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사망 1년

산재 위험의 근본적 원인 ‘원·하청 구조’ 조금도 못 바꿨다

이효상 기자

당정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번째)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당·정이 발표한 안전강화 대책은 고 김용균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실태조사 후 내놓은 권고안에 대한 정부의 이행계획안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번째)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당·정이 발표한 안전강화 대책은 고 김용균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실태조사 후 내놓은 권고안에 대한 정부의 이행계획안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발전소 설비 하청노동, 한전 자회사 흡수…여전히 ‘간접고용’
‘원청의 책임 강화’ 대안 제시…현장의 분절구조 극복 어려워
임금 인상 등 ‘절충안’ 성격…특조위 “선별적 권고 수용 유감”

12일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은 ‘원청의 책임 강화’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고 김용균 사망사고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권고했던, 원·하청 관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의 시정까지 나아가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 주변의 김용균을 또다시 잃지 않도록 근본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는 이번에도 ‘현실론’ 앞에 묻혔다.

당정은 특조위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권고를 산재 위험을 바로잡는 해법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처우개선의 일환으로 이해했다. 먼저 김용균씨의 업무였던 연료환경 설비운전 분야는 현재 여러 하청업체 소속으로 나누어진 노동자들을 한전산업개발 소속으로 재편, 공공기관 지정을 추진키로 했다. 하청업체 간, 원·하청 간 소통이 복원되고 고용도 안정될 수 있다. 단 한전산업개발의 노동자들이 발전사에서 근무하는 형태로, 간접고용이 유지된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경상정비 분야 방점은 정규직화보다는 고용안정에 찍혔다. 그간 경상정비 분야는 계약기간이 짧아 고용이 불안정했다. 당정은 정비계약기간을 연장하고, 안전·기술 중심으로 계약 방식을 변경키로 했다. 외주화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특조위는 “권고를 선별적으로 수용했다”며 정부 대책에 유감을 표명했다.

김용균씨의 사고 이후 노동계는 ‘김용균씨 사고가 기존 사고와 무엇이 달랐는지’를 반복적으로 자문했다. 김씨의 사고는 ‘일터의 안전’이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진 유일한 사고였지만, 숱한 하청노동자의 사망 사고 중 하나일 뿐이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보면 지난 5년간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다치거나 숨진 노동자의 97.6%는 김씨와 같은 하청노동자였다. 특조위는 자회사 노동자의 산재 발생 위험이 원청노동자 대비 7.1배나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내놨다. 특조위는 이를 “위험이 외주화됐고, 외주화로 인해 위험이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됐다”고 요약했다. 외주화 과정에서 공정이 여러개로 쪼개지고 소통이 단절되면서, 현장의 최전선이자 지휘체계의 끝자락에 있는 하청노동자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정은 ‘원·하청 구조의 변화’가 아닌 ‘원청의 책임 강화’를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김씨 사고 이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근간이기도 하다. 보조적으로는 원·하청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소통을 복원키로 했다. 하지만 노동자 사망 시 원청이 지는 책임은 여전히 미약한 데다, 원청 책임 강화만으로는 현장의 분절구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당정은 대신 임금 인상 등 처우개선책을 앞세웠다. 하청의 중간착복 근절을 위해 노무비를 별도 계좌에서 관리키로 했다. 낙찰률도 상향조정해 경상정비 공사금액의 5%를 노무비로 지급할 방침이다.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물던 임금이 대폭 개선되는 셈이다. 당정은 내년 초까지 2인1조 근무를 위한 인원 확충을 완료하고 설비·시설에 대한 현장점검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대책은 근본 대책이라기 보단 ‘절충안’의 성격이 짙다. 당정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안전한 일터 문제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일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이들의 발언이 ‘일단 멈춤’을 위한 알리바이가 아니라 ‘여전히 나아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인정하는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조위는 성명을 내고 “노동안전 문제는 단순히 처우개선의 문제와 맞바꿀 수 없는 시급성을 담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이행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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