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0년 3월2일 무지가 부른 비극적 죽음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와 에이즈의 차이는 아시나요?
HIV는 신체 내 면역세포를 파괴하는 원인 병원체입니다. HIV에 감염된 사람이 적절한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에이즈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에이즈는 HIV 감염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인 것이죠. 또 HIV와 에이즈는 이제 관리만 잘 하면 30년 이상 생존 가능한 ‘만성질환’ 정도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HIV와 에이즈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무지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에이즈의 존재가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80~1990년대는 말할 것도 없었지요.
30년 전 오늘은 이 무지 탓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90년 3월2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에이즈 공포 주부 자살’에 그 사연이 담겼습니다.
“경기도 수원의 이OO씨(당시 35세) 집 안방에 이씨의 부인 김OO씨(당시 29세)가 연탄불을 피워놓고 딸 OO(당시 3세), OO(당시 1세)양과 함께 숨져있는 것을 이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에 따르면 학교에서 숙직을 한 다음날 오전 8시쯤 귀가해보니 방안에 연탄 6장이 피워진 채 부인과 두 딸 등 3명이 숨져있었으며 ‘아이들을 당신한테 맡길 수 없어 제가 데리고 갑니다. 아빠 죄송해요’라는 내용의 유서가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부인 김씨는 1986년 첫 딸을 낳은 후 신경통과 신경쇠약 증세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에이즈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후 입술이 부르트고 기운이 없는 것이 자신의 증세와 같고, 지난해 말부터 감기증세로 계속 병원에 다니는 두 딸도 에이즈에 감염된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김씨가 그해 2월 보건소에서 에이즈 감염 여부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진술했는데요. 경찰은 이에 따라 김씨가 이를 비관, 두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HIV와 에이즈에 대한 가혹한 시선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합니다.
한국사회의 무지와 무딘 감수성을 보여준 사건이 불과 수개월 전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프로축구단 대전시티즌이 한 브라진 1부 리그 선수의 영입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했는데, 메디컬테스트 과정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을 통보받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발표만 보면 마치 중증 에이즈 환자인 것 같지만 사실 해당 선수는 HIV 감염인이었습니다. HIV와 에이즈를 구별하지 못한 발표였던 데다, 감염인 정보를 누설해 위법 소지까지 있어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감염인들이 일상에서 받는 차별과 혐오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HIV 감염인 단체 ‘러프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2018 HIV/AIDS에 대한 20~30대 HIV 감염인의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감염인들은 혐오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있습니다. 응답자 195명 중 혐오 표현을 ‘매우 자주 듣거나 본다’고 한 사람은 33.8%(66명), ‘가끔 듣거나 본다’는 응답은 59%(115명)인 반면 ‘거의 듣거나 본 적 없다’는 응답은 3.1%(6명),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다’는 응답은 4.1%(8명)이었습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비율도 높았는데요. 전체 응답자 중 49.5%(96명)이 우울 증상을 보였습니다.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13.3%(26명)이나 됐습니다.
박광서 러브포원 대표는 지난해 6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HIV 감염인은 주요 삼아 원인을 질병이 아닌 사회적 차별로 인한 자살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혐오가 심각하다”며 “비과학적인 이유로 수많은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데 HIV 감염임이 차별 없이 생활하도록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