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만델라’ 콩데 기니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 이유는?

윤기은 기자

[시스루 피플]은 ‘See the world Through People’의 줄임말로, 인물을 통해 국제뉴스를 전하는 경향신문의 새 코너명입니다.

알파 콩데 기니 대통령이 2017년 6월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뤼셀|EPA연합뉴스

알파 콩데 기니 대통령이 2017년 6월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뤼셀|EPA연합뉴스

‘민주화 영웅이자 독재자.’ 지난 5일(현지시간) 군사 쿠데타로 구금된 알파 콩데(83) 기니 대통령을 일컫는 별명이다.

콩데 대통령은 ‘서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을 정도로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니 독재정권의 민정 이양 이후 당선된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정권을 잡은 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늘리고,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등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 세력을 옹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니에서는 1958년 프랑스 독립 이후 줄곧 장기 독재와 군부 통치가 이어졌다. 1984년 아메드 세쿠 투레 전 대통령이 심장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자 군인이었던 란사나 콩테가 대통령을 자임해 24년간 독재 정권을 이어갔다. 콩테가 사망하자 이번에는 대위였던 무사 다다스 카마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임시 대통령이 됐다. 암살 당할뻔한 카마라는 결국 사임했고, 국방장관이던 세쿠바 코나테가 임시 대통령직을 이어 받아 1년간 재임한 후 2010년 민정으로 이양됐다.

콩데 대통령은 이러한 난세 속에서 태어난 민주화 영웅이었다. 기니 서부 보케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그는 흑인아프리카학생연합(FEANF)에 가입하며 기니 독립운동을 펼쳤고, 1977년 민주국민운동(MND)을 창설해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투레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앞장선 그는 1970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 인권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다음 정권이 들어서자 귀국했다.

그는 콩테 정권으로부터 견제를 받으며 1998년 구금됐다가 정계 은퇴를 조건으로 2001년 풀려났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권력이 민정으로 이양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단체들은 수십년간의 부패하고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수차례 암살을 당할 뻔한 콩데 대통령은 권력욕을 갖게 됐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연임 제한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늘리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그가 지난해 10월 59.5%의 득표율로 3선에 당선되자 많은 시민들은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서아프리카 정치를 연구하는 미 정치학자 더글러스 예이츠는 “권력에 대한 견제자가 없어 그가 개헌을 단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잡은 그는 반정부 시위대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2013년 총선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평화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에 총을 발포하는 등 폭력 진압을 벌였다. 당시 시위 주도세력이자 제1야당인 기니민주군연합(UFDG)은 경찰의 진압으로 46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2019년부터 개헌 반대 시위가 열리자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시위 참가자 수백명을 체포했다.

콩데 대통령은 집권한 10년간 기니의 빈곤도 해결하지 못했다. 기니에는 보크사이트, 철광석, 금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리들의 부패,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콩데 대통령은 자신이 독재자의 행보를 걷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 24와의 인터뷰에서 3선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세력들을 두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며 “45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내가 반민주주의 독재자로 여겨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고 말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기니 군부가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난 6일(현지시간) 기니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군부 세력을 반기고 있다. 코나크리|로이터연합뉴스

쿠데타를 일으킨 기니 군부가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난 6일(현지시간) 기니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군부 세력을 반기고 있다. 코나크리|로이터연합뉴스

결국 마마디 둠부야 사령관을 필두로 한 군부 세력은 지난 5일 콩데 대통령을 구금하고 기존 정부를 해체했다. 둠부야 사령관은 쿠데타 직후 “우리는 더 이상 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지 않을 것이며 국민에게 정치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군부는 콩데 정권에 의해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콩데 대통령의 독재에 질린 일부 시민들과 야당 세력은 쿠데타를 반겼다. 셀로 데일린 디알로 UFDG 대표는 쿠데타를 “우리 국민의 승리이자 독재 정권의 실패”로 규정하고 군부 세력의 과도 정부 구성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쿠데타 소식이 들려오자 일부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군부세력을 환영하기도 했다. 한 기니인은 “쿠데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통령은 민주적 투표로 선출되어야 하는 것도 안다”며 “하지만 권력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 늙은 대통령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쿠데타 이후 기니의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군부 세력이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기니에서는 콩데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그를 옹호하는 시민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말리, 니제르, 차드 등 지난 1년여간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서아프리카의 정세도 더욱 불안해진 상황이다.

[관련기사] 아프리카 기니서 군사 쿠데타 “대통령 억류 중, 구국이 군인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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