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가의 저승사자’에겐 금융 개혁 계획이 다 있다

장영은

엘리자베스 워런

엘리자베스 워런은 남성들 전유물이었고 미국 동부의 엘리트 사회를 상징하는 매사추세츠의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미국의 현재 시스템에서 이익을 얻은 이들은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린 워런을 흔들려 하지만, 이번에도 워런은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대선 경선 중이던 지난해 11월22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한 유세장에서 연설하는 워런(사진 위). 당시 경선 중 ‘워런은 계획이 있다( Warren has a plan for that)’ 티셔츠를 입은 지지자와 함께 웃고 있는 워런(아래).

엘리자베스 워런은 남성들 전유물이었고 미국 동부의 엘리트 사회를 상징하는 매사추세츠의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미국의 현재 시스템에서 이익을 얻은 이들은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린 워런을 흔들려 하지만, 이번에도 워런은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대선 경선 중이던 지난해 11월22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한 유세장에서 연설하는 워런(사진 위). 당시 경선 중 ‘워런은 계획이 있다( Warren has a plan for that)’ 티셔츠를 입은 지지자와 함께 웃고 있는 워런(아래).

“우리는 권력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기업 최고경영자와 억만장자에서부터 정치인과 이른바 권위자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싸우지 않고 얻을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투표권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나라이므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목소리를 크게 낸다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1998년 5월, 여성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위한 기금모금회가 보스턴에서 열렸다. 낸시 펠로시, 셰일라 잭슨 리 등 6명의 여성 하원의원이 행사의 주인공이었지만, 스타는 따로 있었다. 당시 대통령 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에 청중은 “환호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하버드대 로스쿨에 재직 중이었던 엘리자베스 워런은 힐러리가 자신을 왜 그 자리에 초대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연설을 마친 힐러리는 엘리자베스 워런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1998년 ‘영부인’ 힐러리에게
“여성·파산 연관 있나” 질문 받고
‘파산법’의 본질 30분 만에 설득
파산법의 거부권 함께 해냈지만
‘상원의원’ 힐러리가 이후 변심

“워런 교수님이시군요. 여성과 파산에 관한 선생님의 뉴욕타임스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재정난에 처한 중산층 가정의 파산보호 축소를 골자로 한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될 조짐이 나타났다. 워런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본론으로 직진했다.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파산법이 여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그리고 어떻게 여성으로서 하버드 법학대학원의 교수가 되셨습니까?”

워런은 1981년부터 약 20년간 파산 신청을 한 여성의 수가 약 6만9000명에서 50만명으로 급증하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힐러리는 30분 만에 파산법의 본질을 파악했다. “힐러리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조급하고 번개처럼 빠르며 모든 미묘한 차이에 흥미를 내보였다.” 힐러리는 법안 통과 반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2000년 10월에 의회가 파산법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사람의 앞날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듬해, 힐러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 차례 거부되었다가 다시 상정된 파산법안에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힐러리는 찬성표를 던졌다. 힐러리의 입장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까지 대학에서 파산법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워런은 힐러리의 ‘변심’을 겪으며 현실 정치의 작동 원리를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2000년 10월은 빌 클린턴 정부의 임기 말이었으므로, “선거운동 기부금이 없어도 괜찮았다”. 2001년에 상원의원이 된 힐러리 클린턴은 “(더 이상) 원칙적인 견해를 유지할 수 없었다. (…) 상원의원 힐러리는 한 해에 은행 업계에서 선거기부금으로 14만달러를 받아 상원에서 두 번째로 많은 정치헌금을 받은 의원이 되었다. 거대 은행들과 힐러리는 이제 한편에 섰다”. 워런은 미국 정계가 재계의 영향력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학계의 일원이라고 해서 안도할 수는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사회 분석의 틀을 제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성, 정치를 하다](7)‘월가의 저승사자’에겐 금융 개혁 계획이 다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워런은 재무부 책임 따져물었고
그를 음해하는 세력의 박해에도
금융 회계 감사 끝까지 실시했다

2003년,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맞닥뜨린 파산 상황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맞벌이의 함정>이 출간되었다. 워런은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감당이 어려워진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현실을 법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일자리는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지만, 교육비와 의료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금융규제 완화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신용카드 발급과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날개를 달았다. 성실하게 일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이 연체 이자율에 허덕이다 파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몇몇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워런이 2003년에 경고했던 주택 법정처분 사태가 문제가 되어 “2008년 전후에 세계적인 경제 붕괴”가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수백만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집을 빼앗겼다. 2008년 경제 붕괴가 미국에 초래한 사회적 손실은 약 14조달러로 추정되었다. 네바다주 연방 상원의원이자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해리 리드는 미국 최고의 파산법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상황이 급박했다. 해리 리드는 그 때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워런에게 전화를 걸어 용건부터 이야기했다. 재무부가 집행할 7000억달러 규모의 금융 긴급구제 자금의 감독 업무를 맡아줄 것을 간청했다.

워런은 재무부의 책임부터 짚어보고자 했다. “아주 쉽고 간단한 언어”로 질문지를 작성해 재무부를 추궁했다. “재무부의 전략이 압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 받은 납세자들의 돈으로 뭘 했습니까?” “이것은 국민에게 공정한 거래입니까?” 관료 집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무부 장관이 대놓고 의회 감독위원회 감독을 무시한 것이다.”

금융개혁 의지를 가진 새로운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었다. 2009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2010년 7월21일에 소비자금융보호국 설립을 포함한 금융개혁 법안에 서명했다. 그리고 즉각 워런에게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워런은 먼저 금융회사들의 상품으로 피해를 입은 약 2500만명에게 금융회사가 110억달러 이상의 돈을 직접 돌려주게 했다. 금융회사들의 회계 감사를 전면 실시하고, 소비자 불만 신고 센터를 개설해서 77만건 이상의 소비자 불만 사건을 처리했다. 워런은 “월가의 새 보안관”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성, 정치를 하다](7)‘월가의 저승사자’에겐 금융 개혁 계획이 다 있다
[여성, 정치를 하다](7)‘월가의 저승사자’에겐 금융 개혁 계획이 다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자신이 받은 사회적 혜택을 갚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남자들의 게임’이라 여겨졌던 매사추세츠 정치판에서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결집했다. 왼쪽 사진부터 워런의 고등학교 졸업 당시 모습, 2010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초대 소비자금융보호국장으로 임명된 워런, 2014년 12월 월가 규제 완화를 포함한 예산안을 비판하는 워런.

엘리자베스 워런은 자신이 받은 사회적 혜택을 갚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남자들의 게임’이라 여겨졌던 매사추세츠 정치판에서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결집했다. 왼쪽 사진부터 워런의 고등학교 졸업 당시 모습, 2010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초대 소비자금융보호국장으로 임명된 워런, 2014년 12월 월가 규제 완화를 포함한 예산안을 비판하는 워런.

워런을 경계하고 음해하는 세력들은 극단적인 강경노선을 취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워런을 소비자금융보호국장으로 임명한다면 대치 국면에 돌입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앨라배마주의 공화당 소속 리처드 셸비 상원의원은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난 절대로 워런을 지지하지 않을 거요. 이건 권력 찬탈이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워런은 “소비자금융보호국에 대한 재무부 장관의 특별고문이자 대통령 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워런에게서 그 자리마저 빼앗아야 안심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었다.” 워런은 대통령에게 직접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는 바로 짐을 꾸렸다. 매사추세츠로 돌아왔다.”

워런은 박해받을수록 담대하게 행동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사임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금융개혁을 추진한 워런의 진정성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워런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전화 교환원과 건물 정비원의 딸이 지방대를 졸업해서 결국 하버드대 교수까지 된 이야기”를 좋아했다. 워런의 대중적 인지도가 껑충 뛰었다. 이제 62세가 된 워런은 하버드로 돌아가 연구에 매진하며 “은퇴 계획에 대해 생각할” 참이었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매사추세츠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싸워주세요”
하버드 로스쿨 ‘파산법’ 교수는
2011년 선거서 여성들 지지 통해
매사추세츠 최초 여성 상원 당선
재선 땐 ‘책임 자본주의법’ 발의

“당신이 필요해요. 날 위해 싸워주세요. 그게 얼마나 힘들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싸울 거라는 걸 알아야겠어요.” 정계와 재계, 학계의 주류 엘리트들과 싸우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던 워런은 미국 사회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젊은 여성의 절망적인 말을 듣고 안절부절못했다. 덜컥 상원의원 출마를 약속한다. 한 학기에 50달러만 내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워런은 자신이 받은 사회적 혜택을 인정했다. 미국 사회에 진 채무를 갚고 싶었다.

2011년 9월, 주 방위군 대령 출신에 개인 재산이 약 1000만달러 가까이 될 뿐만 아니라 “월가가 총애하는 의원”이라고 불리는 공화당의 상원의원 스콧 브라운에게 워런은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언론은 워런에게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여자 후보로 출마하니 어떤가요?” 그때까지 “매사추세츠에서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로 당선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의 많은 사람이 여자는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로 선출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 동부의 엘리트 사회를 상징하는 매사추세츠의 정치권력은 2011년까지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세요. 이런 큰 정치판은 남자들의 게임이랍니다.”

워런은 선거라는 새로운 싸움을 치러야 했다. 하나둘씩 여자들이 모였다. “미국 상원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해 온 바버라 미컬스키 의원이 여성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매사추세츠에 왔다. (…) 여고생들이 은퇴한 지 20년이 넘은 여자들과 같이 자원봉사를 했다.”

그를 경계하는 이들 여전하지만
민주주의 가능성 증명하기 위해
워런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열아홉 살에 결혼했다.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단절 시기도 겪었다. 워런은 공립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다. 법학 공부에 매력을 느낀 워런은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교육자로 쌓은 경력과 파산법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46세 되던 해인 1995년에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로 임용되었다. 여성 유권자들은 워런의 삶에 박수를 보냈다. 선거 캠프는 오로지 투표율에 워런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선거 전주(前週)에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3000가구가 넘는 집을 방문하고 70만통이 넘는 전화를 했는데 이는 매사추세츠 주 사상 최고의 수치였다고 한다.” 유권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사추세츠 사상 최고의 투표율인 무려 73%”를 기록했다.

2012년 11월6일, 매사추세츠 최초 여성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엘리자베스 워런은 “어른이 된다는 것, 책임을 진다는 것,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죽는 날까지 잊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2018년 8월16일, 매사추세츠 재선 상원의원 워런은 “책임 자본주의법안”을 발의했다. 미국 회사법의 근간을 유지하는 대신 연방 차원의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하자는 요지의 법안이었다.

2020년 여름, “(미국의) 현재 시스템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잔뜩 겁을 먹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비록 대선 후보는 아니지만, 그녀가 다음 민주당 정권의 재무부 장관이 되면 미국에 먹구름이 닥칠 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연막을 치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이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길 바란다.



[여성, 정치를 하다](7)‘월가의 저승사자’에겐 금융 개혁 계획이 다 있다

■장영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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