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함의 덫…방에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히키코모리 청년들, 우리 사회는 받아줄 준비 돼 있나

김상범 기자·최유진 인턴PD
히키코모리를 다룬 영화 <도쿄!>의 한 장면.

히키코모리를 다룬 영화 <도쿄!>의 한 장면.

“하루는 책상 위에 쓰레기가 놓여 있는데, 그걸 치우고 싶어도 손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건 정말 일상적인 간단한 행동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에요. 몸에서 거부반응이 오더라고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정말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구나.”

김나현씨(34)는 지난해 1년 정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다. 그는 사회에 발을 내디딘 뒤 사람들과 자주 부딪혔다고 했다. 사회 초년생이 으레 그렇듯 쉽게 상처받았다. 회사 생활을 길게 하지 못하고 6개월, 1년마다 일자리를 옮겼다. 이후 번번이 재취업에 실패하자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번아웃’ 상태가 왔다. “잠시만 쉬자”며 자기 방 안으로 틀어박혔다. 그 ‘잠시’가 1년이라는 긴 시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제일 무서운 것은 무기력함의 덫이었다. 처음에는 방에서 게임도 하고, 인터넷 서핑도 즐겼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지고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는” 상태가 찾아왔다. “나중에는 컴퓨터도 안 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어요. 심할 때는 이틀 정도 잠만 자기도 했고요. 놀랍게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방에서 나가야겠다는 에너지 자체가 없어졌고, 무기력하고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갑작스런 실직으로 히키코모리가 됐던 성오현씨(30)도 “(은둔생활이 길어지면)시간이 흐르는 것에 무감각해진다”고 했다. 무기력, 무감각, 우울…. 모두 같은 말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방에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직장인이 주말 내내 하루종일 집에서 ‘집순이·집돌이’ 행세를 하며 늘어지게 쉬는 것과는 다르다. 취업에 실패해서,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청년 스스로의 의지로 방 안에 틀어박힌 듯 보이지만, 이렇다 할 계기가 없다면 이내 방 안에 ‘갇혀버리고’ 만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우울증이나 게임 중독 등 정신과적 질환까지 찾아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내 히키코모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정부와 사회단체에서는 전체 청년인구에서 경제활동인구를 뺀 ‘비경제활동 청년’ 숫자를 잠재적인 히키코모리 위험군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 가운데 ‘장기간 구직활동을 쉬고 있다’는 인구는 지난해 약 31만명이다. 미취업 상태로 몇 년을 지내다 보면 생계도 문제이거니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과 자신감 상실로 스스로를 ‘격리’하는 상태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에 있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는 히키코모리 경험 청년들과 코보리 모토무 대표(오른쪽)/김정근 선임기자

서울 성북구 정릉에 있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는 히키코모리 경험 청년들과 코보리 모토무 대표(오른쪽)/김정근 선임기자

현재 김나현씨와 성오현씨는 니트(NEET) 청년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셰어하우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K2인터내셔널은 이지메·수업거부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양산된 1980년대 후반의 일본에서 처음 설립된 단체다. 히키코모리 청년들에게 공동체를 만들어 주고,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셰어하우스에서의 활동은 함께 식사하기, 크고 작은 가사활동 분담하기, 일자리 체험 등으로 ‘함께 사는 법’을 체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우리 사회는 히키코모리들의 복귀를 받아 줄 준비가 돼 있을까. 지난 5월 일본에서 51세의 ‘중년 히키코모리’가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이면서, 이들을 ‘예비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김씨 등은 “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짙어질수록 이들은 더 방 안에 틀어박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당사자 부모들조차 숨기고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오해어린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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