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그럴싸, “곤충”에 아뿔싸… 아직 설익은 고기의 미래

전현진 기자

곤충의날 ‘식용곤충’으로 만든 페이크 미트 먹어봤더니

지난 4일 서동률(왼쪽 상단 사진 오른쪽)·남유섭 셰프가 서울 종로구 한 공유주방에서 식용곤충인 갈색거저리 애벌레의 단백질로 만든 다양한 페이크 미트(가짜고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선보인 햄버그스테이크, 미트소스 스파게티, 햄버거 등에는 모두 페이크 미트가 사용됐다. 김창길 기자

지난 4일 서동률(왼쪽 상단 사진 오른쪽)·남유섭 셰프가 서울 종로구 한 공유주방에서 식용곤충인 갈색거저리 애벌레의 단백질로 만든 다양한 페이크 미트(가짜고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선보인 햄버그스테이크, 미트소스 스파게티, 햄버거 등에는 모두 페이크 미트가 사용됐다. 김창길 기자

이 햄버그스테이크는 고기빵 맛이 난다. 미국에선 다진 소고기에 빵가루를 넣어 빵처럼 만든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데, 사실 먹어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비슷해 보였다. 반으로 썰어 놓은 단면을 보고 빵보다는 떡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색과 씹었을 때의 식감이 떡과는 달랐다. 단백질이 가득한 빵 같았다.

한 입 먹어보면 ‘그럴싸한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식용곤충을 이용해 만든 페이크 미트(Fake meat·가짜고기)라는 걸 알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한 입 먹고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한참 망설였을 것이다. 맛이 낯설다. 비교할 만한 맛과 향이 결국 생각나지 않았다. 밀도가 높아 찐득하고 폭신한 빵 같다. 진짜 고기로 만든 햄버그스테이크와는 달랐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공유주방에서 식용곤충 식품소재 생산업체 주식회사 케일의 페이크 미트 품평회가 열렸다. 이날 품평회에선 햄버그스테이크 외에도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햄버거가 감자튀김, 샐러드와 함께 나왔다. 소나 돼지 등 고기는 일절 쓰이지 않았다. 고기의 형태를 띤 재료는 모두 식용곤충을 사용해 만든 가짜 고기다.

풍부한 동물성 단백질로 영양가 높아 육식 대체할 ‘미래 식량’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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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고기 선두주자 미국 ‘비욘드 미트’ 진짜 고기 같고 맛도 탁월
편견·거부감 현실적 한계…육식에 길들여진 입맛 바꿀 ‘별미’ 숙제

밀웜.

밀웜.

스파게티에는 시판 토마토소스에 잘게 다진 페이크 미트가 들어갔다. 익숙한 향을 내는 소스와 함께 먹으니 다진 소고기를 넣어 만든 것과 같은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햄버거 패티는 익혔을 때 겉면이 바삭하게 익은 모습이나 질감이 떡갈비를 연상케 했다. 감자튀김에는 치즈맛이 나는 양념가루가 뿌려졌는데, 이것도 식용곤충을 사용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양념감자 맛이 났다. 샐러드에는 바삭한 식감을 내기 위해 잘게 부순 건빵이 올라갔다. 식용곤충 단백질 성분이 들어간 건빵이다. 일반 건빵과 비슷하지만 단백질 함량이 더 높고 담백하다.

■ 곤충의날에 먹어본 ‘식용곤충’

이날 페이크 미트 품평회는 제1회 곤충의날을 앞두고 마련됐다. 지난해 ‘곤충산업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9월7일이 곤충의날로 지정됐다. ‘곤충의 환경적·영양학적 가치와 곤충산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곤충산업은 지난해 기준 ‘반딧불이 축제’ 등 지역행사(1218억원)나 장수풍뎅이 같은 애완용 곤충(490억원), 꿀을 생산하는 양봉업 등(457억원)이 가장 큰 시장규모를 이루고 있다.

곤충은 이밖에도 식품, 의학, 사료, 화장품 등 분야에 활용된다. 곤충산업 분야 중 식용곤충 시장의 성장세가 가장 가파르다. 2011년 1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식용곤충 시장규모는 2018년 기준 430억원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에는 508억원, 2030년에는 992억원 규모로 매년 약 21%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곤충의날 제정 목적인 곤충의 환경적·영양적 가치는 식용곤충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곤충은 풍부한 동물성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등이 포함돼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사육할 때 필요한 기간(2~4개월)이 짧고 자원 소비량도 적어 환경적 가치도 뛰어나다.

곤충이라고 모두 먹어도 되는 건 아니다. 머리·가슴·배로 나눠져 날개가 달린 곤충은 주변에 너무 많다. 모기, 파리, 벌, 바퀴벌레, 하루살이, 잠자리 같은 곤충은 함부로 잡아먹으면 곤란하다. 1990년대까지도 동네 공터에서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뜯어 살코기를 먹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된다.

국내에선 7종의 곤충이 식용으로 등록돼 있다. 메뚜기, 백강잠(한약제), 식용누에, 갈색거저리 애벌레, 쌍별귀뚜라미, 장수풍뎅이 애벌레, 흰점박이 꽃무지 애벌레(굼벵이)는 먹어도 된다. 용도도 다양하다. 한약제 등으로 쓰거나 환이나 진액으로 만들어 먹는다. 건조분말로 만들어 음식에 넣어먹기도 하고 쿠키나 소면을 만들 때 쓰기도 한다. 단백질 흡수율이 높아 암 수술 환자 등의 회복식으로도 쓰인다. 귀뚜라미는 숙취해소용 음료에 사용된다.

식용곤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밀웜(Mealworm)이다. 갈색거저리의 애벌레가 밀웜이다. 갈색거저리는 딱정벌레류의 곤충이고 유충인 애벌레만 식용으로 먹을 수 있다. 애칭이 ‘고소애’다. 고소한 애벌레라는 뜻인데 고슴도치 같은 소형 애완동물이나 파충류 등의 사료로 많이 쓰인다. 튀기면 새우 과자 맛이 나고 생으로 먹어도 땅콩버터 같은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한다. 이날 먹은 페이크 미트도 밀웜으로 만든 것이다.

밀웜으로 만든 페이크 미트에선 고소한 맛이 분명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향과 맛이 났다. 식용곤충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형태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먹으면 ‘곤충식’이란 걸 알기 힘들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를 닮은 곤충을 통째로 갈아 단백질바를 만든다. 영화 속에 등장한 곤충식은 식용곤충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충을 갈아서 요리에 사용하진 않는다. 오히려 유충인 애벌레를 사용해야 사육기간이 짧고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아 경제적이다.

페이크 미트는 물과 효소를 이용한 가수분해 기법을 사용했다. 따로 추출한 단백질 원료를 다른 재료와 배합해 고기의 맛을 구현했다. 밀웜에서 추출한 단백질은 아기가 먹는 유아식 같은 형태를 띠기도 하고 수분을 모두 제거하면 분말형태가 된다. 밀웜은 지방도 많아 참기름처럼 기름만 따로 뽑아낼 수도 있다. 이 기름을 이용해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기도 한다.

이날 미국의 식물성 고기 스타트업 ‘비욘드미트’의 햄버거 패티도 함께 맛봤다. 식용곤충으로 만든 것과 식물성 재료로 만든 페이크 미트의 맛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2009년 설립된 비욘드미트는 지난 5월 상장해 시가총액 10조원을 넘겼다. 오랜 연구를 거쳐 개발됐고 지금은 대체육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비욘드미트의 패티는 익히기 전엔 생고기로 만든 것과 유사한 빨간빛이 감돌았다. 진짜 고기와 비슷한 색을 잡은 것이 성공 요인 중 하나다. 달군 팬에 올려놓으면 실제 고기처럼 갈색으로 익어간다. 고소한 맛과 적당히 씹히는 식감도 의외로 좋다. 입안에 넣었을 때 푸짐한 만족감도 줬다. ‘고기 맛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먹을 만하냐’고 물으면 긍정적인 대답을 할 것 같다. 채소를 넉넉하게 갈아 넣은 빈대떡 같다.

식용곤충으로 만든 페이크 미트는 비욘드미트의 것과 비교하면 완성도가 떨어졌다. 고기 형태로 빚은 모양이나 색감이 거액의 투자를 받아 장기간 연구한 비욘드미트의 제품과 단순히 비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날 맛본 밀웜 단백질로 만든 페이크 미트는 두 가지 종류였다. 햄버그스테이크로 만든 건 가공·유통을 용이하도록 밀웜 단백질 함량을 15% 정도로 낮게 조절한 것이고, 햄버거 패티는 실제 고기의 맛과 비슷하게 구현하기 위해 단백질 함량을 50%가량 높인 것이다. 목표하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첨가물의 배합 비율이 서로 다르다.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기까지 2년가량 배합 비율을 조절해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햄버거 패티로 쓰인 페이크 미트를 만든 서동률 셰프는 현직 요리사로 식용곤충을 사용한 메뉴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서 셰프는 “비욘드미트와 비교해보면 크게 (맛과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식용곤충은 식물성 고기와 달리 동물성 단백질이 포함돼 있는 등 영양적으로 더 우수하다. 계속해서 맛을 보완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페이크 미트를 만들기 위해 개발 중이다”라고 했다.

■ 곤충은 고기의 미래일까

페이크 미트처럼 다양한 음식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건 고기를 대체할 먹거리에 대해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는 많은 사람이 즐기는 중요 식재료지만 적지 않은 문제도 안고 있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많은 땅과 자원이 사용되는 등 지구적으로 보면 효율이 좋지 않은 단백질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축의 호흡과 분뇨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고기를 얻는 과정에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식용곤충은 고기를 대체하는 단백질원이다. 곤충은 식물에 없는 동물성 단백질을 갖고 있다. 덕분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미래 식량’으로 꼽았다. ‘지구를 구하는 음식’ ‘작은 가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식용곤충 산업은 ‘차세대 바이오그린 산업’ ‘미래농업의 블루오션’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적지 않다.

식용곤충을 사용해 만든 페이크 미트는 단백질을 따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곤충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식용곤충은 대부분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성충이 되기 전 애벌레인 유충 시기에 섭취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식용곤충을 사용해 만든 페이크 미트는 단백질을 따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곤충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식용곤충은 대부분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성충이 되기 전 애벌레인 유충 시기에 섭취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기의 맛과 식감을 유지하는 대체육의 필요성이 높아지지만 고기의 맛을 고기가 아닌 식재료로 구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고기는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기에 형태나 색을 따라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사람은 육류 특유의 맛에 더해 오랜 시간 이어진 낯익은 감각으로 고기를 먹는다. 콩이나 버섯 등 식물성 식재료나 식용곤충으로 정확히 재현하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곤충이 일반적인 먹거리로 받아들여지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식용곤충 메뉴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남유섭 셰프는 “다양한 코스 요리를 고교생들에게 내놓은 적이 있는데, 다들 ‘맛있다’며 먹다가 식용곤충으로 만들었다는 걸 말하자 다들 멈칫하더라”며 “그래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느낀 맛이 이 재료의 가치이고 지금 보이는 반응이 현실의 한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밀웜 단백질로 만든 페이크 미트는 식용곤충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곤충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걷어내고 독특한 맛과 향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에 식용곤충의 미래가 달렸다. 고기를 즐겨 먹는 보통 사람들이 굳이 식용곤충을 찾아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식용곤충이 지구를 구하는 음식이 되려면 우선 고기에 길들여진 마음부터 잡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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