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화려한 기록보다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기생충’ 기자회견

김경학 기자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10개월간 해외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총 160여개 상을 휩쓸며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이 그간 소회를 밝히는 기자회견이 19일 열렸다. 사실상 <기생충>의 국내 마지막 공식 활동으로, 장소는 지난해 4월 첫 공식 활동이었던 제작발표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기서 제작발표회를 한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간다.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침내 여기 오게 돼 기쁘다”며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봉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 캠페인을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 송강호는 “참 영광된 시간을 같이 보낸 것 같다”며 “한국 영화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 관객에게 뛰어난 한국영화의 모습을 선보이고 돌아와 인사드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작들에서도 빈부격차, 계급·계층 갈등을 주요 소재로 활용해온 봉 감독은 <기생충>이 전작들에 비해 큰 호응을 얻는 것과 관련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점을 인기 요인으로 봤다. 봉 감독은 “<괴물>이 한강변 괴물, <설국열차>가 미래 기차를 배경으로 해 공상과학(SF)적인 요소가 많은데 <기생충>은 그런 것 없이 동시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배우들이 잘 표현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 더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봉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한진원 작가는 주요 인물 8명 모두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기생충>의 매력으로 꼽았다. 한 작가는 봉 감독의 아이디어에 현실감을 입히기 위해 가사도우미·수행기사 등 실제 인물들을 만나 취재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아주 잔혹한 악당이 있다거나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흘러가지 않고, 각 인물마다 드라마가 있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사는 이유가 있다”며 “기우(최우식) 집과 가까운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제게 박 사장(이선균) 집은 판타지였다. 판타지를 채워줄 취재원이 중요했다. 취재원에서 얻은 디테일을 통해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 양극화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점도 주효한 것으로 판단했다. 봉 감독은 “영화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씁쓸하고 쓰라린 면이 있다. (양극화된 사회 묘사를)처음부터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며 “우리가 사는 시대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린 게 어쩌면 불편하고 싫어하는 관객도 있어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정면돌파하려고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이어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베트남·일본·영국·미국에서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여러 나라에서 호응받았다. 수상을 떠나 동시대를 사는 전 세계 많은 관객이 호응해준다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섰던 소회와 뒷이야기도 전했다. 이선균은 “너무 벅참을 느꼈다”며 “살면서 이런 벅참을 느껴보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봉 감독) 바로 옆에 앉았는데 자세히 보시면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황금종려상 수상)때 너무 과도하게 기뻐하다 감독님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 (아카데미 때는) 뺨이나 뒷목 얼굴 위주로 갈비뼈를 피해가며 기쁨을 나눴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받은 총 오스카 트로피는 6개다. 이 중 3개(작품상·감독상·각본상)는 봉 감독이, 2개(작품상·국제장편영화상)는 곽신애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1개(각본상)는 한 작가가 보유하기로 했다.

봉 감독은 제2, 제3의 <기생충>이 나오기 위해서는 투자·배급·제작 등 한국 영화업계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제 데뷔로부터 한국 영화계가)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이 뭔가 이상하고 모험적인 작품을 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젊은 감독이 (제 장편 연출 데뷔작)<플란다스의 개>나 <기생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가져갔을 때 투자받거나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냉정하게 질문해보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80~90년대 홍콩 영화 산업이 어떻게 쇠퇴했는지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한국 영화 산업이 모험과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를 껴안아야 한다”며 “최근 나오는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많은 재능이 꽃 피고 있다. (그 재능이) 산업과 좋은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자신의 동상 제작과 생가 보존 추진과 관련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며 “기사를 봤는데, 그냥 그런 이야기는 제가 죽은 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5·6부작 분량의 TV드라마로 준비 중인 <기생충>은 <설국열차>가 방영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며 방영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했다. 26일 개봉하는 <기생충> 흑백판과 관련해선 “고전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어 선보이는 것”이라며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섬세한 연기를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박소담·이정은·장혜진·박명훈, 곽신애 제작사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봉 감독은 끝인사에서 “많은 경사가 있어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한다”며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저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장면 하나 하나,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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