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감염 안전망에서 밀려난 플랫폼 노동

반기웅 기자
쿠팡캠프에서 쿠팡 플렉서들이 배송할 물품을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반기웅 기자

쿠팡캠프에서 쿠팡 플렉서들이 배송할 물품을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반기웅 기자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쿠팡에서 보낸 쿠팡플렉스 채용 알림톡이다. 쿠팡플렉스는 일반인이 자기 차량으로 배송하는 단기 일자리다. 정규직(쿠팡맨)과 비정규직(노멀·라이트)보다 회사와 연결고리가 느슨하다. 쿠팡 ‘플렉서’는 서류상 위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시기와 맞물려 쿠팡플렉스 채용 알림톡 횟수가 늘었다. 많게는 하루 다섯 차례 이상 알림톡을 받는다. 쿠팡 자체 애플리케이션도 인력 모집 ‘푸시’를 수시로 보낸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생긴 변화다. 이른바 ‘코로나19 특수’다. 지난 1월 28일 쿠팡 로켓배송 출고량은 330만 건에 달했다. 역대 최대치(하루 주문량 기준)다. 이례적으로 새벽 배송 지연 공지가 떴다. ‘쿠팡맨’으로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쿠팡플렉스로 물량을 충당해야 배송 지연을 막을 수 있다.

쿠팡은 플렉서 유입을 위해 한시적으로 돈을 풀고 있다. 건당 지급되는 배송 수수료를 올렸다. 신규 플렉서를 타깃으로 한 공격적인 프로모션도 진행 중이다. 배달 수수료 외에 1만원가량 웃돈을 얹어주는 방식이다. 단가가 오르면 쿠팡의 인력 저수지는 금세 차오른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만든 ‘일거리’는 감염병에서 안전할까.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택배 노동자들은 감염에 취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 감염된 택배노동자는 자칫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정사업본부(우체국)와 민간 택배 업체는 저마다 방역 대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택배 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지급하고 배송 차량도 출발 전에 방역을 한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광주우편집중국은 지난 2월 5일 소속 직원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자 곧바로 사업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쿠팡플렉스의 일터에는 코로나19 안전장치가 없다. 택배 노동자(플렉서)가 오가고 배송 물품이 모이는 캠프(물류센터)는 방역 사각지대다. 노동 안전망에서 소외된 이들은 감염 안전망에서도 배제됐다. 2월 11일 쿠팡 플렉서로 일하며 현장을 살펴보았다.

온라인 주문 폭주로 배송 인력 부족

오전 11시. 주간 배송(오전 11시 30분~밤 9시)지원자들이 캠프로 몰렸다. 차 세울 곳이 부족해 이중 주차를 했다. 이날 쿠팡이 정한 배송단가는 박스 1개당 800원(비닐 600원)이다. 한때 500원대(주간 배송·박스 기준)로 떨어졌던 배송단가가 올랐다. 프로모션 대상인 배송 4회 이하 신규 플렉서는 1만원에서 최대 2만원의 추가 지원금을 받는다. 코로나19로 배송량이 늘면서 인력이 필요한 쿠팡 측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벌이는 것이다. 쿠팡 관계자는 “주문량 폭증으로 배송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배송 인력 모집을 위해 단가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쿠팡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배송 물량도 증가했다. 반기웅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쿠팡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배송 물량도 증가했다. 반기웅 기자

캠프 안은 택배 박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새벽 배송을 위해 캠프를 찾았을 때보다 확실히 물량이 많아 보였다. 당시 26명 남짓이었던 플렉서도 90명에 달했다. 시간대를 감안해도 차이가 컸다. 컨테이너 벽에 붙은 QR코드를 찍고 업무를 개시했다. 배송 업무 매뉴얼에 명시된 신분증 확인 등 신원 확인 절차는 생략됐다. 전에는 신분증 확인은 건너뛰더라도 본인 서명은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

배송 번호는 앱과 카카오톡으로 전달됐다. 할당된 배송 번호가 붙은 롤테이너(바퀴 달린 이동식 적재함)를 찾았다. 오늘 할당받은 물량은 58개. 그중 5개들이 생수 여섯 묶음과 허리춤 높이의 가구(수납장)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배송 확정표를 보니 대부분 각각 100개 이상 물량을 배정받았다.

쿠팡 캠프는 코로나19 재난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캠프 어디에도 손 소독제는 비치돼 있지 않았다. 적재 작업을 할 때나 배송할 때 착용할 마스크도 없었다. 일부 플렉서는 마스크를 썼는데 모두 개별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차량 방역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작업·배송 매뉴얼도 없었다. 주변 플렉서에게 ‘배송할 때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쿠팡에서 지원하는 마스크는 없는지’를 물었더니 ‘그런 것은 없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답했다.

기존 배송 인력에게만 방역 물품 지급

차량에 배송할 물품을 싣고 나서 캠프 사무실에 들렀다. 쿠팡 직원에게 ‘출발 전에 손 소독제를 쓰고 싶다’고 요청하자 ‘캠프에 소독제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손을 보니 박스 먼지로 새까맸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더니 비누(세척제)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송에 나섰다.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썼고 손은 첫 배송지인 음식점(감자탕집) 인근 화장실에서 씻었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손 소독제를 발랐다.

쿠팡캠프 내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되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비누(세척제)가 마련되지 않았다. 반기웅 기자

쿠팡캠프 내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되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비누(세척제)가 마련되지 않았다. 반기웅 기자

배송은 순조로웠다. 고객 대부분이 문 앞 배송을 요청해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간혹 대면 배송을 원하는 고객들도 부재 중이었다. 앱에서 아파트와 빌라 1층 현관 비밀번호가 공유되기 때문에 고객과 연락할 일도 없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이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어린이집 내 영유아 감염 예방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더니 어린이집 관계자가 문을 열었다. 이내 ‘안으로 택배 박스를 옮겨달라’고 청했다. 안내문을 가리키며 ‘들어가도 괜찮은지’ 묻자 ‘저기 안(아이들 방)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택배 박스 3개를 들고 어린이집 안에 넣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플렉서가 왔더라도 출입은 허용됐을 것이다. 이후 배송은 5시간 만에 끝났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온라인 쇼핑 플랫폼와 유통·물류 업체들은 저마다 방역 대책을 발표했다. 택배기사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 체온계를 지급하고 차량 안팎을 소독해 코로나19로부터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게 골자였다. 쿠팡도 다르지 않다. 쿠팡 측은 전 쿠팡맨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하고 캠프(물류센터)마다 손 소독제와 열화상 카메라를 비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은 쿠팡 측의 설명과 달랐다. 쿠팡 플렉서의 경우 감염병 보호 조치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쿠팡 플렉서는 개인사업자”라며 “회사 차원에서 마스크 지급과 같은 별도의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플랫폼 노동자든 감염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플렉서는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다 플렉서의 입장을 대변해줄 조직이 없기 때문에 사측에서 쉽게 보호 대상에서 배제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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