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만난 문 대통령 “<기생충> 사회의식에 공감…불평등이 견고해져 새로운 계급처럼 느껴질 정도”

정제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기생충> 제작진 및 출연진과 격려 오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기생충> 제작진 및 출연진과 격려 오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나는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식에 대해서 아주 깊이 공감을 한다”며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세계적인 문제이긴 합니다만 불평등이 하도 견고해져서 마치 새로운 계급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불평등 해소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 애가 탄다”

문 대통령은 이날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씨 등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 1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기에 앞서 환담을 갖고 “나는 그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을 최고의 국정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게 또 반대도 많이 있기도 하고 또 속시원하게 금방금방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매우 애가 탄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문화예술계도 <기생충> 영화가 보여준 것과 같은 어떤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영화 제작 현장에서나 또는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 이런 유통구조에 있어서도 여전히 불평등한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표준근로(표준근로계약) 시간제, 주52시간 이런 것이 지켜지도록 정부가 노력하고,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작업이 늘 단속적이기 때문에 일이 없는 기간 동안에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복지가 또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봉준호 감독님과 제작사가 솔선수범해서 (표준근로계약) 그것을 준수해 주셨는데 그 점에 경의를 표한다”고도 했다.

또 “영화 유통구조에 있어서도 말하자면 스크린 독과점, 이런 것을 막을 수 있는 스크린 상한제, 이런 것이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마디로 영화 산업의 융성을 위해서 영화아카데미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린다거나 하여튼 확실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하며 웃자 참석자들도 따라 웃었다.

문 대통령은 “오스카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최고의 영화제이지만 우리 봉준호 감독님이 아주 핵심을 찔렀다시피 로컬 영화제라는 그런 비판이 있어 왔다”며 웃었다. 봉 감독이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 영향력이 커졌음에도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질문에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별로 큰일은 아니다.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그저 로컬(지역영화상)일 뿐”이라고 답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기생충>이 워낙 빼어나고, 또 봉준호 감독님의 역량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비영어권 영화라는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최고의 영화,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 아주 특별히 자랑스럽다”며 “그 자랑스러움이 우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큰 자부심이 되었고, 또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봉 감독 “영광스럽고 감사”

봉 감독은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이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드린다”며 “청와대에서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좋은 자리에서 이렇게 대장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봉 감독은 문 대통령의 직전 발언을 화제에 올렸다.

“지금 바로 옆에서 대통령님 길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지금 저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저나 송강호 선배님이나 최우식씨 다 이렇게 스피치라면 다 한 스피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웃음) (일동 웃음) 지금 작품에 대한 축하에서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거쳐 영화 산업 전반에 걸친 또 여러 가지 언급을 거쳐서 결국 짜파구리에 이르기까지 (일동 웃음) 거의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한진원 작가에게)진원아 이거 한 시나리오 두 페이지 정도 분량되지 않니? 거의 엄청난, 분명히 암기하신 것 같지는 않고 평소에 체화된 어떤 이슈에 대한 주제의식이 있으시기 때문에 줄줄줄 다 풀어내신 것 같은데, 대표님도 최근에 저랑 저희 다 같이 미국에서 많은 시상식들 봤지만 지금 말씀하신 것의 4분의 1 정도 분량만 되는 짧은 스피치도 프롬프터 보면서 막 하고 그런다, 대사를 많이 외우는 미국 배우분들조차.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일동 웃음) 의식의 흐름이 되게 궁금한데, 너무나 조리 있게 또 정연한 논리적인 흐름과 완벽한 어휘의 선택을 하시면서 기승전결을 마무리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충격에 빠져 있는 상태다.”

송강호씨는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대장정의 어떤 마무리를 짓는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나.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 내외분께 너무 감사드린다”며 “마지막 (공식) 행사이고 해서 참으로 뜻깊은 자리가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 더 뭉클한 감동이 있다”고 했다.

■“‘제시카 송’ 가사는 누가 지어준 거냐”

문 대통령은 환담에 앞서 봉 감독과 인사하며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에 대해 “약간 꿈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봉 감독은 “축전 보내주신 것은 잘 받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배우 박소담씨에게 “‘제시카 송’ 가사는 누가 지어준 거냐”고 묻기도 했다. 박씨는 “감독님이요”라고 했다. 송강호씨는 문 대통령 내외에게 <기생충>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을 전달했다.

환담에는 봉 감독의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 동기인 육성철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도 참석했다. 봉 감독은 육 행정관과의 인연을 묻는 질문에 “제가 결혼하고 충무로에서 연출부 할 때 쌀도 한 포대 갖다 주고 그랬다”며 웃었다. 육 행정관이 “내가 결혼할 때 (봉 감독이) 결혼 비디오도 찍어주고 그랬다”고 하자 봉 감독은 “제가 결혼 비디오 등등 많이 찍었다”고 했다. 육 행정관은 봉 감독의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중 20초 가량 등장하는 화염병 시위 장면에 출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송강호 출연작 중 최고는 <넘버3> 건달 역할”

문 대통령은 오찬 도중 송강호씨에게 “출연작 중 나는 제일 좋았던 게 옛날 무명시절 <넘버3>의 건달 역할”이라며 “정말 연기가 굉장하더라”고 했다. 이어 “나는 크게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며 “그런데 경력에는 그게 잘 안 나오더라”고 했다.

송씨는 “전혀 보지 못했던 연기를 하니 특이한 배우, 이상한 배우가 나타났다고 화제는 되긴 했다”면서 “그런데 한 20년이 넘다보니 <넘버3>라는 영화를 알 만한 사람은 아는데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며 웃었다.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봉 감독은 “저는 (시나리오를 쓰는)속도가 느리다”며 “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를 만든 이 감독님은 1년에 1개씩 쓰시는데 저는 속도가 느리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님보다는 조금 빠르다”고 했다. 송씨도 “이창동 감독님을 얼마 전 뵙고 신작 얘기를 했는데, 제가 잘 되가느냐고 했더니 막혔다고 한다. 그러면 한 10년 간다”고 했다.

봉 감독은 “이창동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혼자 썼다가 혼자 없애버려서 아무도 이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를 본 사람이 없다”며 “저는 그거 다 보고 싶다. 한 줄 한 줄이 예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폐기한 시나리오를 우리가 가져다 찍으면 엄청난 작품일 텐데”라고 했다.

오찬에는 <기생충>에 나와 유명해진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도 메뉴로 나왔다. 김정숙 여사는 “중식 대표 셰프인 이연복 셰프에게 짜파구리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들었다. 소고기 안심은 너무 느끼할 것 같으니 돼지고기 목심을 썼다. 그리고 대파”라며 “저의 계획은 대파였다. 이게 ’대파짜파구리’”라고 했다. 봉 감독은 “사실 짜파구리 한번도 안 먹어보고 시나리오를 썼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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