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상식·학식 갖춘 가이드와 ‘봄 산책’

김유진

지난해 나온 개정판 서문엔 “촛불집회, 경이롭고 감명적”

순례·행진 등의 모든 걷기를 문사철과 경험으로 풀어내

[김유진 기자의 크로스 북리뷰]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상식·학식 갖춘 가이드와 ‘봄 산책’

리베카 솔닛의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페미니즘 도서 열풍에 불을 지핀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 등이 아닐까요.

그런데 리베카 솔닛을 ‘페미니스트 작가’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방대한 작품세계에 대한 실례일지도 모릅니다. 1988년부터 글을 써 온 그는 환경, 미국 서부와 원주민 역사, 민중의 저항 운동, 사회 변화, 재난과 희망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지금까지 17권이 넘는 책을 펴냈고, 반전·탈핵 운동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정적인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걷기의 인문학>(반비)은 솔닛의 인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원제는 <Wanderlust>로 2000년 4월 미국에서 출간됐고, 국내에는 2003년 <걷기의 역사>로 초역됐다가, 2017년 개정판 <걷기의 인문학>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솔닛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난해 한국인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며 촛불집회를 언급했습니다. 2017년 8월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솔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좌절한 미국인들을 위해 “촛불집회를 배워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걷기의 인문학>은 역사·철학·문학·예술비평을 넘나들며, 걷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순례·행진·축제·혁명 등 걷기의 여러 형태들부터, 정원이나 도시 등 걷는 장소, 걷는 사람들, 걷기에 관한 예술 텍스트, 여성 등 소수자들이 자유롭게 걷기 위한 사회적 조건 등을 망라합니다. 이와 함께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일종의 걷기와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미국 인터넷매체 살롱은 이 책을 “굉장한 학식과 상식을 함께 갖춘 가이드가 이끄는 여정”에 비유합니다.

리베카 솔닛. ⓒAdrian Mendoza

리베카 솔닛. ⓒAdrian Mendoza

작가로서 솔닛이 남다른 점은 그가 오래전에 쓴 책들이 다시금 새롭게 젊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인데요. 2017년 8월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은 트럼프 당선 이후 “괴짜 에세이스트 솔닛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진보의 아이콘이자 현명한 여성 원로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정작 솔닛 자신은 이런 명성에 대해 담담한 편입니다. 비슷한 시기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집에 혼자 있기를 즐기는 내성적인 사람”이라며 “페미니스트 산문계의 스티븐 킹이 되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걷기 좋은 봄날입니다. <걷기의 인문학>을 통해 솔닛의 진면목도 만나고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인 걷기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게 된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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