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삶, 농촌엔 전업농부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박송이 기자

◆“농사 늘리는 대신…직접 키워 요리하는 식당 냈죠”

‘꽃비원’ 정광하·오남도씨 부부

3일 충남 논산에서 반은 농사짓고 반은 다른 일을 하는 ‘반농반X’의 삶을 살고 있는 부부 정광하·오남도씨, 오씨의 동생 경희씨(왼쪽부터)를 만났다. 이들은 농사를 지으며 식당 ‘꽃비원홈앤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3일 충남 논산에서 반은 농사짓고 반은 다른 일을 하는 ‘반농반X’의 삶을 살고 있는 부부 정광하·오남도씨, 오씨의 동생 경희씨(왼쪽부터)를 만났다. 이들은 농사를 지으며 식당 ‘꽃비원홈앤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귀농 7년차 ‘자급자족 소농’
“힘닿는 만큼만 직거래 판매 좋아하는 일 병행하며 자립”

“콩싹 냄새가 나네요.” 농장에 들어서자 오남도씨(41)가 말했다. “이게 줄기콩인데 자라면서 콩 비린내가 나거든요.” 오씨는 쑥 올라온 줄기콩을 가리키며 말했다. 농장 입구에는 줄기콩을 비롯해 토마토, 감자, 양파 등 밭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농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지지대를 받친 배나무들이 열매를 키우고 있다. 올해로 여섯 살 된 나무들이다. “작은 묘목을 가져와 키웠는데 이젠 많이 자랐죠. 배나무는 20년 이상 재배할 수 있어요.” 남편 정광하씨(38)가 묘목의 태를 벗고 조금씩 굵은 나이테를 키워가고 있는 배나무를 보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3000평 규모의 이 농장은 정광하·오남도씨 부부가 운영하는 ‘꽃비원’이다. 평범한 작은 농장이지만 ‘자립’ ‘적정’ 등 이들 부부가 추구하는 소농의 가치가 자라고 있었다. 지난 3일 충남 논산시에 위치한 꽃비원을 찾았다.

“전문 농부들이 보면 저희 농사짓는 게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이제는 농사일이 제법 손에 익은 귀농 7년차 농부지만 규모나 수익 면에서는 ‘전문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정씨가 말했다. “저희는 소농이고 가족농이에요. 저와 아내 둘이 농사짓고 가끔 가족들이 와서 도와주시죠. 과수원 규모 5000평 정도를 소농이라고 하고 2만평 정도 되면 대농이라고 해요. 거칠게 평균 소득을 내면 과수원 1000평에 연소득 1000만원 정도 나온다고 해요. 저희는 과수원만 봤을 때 2000평이니까 수확량도, 연수익도 많지 않아요.” 그러나 땅을 넓히고 수확량을 늘려 수익을 많이 내는 대농이 정씨의 귀농 목표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익을 증대하는 것보다 자립을 하고 적정규모를 유지하는 소농의 삶이 정씨의 목표였다. “귀농하고 싶었고 시골에 와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작물을 현재 90가지 정도 키워요. 다품종 소량생산이죠.” 농산물 판매는 직거래로만 한다. 농사 규모가 작다 보니 유통망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한 달에 2번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배송해주는 ‘꾸러미’ 서비스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마르쉐’에서 농산물을 판매한다. 그러나 이 또한 무작정 규모를 늘리지는 않는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적정 규모의 면적이면 꾸러미 고객을 20가구 이상 할 수 없더라고요. 30가구까지 늘렸다가 10가구를 줄였어요.”

정광하씨가 귀농을 결심한 건 2011년이었다. 과수원 농사를 하는 부모님 아래 성장한 정씨는 부모님께 도움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농고를 졸업한 후 농대에 진학했다. 거기서 아내 오씨를 만났다. 둘 다 농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졸업 후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었다. 정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농산물 유통업체에 취직했다. “지금의 농산물 유통시스템 안에서 농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먹거리와 생산자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죠. 미국으로 건너가 그쪽 유통업체에서도 일했지만 회의감은 가시지 않았어요.” 정씨는 자신의 직업과 도시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귀농을 고민했다. 농사를 짓되 자급자족을 하고 싶었고 생산된 농산물의 가치를 농부가 배제된 유통시스템에 내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5000평 미만으로 농사를 짓고 ‘꾸러미’ 직거래와 ‘마르쉐’ 장터를 통해 소비자를 직접 만나 소통하기로 한 건 이 때문이었다.

3일 충남 논산 꽃비원에서 정광하씨가 손수 키운 배를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3일 충남 논산 꽃비원에서 정광하씨가 손수 키운 배를 둘러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정씨에게 농촌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식량기지가 아니다. 자연이 주는 정서 그 자체를 전달하고 이를 재가공해 보여주는 것 또한 농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목화꽃이 피고 송이가 생겼다가 터져 솜이 되는 과정들을 보고 싶다고 해서 목화를 심었어요. 마침 ‘마르쉐’가 있어 목화송이를 내놨는데 오신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죠. 농산물 그 자체를 보여드리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귀농 3년차 때 농장 근처에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요리를 판매하는 ‘꽃비원 키친’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농장에 좋은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쉬어갈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는 거죠. 3년차 됐을 때였는데 농사일도 손에 익고 정말 열심히 판매도 했죠.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농사 규모를 늘려야 할까 하다, 식당을 해보기로 했어요. 소농이 1차 생산물로만 농가를 유지하기에는 힘들고 생활유지가 쉽지 않거든요. 농사는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면서 다른 관심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아내가 식당을 열었어요.”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손님들이 농장을 체험하고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수입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할 수 없게 줄었지만, 주변에는 농촌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부부의 모습에 ‘꽂힌’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인근에 ‘시골에꽃친(꽃비원친구)’그룹이 형성되기도 했다. “도자기 하시는 분도 있고 1인 가게를 여신 분도 있어요. 다들 시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가면서 자립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죠. 저희가 했던 방식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농촌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도시와 농촌도 더 많이 소통하는 게 앞으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것이라고 봐요.”

◆“농부의 투박한 진심, 도시에 닿도록 풀어내야 해요”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2일 서울 송파 먹거리창업센터에서 만난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그는 농촌과 도시의 거리를 좁히는 기획자를 자처한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일 서울 송파 먹거리창업센터에서 만난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그는 농촌과 도시의 거리를 좁히는 기획자를 자처한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소비자, 농가에 크라우드펀딩
건강한 농산물 돌려받는 방식
“거래 아닌 신뢰 주고받는 거죠”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38)는 스스로를 ‘농촌기획자’라고 소개한다. “농촌이라는 영역에서 기획이라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농촌과 도시 간 문화적·심리적 거리는 멀다. 서로 분리된 도시와 농촌을 잇기 위해서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이해도 어렵고 도시가 농촌에, 농촌이 도시에 요구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잘 이어지지 않아요. 중간에서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죠.” 도시와 농촌을 잇는 기획을 궁리하다 만든 게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차용한 ‘농사펀드’였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먹거리창업센터에 위치한 농사펀드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2014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농사펀드는 다음해인 2015년 정식 출범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인 영농자금을 농가에 전달하면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농부가 지은 농산물로 상환받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농부가 영농자금에 대한 걱정 없이 예측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기르는 것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판매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다면 농부는 농사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죠.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농부가 정성 들여 키운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고요.” 농사펀드에는 포도, 복숭아, 자두 등 제철과일부터 양파, 감자, 마늘, 쌀 등을 비롯해 치즈, 식혜 같은 가공식품까지 마련돼 있다. 예컨대 한 농가의 포도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면 7월부터 10월까지 갓 수확한 포도를 네 차례에 걸쳐 받을 수 있다. 농산품마다 다르지만 유통 과정 절감으로 농부는 25%의 중간유통비를 줄이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받을 수 있다. 출범 당시만 해도 참여 농가 4개, 펀딩 참여자 수 2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00개의 농가와 1만7000명이 펀딩에 참여한다.

농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크라우드펀딩 ‘농사펀드’. 홈페이지 캡처

농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크라우드펀딩 ‘농사펀드’. 홈페이지 캡처

박 대표는 도시와 농촌을 잇기 위해서는 단순한 ‘거래’를 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해와 신뢰를 위해서는 농산물을 생산한 농부가 누구인지, 농업철학은 무엇인지를 알리는 게 필요했다. 첫 번째 과정은 농사펀드의 농부 선정 기준을 알리는 것이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농부, 흙에서 농사짓는 농부, 친환경 농사로 차츰 전환할 의지가 있는 농부 등이다. “사전 조사를 하고 인터뷰도 하고 농장을 직접 방문합니다. 생산과정이나 농장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거죠.”

선정된 농부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알린다. 생산자는 자신의 농산물과 농업철학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소비자는 농부와 농사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농부 한 분이 발효곶감을 만드세요. 일반 곶감과 다르게 4년 숙성을 시키는데 모양이 예쁘지 않고 색도 거뭇거뭇해요. 당분 성분이 밖으로 나와 결정이 만들어진 부분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보이죠. 이런 것을 소비자들이 모르니까 좋은 상품이라고 해도 좋지 않게 보는 거죠.” 박 대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잘 아는 게 최고의 인증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못생겨도 이게 왜 좋은 농산물인지 알게 되죠. 좋은 식재료나 제철 먹거리를 찾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고 또 내 소비가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이 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죠.”

박 대표는 농촌과 도시를 잇는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농사펀드는 그 고민 끝에 얻은 하나의 결실인 셈이다. 물론 실패한 경험도 있다. “귀촌한 문화예술가와 원주민들이 서로 겉도는 지역에서 농촌 ‘레인부츠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문화예술가들이 농촌 어르신들이 일할 때 쓰는 장화를 리폼해주는 프로젝트였어요. 행사는 잘 마쳤지만 일회성으로 끝났어요. 예술가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관계 개선도 그때뿐이지 지속성이 없더라고요.” 실패했지만 농촌과 도시의 문화를 잇고 싶다는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농사펀드에서는 농산물 외에도 농사나 농촌문화를 체험하는 펀드도 개발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때 ‘도시에도, 농촌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에 서 있다’는 게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농촌에서는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있어서 고민되는 순간들이 있었죠. 지금은 이 영역도 존재해야 한다고 봐요. 이런 쪽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농촌 문제와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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