성이 강했던 아버지는 민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다”면서 “그래서 변호사가 되면 당연히 민변에 가입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민변에서 <나는 꼼수다> 김어준 변론 등 많은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 중 2007년 사진작가 이시우 국가보안법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사건 중 처음 했던 사건이다. 공소사실만 180여개나 돼 10여명의 민변 변호사가 나눠 변론을 맡았다. 내가 맡은 부분이 사진의 예술성과 국가보안법 부분이었다. 그때 이정희 변호사(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처음 봤다. 주심변호사를 맡은 이정희 변호사는 10명의 변호사가 맡은 분야를 모두 검토하고 총괄하면서 각 변호사의 독자성도 인정해야 했다. 보통 리더십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 저런 선배처럼 되나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무죄를 받아냈다.”

이재정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이재정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초선으로 원내대변인 임명 파격 대우
그는 자신이 변론한 사건 중 이명박 정권의 상관모욕죄 사건은 ‘미안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육군 대위가 트윗에 이 대통령을 모욕해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그는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재판에서 졌고, 전도유망하던 군인은 옷을 벗었다. 그는 “다른 변호사를 만났으면 반성한다고 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권유했을 것”이라며 “그 변론으로 나는 유명해졌지만 그 군인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시우 사진작가 국가보안법 사건을 맡았다면 유엔군사령부나 주한미군, 정전협정 등에 전문가 아닌가.

“국가보안법 사건을 변호하면 ‘이재정도 NL(과거 운동권에서 민족해방 계열)이야?’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민변이나 시민사회단체도 통일문제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이 소수인 양 보는데 그렇지 않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변론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지만, 통일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응당 했어야 했다.”

-북·미 간 평화협정 제안자이기도 하고 그 행사 사회도 봤다. 최근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법하다. 마침 오늘(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온다.

“당연히 내 입장이 있다. 언제 어떤 발언을 통해 관철시키느냐는 것이 다른 점이다. 효순·미선 사건 10년 가까이 사회를 봤고, 국회의원이 된 작년과 올해는 참석만 했다. 내가 행사만 있으면 사회를 보는 민변의 ‘사회주의자’였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사회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영리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는 2012년 19대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에 참여하면서 처음 정치를 접했다. 그는 “그렇게 비난을 받으면서 힘들게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이해되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원서를 냈다. 그는 “다른 후보들이 모두 수권정당 얘기를 할 때 나는 수권정당되기 전 2년의 강한 야당을 책임지겠다”는 말로 공천심사위원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위원 투표에서 여성 1위로, 결국 비례대표 5번을 배정받았다. 표창원·박주민 의원이 ‘특채’라면 그는 당당히 실력을 통한 ‘공채’였던 것이다.

그는 초선의원으로 원내대변인에 임명되는 파격적인 대우도 받았다. 그는 요즘 소방청 독립과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막바지 자치단체장이 반대하고 있지만 ‘신분은 국가공무원, 인사·지휘는 자치단체장’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는 또 전자정부와 빅데이터의 4차 산업시대에 소홀하기 쉬운 개인정보 보호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민변 변호사 할 때는 국가·사회에 대한 고민과 돈벌이 고민을 병행해야 했는데 여기 왔더니 국가·사회 걱정만 해도 세비를 준다”면서 “국회의원보다 10배나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민변 변호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일보다 국회의원 일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정치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지역에서 재선을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 결정할 문제’라고 ‘여유’도 보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주 웃었다. 결의와 고뇌에 찬 표정으로 국가보안법에 정면으로 맞서던 변호사 시절 모습과 딴판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세워놓고 ‘무능한 바보를 선택하겠느냐’고 조롱하고, 야당의원 시위대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던 그의 의정활동은 때로는 퍼포먼스 같아 보인다. 파괴력 있지만 아름답고 유쾌한 진보, 그는 그런 ‘이재정표 정치’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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