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경비노동자 죽음은 왜 반복되나

이재덕 기자 · 채용민 PD
고 최희석씨가 근무했던 서울 강북구 ㄱ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 권도현 기자

고 최희석씨가 근무했던 서울 강북구 ㄱ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 권도현 기자

주민의 폭언·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서울 강북구 ㄱ아파트 경비노동자 최희석씨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처음에 선뜻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첫 폭행 사건이 벌어진 뒤 2주일이 지난 5월3일 다른 주민들이 최씨가 폭행당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나서야 최씨의 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그를 보호하고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결국 최씨는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는 주민의 폭언 등 ‘갑질’로 경비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비노동자들은 주민들의 갑질, 비인격적 대우 등이 자주 있는 일이라고 증언한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이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노원·성북, 수원, 부천, 대전, 울산 동구 등 전국 15개 지역 3388명 경비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참여자의 24.4%가 ‘입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 대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경비노동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옛날에 지은 아파트라서 주차장이 부족한데 주민들이 주차 단속에 불응하고 욕설과 협박을 하기도 하고 음주 후 갑질을 한다.” “폐가구를 몰래 버린 입주민을 찾지 못하면, 주민들이 경비원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으로 책임을 전가해 자비 부담을 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의 죽음도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경비노동자의 노조 조직률 1% 안돼

전문가들은 ‘취약한 고용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대표기구인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하기도 한다. 특히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은 노동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청인 아파트 측의 책임을 불분명하게 하고, 원청의 노동자 관리 비용, 안전 조치 의무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수의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택하는 고용형태다.

최씨가 근무했던 ㄱ아파트는 직접고용 형태지만 ‘단기 계약’이다 보니 고용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구성된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의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최씨의 경우,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주민의 폭행을 외부에 얘기했을 때 계속 일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비노동자들이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3개월 또는 6개월 안팎의 초단기 노동계약을 체결하고 용역계약기간이 종료되면 해당 경비원들을 해고하는 아파트들도 많다”고 했다.

법률이 규정한 ‘노동자 보호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노사협의회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30명 이상인 조직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더라도 노사협의회를 구성하고, 고충처리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업은 ‘사각지대’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최씨가 근무한 ㄱ아파트는 일반관리·경비관리 노동자(직접고용)를 모두 포함해 10명 안팎의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용역업체에 소속된 경비노동자들의 경우, 근무하는 아파트 현장과, 소속 용역회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고충처리위원회 등의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경비노동자들의 조직률은 1%도 되지 않는다. 경비노동자 다수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인데다 용역업체가 바뀌면 해고되는 경우가 잦다 보니 노조를 새로 조직하기도 어려워졌다. 한국노총의 경우, 경비노동자 조직이었던 아파트노동조합연맹이 2000년대 말에 이미 활동을 멈췄고, 민주노총은 일반노조 산하에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지회(70여 명), 노원구아파트지회(50여 명) 등 200여 명의 아파트 경비 노조원들만 남아 있는 수준이다. 노조에 가입한 한 경비노동자는 “좋은 주민들이 대부분이지만 폭언 등의 문제는 여전하다. 경비노동자 개인은 아무런 항의를 하지 못하고, 관리사무소에서는 되려 ‘주민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나왔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해있고 ‘갑질’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노조 집행부가 나서서 관리사무소에 개선 방안을 요구하고 가해자에겐 사과를 요구한다. 개인이 아닌, 단체가 나서다 보니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비극적인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노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주민 폭언 등으로 경비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들로 구성된 ‘신현대아파트지회’ 등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아파트 정문에서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규탄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 경비노동자가 노조의 기자회견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2014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주민 폭언 등으로 경비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들로 구성된 ‘신현대아파트지회’ 등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아파트 정문에서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규탄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 경비노동자가 노조의 기자회견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경비노동자 지원 창구’ 만드는 지자체들

경비노동자를 대변하는 노조가 없다 보니 차선책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93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공동주택을 관리·감독할 권한을 주고, 지자체가 관련 규약이나 조례 등을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2016년 9월 공동주택관리조례를 개정해 서울시장이 경비원 등 아파트에 고용된 노동자의 인권·복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노원·강서·성북·은평·광진 등 서울의 상당수 자치구도 경비·청소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복지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지역의 경비노동자가 업무상 폭행을 당한 경우라면 산재처리를 위해 센터가 노무사를 소개하고, 민·형사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은 해당 구청이 위탁 운영하는 센터를 방문해 이런 지원책과 대응 방안을 듣고 어떻게 사건을 풀어갈지를 판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사망 사건이 벌어진 강북구는 이런 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지난 13일 서울 강북구청 앞에서 열린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 촛불문화제’에서 두루두루배움터 우성구 목사는 “강북구청이 지역의 비정규직노동자를 위한 노동복지센터를 만들어놨다면 이런 불행한 사고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 강북구의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고 최희석님 추모와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강북구 지역대책위’는 강북구청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https://forms.gle/UbvLM9nyZFK7zMku5)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 부산 기장, 충남 아산, 전남 여수, 전북 전주 등도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광주광역시 시의회가 2018년 제정한 ‘고령자 경비원의 고용안정 조례’를 보면, 광주광역시장은 고령자 경비원의 고용안전과 인권보호를 위해 ‘노동실태조사’, ‘권리구제 정책 개발’, ‘인권 교육’ 등의 자치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광주비정규직지원센터는 광주지역 경비노동자들의 모임인 ‘빛고을협의회’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찬호 광주비정규직지원센터장은 “지난 몇 년간 광주지역에서 경비노동자 네트워크를 만들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1800여 명의 경비노동자와 수시로 연락하고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이제는 경비노동자 사이에서도 센터가 꽤 알려져 있다. 이번과 같은 ‘주민 갑질’ 문제를 상담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단체의 성격이 노조가 아닌 ‘협의회’다보니 추진하는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상생협약’ 같은 아파트 주민의 선의에 일부 기대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 센터장은 “협의회는 ‘조직화’를 위한 중간단계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고, 용역 노동자가 많다보니 노조를 조직하기 쉽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조로 가야 한다. 그래야 법적 구속력도 생기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조직되지 않은 고령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조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법 조항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재발 방지 대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①경비노동자의 노동권(고용 보호, 노동 환경 개선)을 보장하고 ②폭언·폭행 등 ‘갑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선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아파트 경비노동자 관련 규정이 있는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9월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6항은 입주자나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등이 경비원의 처우개선과 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경비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있고, ‘부당 해고 금지’나 ‘처벌’과 관련된 규정은 없다 보니 유명무실한 조항이 돼 버렸다.

경비노동자의 직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은 지난해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방범업무(도난, 화재 등의 방지업무)와 관리업무(청소, 재활용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업무 등)를 구분해서 경비원과 관리원으로 이원화해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당장 아파트 경비노동자 해고가 늘고, 기계식 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경비업법상 경비업체에 고용된 일반경비원은 쓰레기 분리수거 등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지만 주무부처인 경찰청도 ‘해고 우려’ 등의 이유로 단속을 올해 연말로 유예키로 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서울시가 2017년 배포한 ‘아파트 경비원 상생고용을 위한 근무환경 가이드’는 ‘경비원 고유 업무가 아닌 쓰레기 분리수거를 경비원에게 지시하려면 경비원의 동의를 받고 분리수거 업무시 별도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전기·보일러 등 전문 시설관리 업무, 아파트 조경관리 업무, 아파트 내 공사 업무 등은 전문 인력을 따로 고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시간, 휴일 관련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도 개선할 과제다.

김부겸 전 행정안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파트 경비노동자) 관련 조항은 ‘공동주택관리법’과 ‘근로기준법’에 있다. 그러나 불명확하고 미비하다”며 “경비원의 권리 조항을 대폭 강화하자고 하면 아마 또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해고하지 못하게 하면서, 최소한 보호받을 권리를 두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악행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구조적 악행은 근절돼야 한다”라고 적었다.

시민단체에서는 지난해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제76조의 3)’에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까지 포함시키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내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경비노동자 관련 조항을 신설 보완해 입주민이 경비노동자에게 폭언이나 폭행 시 실형이나 벌금형 등 처벌과 함께 공동주택 퇴거와 같은 강력한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무년수 1년 미만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개정하면 3개월, 6개월 단위로 계약하고 해고되는 초단기계약 경비노동자의 수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대 국회에서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 임이자 의원(미래통합당) 등이 각각 발의했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수 년째 심사만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와 SH공사가 2017년 제작하고 서울시가 배포한 ‘아파트 경비원 상생고용을 위한 근무환경 가이드’ | 희망제작소 자료 https://bit.ly/3cGTxUP

희망제작소와 SH공사가 2017년 제작하고 서울시가 배포한 ‘아파트 경비원 상생고용을 위한 근무환경 가이드’ | 희망제작소 자료 https://bit.ly/3cGTxUP

■경비는 ‘머슴’이 아니다

사망한 최씨가 근무했던 ㄱ아파트 초소에는 ‘초소 안에서 실내화 착용을 금한다’ ‘입주자대표회의 등 자생 단체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어떤 언행도 해서는 안된다’ ‘근무 준칙을 위반할 시 징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의 경비 준칙이 붙어있다. 안성식 센터장은 “그런 준칙들은 경비노동자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준칙”이라며 “노동을 천시하는 그런 문화와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ㄱ아파트 주민 황선씨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아파트 경비초소 내부 모습을 처음으로 봤는데 변기 위에 놓여 있는 조리기구, 커피, 뻥튀기에 저희 가족 모두 충격을 받았다. 우리 스스로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갑질을 하면서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는 그분을 향해 ‘머슴’이라고도 하지 않았나. 경비노동자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 한, ‘경비원은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비인간적인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없애는 등 노동 환경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ㄱ아파트 경비노동자 최씨가 근무했던 초소 화장실 | 이재덕 기자

ㄱ아파트 경비노동자 최씨가 근무했던 초소 화장실 | 이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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