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00일 맞는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기억” 산재 비극을 멈출 확실한 방법

조문희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52)은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화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손을 붙잡다가 가슴이 아파졌다.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 눈에 훤해서…. 영정을 보니 내 아들처럼 앳된 친구의 얼굴, 아이 아버지처럼 나이든 사람도 보였어요. 이 사람들 유가족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예전 나처럼 막막할 텐데….”

지난 6일 경향신문과 통화한 김 이사장 역시 산재 사망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김 이사장의 아들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아들 사고가 있기 전까지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정치나 법 같은 어려운 문제는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산재사고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평범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김씨 사망 321일째였던 지난해 10월26일 출범한 김용균재단에서 이사장직을 맡았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말하며 설립된 재단은 12일 출범 200일을 맞는다.

산재사고 때마다 유족 만나
분하고 답답한 마음 나눠
모이면 자식 얘기 많이 해요
서로의 가족 기억해주는 것
‘기억’은 위로이자 해결책
잊지 않아야만 재발 막아

그사이 김 이사장은 ‘남 일 같지 않은’ 사고를 꾸준히 마주했다. 지난달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엔 이주노동자 프레용 자이분이 사망했고,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경마기수 문중원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도되지 않은 죽음도 많았다. “하나같이 ‘인재’였어요. 대부분 안전이 방치된 노동현장 문제 때문에 목숨을 잃었죠. 문 기수도 마사회 내 부당한 갑질과 차별 때문에 힘들어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고요.”

김 이사장은 산재사고가 터질 때면 사고 현장과 빈소를 찾곤 했다. 유가족의 참담한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힘이 돼주고 싶었다고 했다.

“기업은 사고가 나면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유족들은 알거든요. 자기 자식, 가족이 잘못해서 죽은 게 아니고, 안전이 무방비해서 사고가 났다는 걸. 그런데도 후속조치를 보면, 권한 있는 원청은 쏙 빠져나가고 힘없는 하청 말단직원이나 현장소장이 책임을 지고…. 답답하고 억울하죠.”

김 이사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산재사고 피해자 유족들과 모임을 갖는다. 서로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나누면서,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다. “억울함이 크다 보니 우울증 걸리고 약을 먹는 유족이 많아요. 저도 아침마다 속이 쓰리거든요. 잠도 안 오고. 이 아픔을 어떻게들 견디는지, 그 방법을 서로 공유해요.”

이날도 김 이사장은 수원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김태균씨의 가족, 특성화고를 다니다 CJ 진천 공장에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김동준군의 어머니, 전주 콜센터 노동자 고 홍수현씨의 아버지 등과 1박2일 일정으로 전라도 위도를 찾았다.

“서로 자식 얘기를 많이 해요. 자식에 대한 기억도 잊혀지거든요. 잊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자식이 생전에 좋아했던 걸 서로한테 말해줘요. 애가 밝았던 모습을 말하며 웃어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가족을 기억해주는 거죠.”

‘기억’은 위로인 동시에 산재사고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김 이사장은 말했다. 매번 ‘또 다른 김용균’이 나오는 건 사람들이 자꾸만 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슈가 급하게 바뀌기도 하고, 사고가 날 때마다 냄비처럼 짧게 끓고 말잖아요. 하지만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산재사고는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거든요. 저 역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아픔을 품게 됐네요. 반복되는 사고는 시민들이 절실하게 노력해야 바꿀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전히 빈틈 많은 김용균법
중대재해 처벌 하한선 필요
노동에 대해 더 공부할 계획
재단의 활동 범위도 넓힐 것

김 이사장은 반복되는 재해의 해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언급했다. 일부 유해·위험 작업의 하도급을 금지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시행됐지만 빈틈이 많다고 했다.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을 처벌해야 하잖아요. 현행법상 처벌의 상한선은 이전보다 높아졌지만, 처벌을 꼭 하게끔 만드는 하한선이 없어요. 기업에 목숨값이 하찮게 다가오는 거죠.”

사고를 내지 않는 것이 기업에 이익이 돼야 안전이 지켜진다고 김 이사장은 말했다.

“노동자에 대해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영국처럼 연간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으로 내야 한다면, 기업도 안전에 신경을 쓰게 될 겁니다. 벌금에 비하면 안전조치를 위한 비용은 크지 않거든요.”

김 이사장의 올해 개인적 목표는 ‘공부’다. “우리나라 노동 역사를 예전엔 몰랐거든요.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님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것조차 몰랐을 정도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책 읽고 다른 유가족과 교육도 받을 생각입니다.”

기억할 것이 늘어나고 배움이 커지는 만큼 재단의 활동 규모도 달라질 예정이다. 최근 활동가 1명을 추가로 뽑았고, ‘꼭 해야 할 일’도 선별해 추진하려 한다.

김 이사장은 재단의 기존 목표인 ‘비정규직 철폐’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꾸준히 지켜갈 것이라고 했다. ‘청년노동자 권리 보장’ ‘산재사고 피해자 유가족 지원’ 등 주요 사업도 이어갈 계획이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