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독재자' 부켈레의 '일론 머스크 스타일' 정치

이윤정 기자

[시스루 피플]은 ‘See the world Through People’의 줄임말로, 인물을 통해 국제뉴스를 전하는 경향신문의 새 코너명입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인스타그램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인스타그램

포퓰리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토양 삼아 자란다. 세계 포퓰리스트들의 롤모델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년간 이런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SNS에서 퇴출되면서 포퓰리스트들은 새로운 롤모델을 찾아나섰다. 엘살바도르의 젊은 포퓰리스트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도 그 중 한명이다.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승인하며 ‘파격 실험’에 나선 부켈레 대통령을 두고 외교전문지 폴린폴리시는 20일(현지시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정치인 버전’ 같다”고 표현했다.

1981년생으로 만39세인 부켈레 대통령은 여러모로 머스크와 닮았다. 아웃사이더이지만 자신만만하고 의사표현에 거침이 없다. 청바지에 모자를 거꾸로 돌려쓴 사진을 자주 SNS에 올리고, 트위터에서 밈(유행하는 사진이나 짧은 영상)과 리트윗도 즐긴다. 특히 가상통화를 열렬히 지지한다. 트위터 프로필에는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레이저아이’를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 세계 최초로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법정통화로 승인된 것도 부켈레 대통령의 구상에서 나왔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트위터 프로필.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레이저아이’를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트위터 프로필.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레이저아이’를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

인생 스토리도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을 일군 거물들과 비슷하다. 호세시메온카나스중앙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사업을 하겠다며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 뒤에는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 도움으로 18살에 홍보대행사를 차리기도 했다. 부켈레의 집안은 20세기 초에 남미로 이주한 팔레스타인의 후손이다. 부켈레 아버지는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이다.

부켈레 대통령이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는 떠오르는 ‘진보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2012년 좌파 성향의 당시 집권당 파라분도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해 누에보쿠스카틀란이라는 소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됐다. 3년 뒤에는 수도 산살바도르 시장에 올랐다. 2017년 당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FMLN에서 제명되자 그는 우파당인 ‘새로운 생각(Nuevas Ideas)’을 창당했다. 산살바도르 시장을 맡으며 청소년 교육과 복지를 강화한 덕에 산살바도르 범죄율이 16% 낮아지기도 했다.

2019년 부켈레는 37세로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30년 이어진 양당 체제를 부수고 제3당인 우파 국민통합 대연맹(GANA) 소속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아웃사이더’로 통했지만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는 자유분방한 젊은 정치인에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대통령이 된 뒤 젊은 포퓰리스트는 바로 권위주의 지도자로 돌변했다.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는 지난해 2월 무장한 군인과 경찰 수십명을 동원해 국회로 들어가 군·경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며 1억9000만달러의 차입계획을 승인하라고 의원들을 압박했다. 집권한 지 1년 만에 엘살바도르 교도소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갱단을 잡아들였지만, 수감자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수감자 수백명이 속옷만 입은 채 감옥 한가운데 밀집해 앉아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부켈레의 권위주의자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자신에 반기를 든 검찰총장과 대법관을 축출하는 등 법치주의 훼손도 서슴지 않아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켈레 대통령을 ‘밀레니얼 독재자’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대통령실은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교도소에서 속옷만 입은 수감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사진을 공개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엘살바도르 대통령실은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교도소에서 속옷만 입은 수감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사진을 공개했다. AP연합뉴스

부켈레 대통령은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승인했다. 엘살바도르는 콜론이라는 법정화폐를 쓰다가 2001년부터 미국 달러화로 대체했다. 국민 70% 정도가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현금거래가 경제활동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외 이주민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민자들이 해외 금융회사를 끼지 않고 암호화폐로 돈을 부치게 하면 시간과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싸고 변동성이 큰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을 채택하면 엘살바도르의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 우려한다. 엘살바도르 SNS에는 #NadieQuierBitcoin(아무도 비트코인을 원하지 않는다)는 해시태그가 유행할 만큼 비트코인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결국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이 ‘머스크 스타일’의 정치인이 벌인 ‘쇼’에 불과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위주의자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젊고 참신한 면모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쇼라는 것이다. 아직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을 어떻게 화폐처럼 사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비트코인 가치가 더 하락한다면 엘살바도르의 경제가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켈레 뒤를 이어 머스크 스타일 정치인이 되려는 중남미 포퓰리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폴린폴리시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멕시코, 파라과이, 파나마 같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젊은 정치인들이 레이저아이 사진을 트위터 프로필에 올리며 비트코인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권위주의의 연막으로 비트코인을 사용한다면 나라 경제는 마치 인터넷 세상에서만 부풀려진 광고 같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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