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온라인 탑골공원’ ‘90년대 GD’를 모르시나요?

이유진 기자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역대 <인기가요> MC들. ‘SBS 케이팝 클래식’ 캡처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역대 <인기가요> MC들. ‘SBS 케이팝 클래식’ 캡처

“정현이가 지금 뭐하고 있냐면요. 인터넷을 통해서 정현이가 지난주 1위한 영상을 확인하고 있어요.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 정현이도 정보화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앳된 얼굴의 가수 이정현이 지금은 사라진 펜티엄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2000년 1월 방송한 SBS <인기가요> 96회의 한 장면이다. 19년도 더 지난 당시를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건 유튜브 덕분이다. 1999년~2000년 방송한 <인기가요>는 유튜브를 통해 현재 24시간 라이브 스트리밍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이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튜브 댓글창에 댓글이 이어진다. ‘저때 영어랑 컴퓨터 배워서 지금 유튜브로 이거 본다ㅋㅋㅋ’ ‘정보화 시대고 뭐고 저때 삼성전자 주식만 샀더라면….’ 뒤이어 <인기가요> 무대에 선 이정현은 테크노 여전사로 변신해 무대에서 ‘바꿔’를 열창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복고 열풍이 거세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 등 레트로의 인기가 하루 이틀이냐 하겠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단순히 ‘그 시절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유튜브는 특정 시기, 특정 인물이 활동하던 ‘그때 그 순간’을 콕 집어 데려간다. 이번 추석 연휴엔 유튜브로 시간여행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2030 모여라…‘온라인 탑골공원’으로

1998년 6월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유승준이 ‘나나나’로 1위를 차지했다. ‘나나나’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 캡처

1998년 6월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유승준이 ‘나나나’로 1위를 차지했다. ‘나나나’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 캡처

SBS 공식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KPOP CLASSIC)’은 지난달 6일부터 1998년에서 2001년까지 방영된 SBS <인기가요> 방송분을 라이브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전지현, 김현주, 김민희, 김소연 등 지금은 톱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의 상큼한 신일시절 모습부터 유승준, 컨츄리꼬꼬, 룰라 등 각종 사건·사고로 지금은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가수들의 무대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그 시절 음악과 가수들이 ‘평행이론’처럼 다시 등장하자 2030 누리꾼들이 열광했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한 지 3주만에 동시접속자수 2만2000명을 돌파했고, 이달 초 5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한꺼번에 채널에 몰리기도 했다. 구독자 수도 8월초 6만명에서 8월29일 11만명, 지난 9일 16만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SBS 공식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 동시 접속·구독자 수 증가 추이. SBS 제공

SBS 공식 유튜브 채널 ‘SBS 케이팝 클래식‘ 동시 접속·구독자 수 증가 추이. SBS 제공

‘온라인 탑골공원’ ‘요즘애들 가요무대’ 등 재치있는 별칭도 따라붙었다. 채널 운영자는 ‘공원 관리자’ ‘방장’ 등으로 불렸다. 채널 운영자는 “실시간 채팅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생각과 반응을 알 수 있고 재치 있는 멘트들이 많아 앞으로도 더욱 매력적인 채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라이브 방송 중 욕설이나 무분별한 비방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잘 지켜주고 계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20대 시청자 김보람씨는 “옛날 명곡을 듣는 재미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발한 댓글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다”며 “정말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는 공원에 모여 소소한 수다를 떠는 느낌”이라고 했다. 30대 시청자인 이모씨는 “보고 있으면 입에서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며 “요즘 곡들은 하나 외우기도 힘든데 다 아는 노래라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인기가요> 라이브 스트리밍은 2020년 SBS 창사 30주년을 맞아 디지털 기술과 유통 인프라를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SBS 레전드 콘텐츠를 소개하고자 기획됐다. SBS 측은 “특히 1999년~2000년 밀레니엄 시대의 콘텐츠가 레트로 열풍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이 시기의 음악, 의상, 인물 등 문화 전반을 느낄 수 있는 <SBS 인기가요>를 첫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분간은 1990년말에서 2000년초 위주로 라이브 방송을 계획중이지만 향후 점차 연도를 확대하고 신청곡, 특별무대 등을 선별해 개별 클립으로도 업로드할 예정이다.

한편 MBC와 KBS도 추석 연휴를 맞아 자사 음악 프로그램의 과거 방송분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MBC는 지난 12일부터 유튜브 채널 ‘MBC케이팝’ 채널에서 ‘꺼진 무대도 다시 보자-연도별 히트곡 무대 모음’(17시간 연속 방송)을 추석 특집으로 방송했다.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방송된 <쇼! 음악중심> 라이브 무대 중 큰 사랑을 받은 곡들을 선별해 선보였다. 누리꾼들은 비교적 최신 가요를 방송한다는 의미로 ‘MBC케이팝’ 채널에 ‘온라인 어린이대공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KBS 역시 지난 12일 오후 5시부터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K’에서 <뮤직뱅크>를 10시간 연속으로 방송했다. <뮤직뱅크>는 1998년 6월 첫방송해 2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스튜디오 K’ 공식 트위터에 게시된 포스터에는 초대 MC 류시원, 7대 MC 이나영을 비롯해 엄정화, 핑클, 젝키 강성훈, 터보 김종국 등의 얼굴이 등장했다. KBS 관계자는 “추석 연휴동안 매일 오후 5시부터 10시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90년대 GD’ 양준일을 아십니까

1991년 데뷔해 1992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 활동했던 가수 양준일은 유튜브를 통해 빅뱅 지드래곤과 닮은 얼굴로 입소문을 탔다. 유튜브채널 KBS ‘어게인(Again) 가요톱10’ 캡처

1991년 데뷔해 1992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 활동했던 가수 양준일은 유튜브를 통해 빅뱅 지드래곤과 닮은 얼굴로 입소문을 탔다. 유튜브채널 KBS ‘어게인(Again) 가요톱10’ 캡처

“‘온라인 탑골공원’ 그거 저도 봤어요. 제가 궁금한 건 도대체 양준일씨가 어디 계신가. 저랑 같이 활동을 했었거든요. 제가 막 데뷔했을 때 그 형이 ‘가나다라마바사’ 하면서 활동했는데.(웃음) 그땐 친분이 없었는데 지금 찾아가서 인터뷰라도 해보고 싶네요.”(가수 겸 배우 임창정)

유튜브 좀 본다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사라진 가수 양준일 말이다. 1991년 데뷔해 1992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 활동했던 양준일은 유튜브를 통해 빅뱅 지드래곤과 닮은 얼굴로 입소문을 탔다. 큰 키에 당시로는 시대를 앞서간 스타일도 한몫했다. ‘리베카’(1991), ‘가나다라마바사’(1992년), ‘댄스 위드 미 아가씨’(1992) 등 양준일의 활동 영상 아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연예인’, ‘25년 전 지드래곤’ 등 요즘사람들의 댓글이 수두룩하다.

방송사들도 ‘유튜브가 낳은 스타’ 양준일의 과거 영상을 저마다 공개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KBS가 운영하는 ‘어게인(Again) 가요톱10’ 유튜브 채널에는 ‘시대를 앞서간 가수 양준일 노래 모음’ 영상이 올라왔고, 지난 6월 게시된 영상의 조회수는 9일 기준 95만회가 넘었다. SBS도 유튜브 ‘복고채널’을 통해 ‘양준일 SBS 희귀 예능 모음…시대를 앞지른 가수’, ‘요즘 애들이 듣는 옛날 노래: 양준일(대표곡 모음)’ 등을 공개했다.

양준일은 1992년 종적을 감춘 뒤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에 전념하다 2000년 ‘V2’란 이름으로 깜짝 컴백하기도 했다.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다시 한 번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양준일은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가수의 길도 행복했지만. 영어 교육자 길도 음악 못지않은 행복을 준다.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재미있다”며 “과거에는 음악으로 콘서트를 열었다면 지금은 영어로 콘서트를 여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드라마’ 다시보자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유튜브 복고 채널을 통해 과거 방송한 시트콤·예능·드라마 등을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유튜브 복고 채널을 통해 과거 방송한 시트콤·예능·드라마 등을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가요에 흥미가 없다면 유튜브를 통해 흘러간 ‘레전드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것을 추천한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유튜브 복고 채널을 통해 과거 방송한 시트콤·예능·드라마 등을 공개했다.

KBS 코미디 채널 ‘크큭티비’에서는 <유머 1번지>, <쟁반노래방>과 같은 코미디·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며, SBS ‘복고채널’ 등에서는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인기 시트콤을, MBC가 운영하는 ‘MBC클래식’ 채널에서는 <인어 아가씨>, <보고 또 보고> 등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흘러간 콘텐츠를 보며 시대 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유튜브로 <순풍산부인과>를 정주행하고 있다는 김정현씨(36)는 “최근에 TV에서 시트콤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을 유튜브로 대신 달래고 있다”며 “옛날 시트콤이 얼마나 재밌었는지를 느끼는 동시에 당시 방송들은 지금 기준으로 성인지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이 많이 떨어지는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청자 이모씨(27)는 “어릴 때 부모님 몰래 보던 프로그램을 커서 유튜브로 본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방송사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자사 콘텐츠를 무기로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과거 콘텐츠를 다시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 요청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복고 콘텐츠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며 “특히나 유튜브의 경우 수익 구조도 확실하고, 구독자를 모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내부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앞으로도 과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MBC는 2012년 폐지됐던 ‘대학가요제’를 7년 만에 부활시켰다. ‘2019 대학가요제’는 10월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공식홈페이지 캡처

MBC는 2012년 폐지됐던 ‘대학가요제’를 7년 만에 부활시켰다. ‘2019 대학가요제’는 10월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공식홈페이지 캡처

복고 콘텐츠의 인기는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진다. 오는 21∼22일 강원 춘천 공지천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레이크 뮤직페스티벌은 ‘가요톱10’ 콘셉트로 진행된다. 당시 MC였던 손범수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는다. 김완선, 김원준, 박미경, 현진영 등 1990년대 톱가수들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MBC는 7년 만에 ‘대학가요제’를 부활시켰다. 1977년 출범한 ‘대학가요제’는 스타의 등용문이었으나 가요계가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2012년 폐지됐다. 7년 만에 다시 열리는 ‘2019 대학가요제’는 10월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총상금 7000만 원으로 이 가요제 출신의 김학래, 우순실, 원미연, 이정석 등이 심사위원을 맡는다.

일각에선 유튜브를 타고 부는 복고 열풍 배경엔 노후에 대한 불확실성, 현실에 대한 불안 등 과거로 회귀하려는 2030세대의 심리가 있다고 분석한다.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2030세대는 이러한 분석에 뭐라고 답했을까. 답은 한 갈래로 이어졌다. 그 중 한 대답을 전한다. “심리는 모르겠고요. 유튜브에 나오니까 보는 거고, 보다보니 아는거라 더 재밌는 것 뿐이에요.”(김보람·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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