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과 폄하 사이, 제대로 읽히지 못해 슬픈 ‘단색화’

글·사진 도재기 선임기자
한국 미술계에서 단색화(단색조 회화)는 최근 몇년 동안 “단색화 열풍”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지만 제대로 된 미학적·미술사적 평가와 정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이란 부제의 기획전 ‘텅 빈 충만’ 전시 전경 일부.

한국 미술계에서 단색화(단색조 회화)는 최근 몇년 동안 “단색화 열풍”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지만 제대로 된 미학적·미술사적 평가와 정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이란 부제의 기획전 ‘텅 빈 충만’ 전시 전경 일부.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이란 부제의 기획전 ‘텅 빈 충만’이 박여숙화랑(서울 소월로)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기획, 2014년부터 중국 SPSI미술관을 시작으로 8개국 순회전을 한 전시다. ‘텅 빈 충만’이란 주제 아래 단색화와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가 이번엔 내용적으로 좀 더 확장됐다.

단색조 회화 모은 ‘텅 빈 충만’전
원로부터 신진 작품 한자리에

현재 통용되는 ‘단색화’ 명칭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 기획자는 ‘단색화’ 대신 ‘단색조 회화’란 용어를 강조하며 작품 30여점으로 전시를 꾸렸다. 고인인 윤형근·정창섭은 물론 김창열·박서보·정상화·최병소·최상철·김태호·강영순·김근태·김아타·김택상·남춘모·이진우·김덕한·윤상렬·이진영의 회화와 사진, 권대섭의 달항아리 등이 출품됐다. 이우환·하종현 등 일부 작가들이 빠졌지만 단색조 회화의 특성을 보이는 원로부터 신진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귀한 전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단색화를 둘러싼 미술평론가·학자,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공공미술관 같은 한국 미술계 주요 주체들의 ‘부실한 역량’을 되짚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들 주체가 단색화에 대한 학술적 정립을 시도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비판하는 미술시장 주체들에게 오히려 얼마나 휘둘리는지가 지금까지의 단색화 관련 논의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색화는 2010년대 들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나타난 한국 현대미술의 한 경향으로 불리는 단색화는 단색으로 화면을 채우고, 작가의 반복적 행위, 시간의 축적, 정신성, 한국적 미감 등이 특징으로 언급된다.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와 닮아 ‘모노크롬’ 또는 단순 번역어인 ‘단색화’라 불려왔다. 2000년대 들어 모노크롬과 다른 한국적 특성을 찾기 시작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외부 기획자인 평론가 윤진섭의 기획으로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ing)전이 열리기도 했다.

2010년대부터 주목받은 분야
학술 검토·개념 정립 등은 미진
시장 휘둘려 ‘과대포장’ 지적도
평론계·학계 제대로 된 논의 필요

단색화에 대한 큰 관심은 국내외 아트페어에서의 반응, 이우환·박서보 등이 참가한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의 예술’전(2014년)으로 본격화됐다. 주요 화랑·옥션들이 경쟁적으로 단색화를 강조하며 “단색화 열풍”이라 불릴 만큼 미술시장이 달아올랐다. 미술시장 주체들의 주도로 단색화 열기가 이어지자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단색화에 대한 학술적 검토나 토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색화가 과대포장된다는 게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라 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1970~80년대 사회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아오던 단색화가들이 ‘저항의 예술가’로 평가받자 한 소장 작가는 단색화는 저항의 예술이 아니라는 의미로 침을 뱉어 만든 작품을 전시(2015년)하기도 했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내가 왜 단색화가냐” “나는 왜 단색화가가 아니냐”는 반발도 나왔다. 당시 한 화랑 대표마저 “단색화에 대한 제대로 된 미술사적 평가는 장기적 시장 측면에서도 필요하다”며 평론계·학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러나 평론계·학계·미술관 측은 미술계의 시장중심주의를 ‘뒷담화’로 비판할 뿐 제대로 된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들 주체가 미술계의 핵심축으로서 미학적 담론을 만들고 미술사적 가치를 검토해야 하지만 오히려 시장에 휘둘린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아직도 단색화의 개념·용어는 물론 미학적·미술사적 담론·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용어만 해도 ‘단색화’ ‘단색조 회화’ ‘모노크롬’ ‘한국적 모노크롬’ 등 여러가지다. 한 중견 평론가는 “더 큰 문제는 미술계 주체들 사이에 제대로 논의해보자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모 기획자도 “용어 문제, 모노크롬 등과의 비교를 통한 단색조 회화의 특성 파악, 일본 ‘모노하’ 등의 사례와 관련한 글을 도록에 실었다”며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색화 열기에 역할을 한 갤러리 대표는 “최근 단색화 주목도가 주춤하자 전문가들이 ‘봐라, 화상들이 만든 단발적 붐’이라며 뒷말을 하는데, 그간 그들은 뭘 했느냐”고 평론계·학계를 꼬집었다.

이제 단색화를 둘러싼 치열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펼쳐 개념·용어 정립을 시작으로 미학적·미술사적 검토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대로 된 가치 점검은 한국미술 발전을 위해서, 국제적 평가를 위해서, 모노하처럼 현대미술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 평론가는 “논의 필요성은 다들 알지만 ‘총대’를 메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한국 미술계를 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자로 자리를 마련하고, 미술 관련 여러 학회들이 주관자로 나서 ‘단색화 대토론회’라도 마련할 수는 없을까. 그 많은 미술평론가·교수들은 ‘어디에 서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전시는 5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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