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 이중벽 쌓는 데 5분···집 ‘뽑아내는’ 3D프린팅 건축, 이미 현실로

윤희일 선임기자
두바이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3D프린팅 건축물’. 아피스 코르(Apis Cor)사가 건축한 것이다.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apis-cor.com)

두바이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3D프린팅 건축물’. 아피스 코르(Apis Cor)사가 건축한 것이다.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apis-cor.com)

2020년 11월 독일 발렌하우젠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바닥면적이 380㎡인 3층 규모의 이 아파트에는 ‘3D프린팅 건축’이라는 특수공법이 적용됐는데, 건물의 뼈대가 되는 벽체를 건설하는 데 불과 6주가 걸렸다. 당시 잉크 대신 고압의 시멘트를 분사하는 2.5m 길이의 프린터가 가로·세로 1m짜리 2중 벽체를 쌓는 것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3D프린팅 기술을 건축에 활용하면서 공기가 대폭 단축된 것이다. 이 아파트에는 현재 5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다.

3D프린팅 건축 기술이 세계 건축 업계에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이 너도나도 3D프린팅 건축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 건축 기술이 달이나 화성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3D프린팅 건축이 일반화되면 일상생황에서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내 머리로 구상해 컴퓨터에 내가 그린 집’을 주문하면 같은 시기에 주문한 자동차보다 먼저 완제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3D프린팅 건축 기술의 개념도.  특허청 제공

3D프린팅 건축 기술의 개념도.  특허청 제공


■‘짓는 건축’에서 ‘뽑아내는 건축’으로

3D프린팅 건축 기술 시대에는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뽑아내게 된다. 속도는 한마디로 ‘꿈의 속도’ 수준이다.

3D프린팅 건축 기술은 ‘3차원 인쇄(3D프린팅)’에 그 뿌리를 둔다. 이는 2차원 평면 인쇄를 수백 번 반복해 쌓아가다 보면 3차원의 입체가 만들어진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3D프린팅 기술을 건축 분야에 적용한 3D프린팅 건축의 원천기술은 ‘등고선 제작법’이다. 199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허가 등록됐지만, 실제 건축물 제작에 적용된 것은 2010년 이후의 일이다.

3D프린팅 건축은 공사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들고 3D도면에 따라 자동화 방식으로 정밀 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축 폐기물 발생이 적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3D프린팅 건축 기술은 빈민가나 재난지역, 난민지역, 분쟁지역 등에서 신속하게 거주시설을 마련하는데도 유용하다.

물론,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큰 편이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3D프린팅 건축 기술이 가져온 ‘속도 혁명’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이집트 피라미드의 건축 과정과 비견된다. 1882년에 착공된 이 성당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와 건축을 책임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우디가 73세를 일기로 사망한 1926년 당시 공정률은 25%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컴퓨터 지원 설계 및 가공 기술의 도움으로 속도가 붙었다고는 하지만, 완공 목표 시점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이다.

이집트의 상징인 기자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평균 25t의 석회암과 화강암 돌덩이 약 230만 개를 정사각뿔 형태로 쌓은 건축물이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 피라미드를 짓는데 약 10만명의 노동자가 동원됐고, 20여년에 걸쳐 건축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3D프린팅 건축 기술 발전은 어디까지

3D프린팅 건축에는 ‘설계기술’, ‘소재기술’, ‘장치기술’ 등 3가지 핵심기술이 필요하다.

특허청 관계자는 “3D프린터로 물건을 만들 때 필수적인 설계도, 재료물질, 물질배출을 위한 분사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3D프린팅 건축 기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계기술’은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기술과 건축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검증하는 기술, 그리고 3차원의 도면을 2차원의 도면으로 분할하는 기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소재기술’ 분야에서는 건축재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기술과 그 밖에 콘크리트혼합물이나 우레탄폼 등을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장치기술’은 최근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원천특허인 ‘등고선 제작법’은 가정용 3D프린터를 건물 크기로 확대한 것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린터 헤드(노즐)이 가로·세로·높이 등 3개 레일 축을 따라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방식이다.

중국의 윈선사가 2014년 세계 최초로 3D프린팅 건축 기술을 적용, 주택을 건축한 바 있다. 이 당시 업체는 3D프린터로 주택 모듈을 출력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가로 10m, 세로 40m, 높이 6m의 주택 10가구를 하루 만에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제작비용이 가구당 5000달러에 불과해 3D프린팅 건축의 활용성과 시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윈선사가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제작한 주거용 건축물.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insun3d.com)

중국 윈선사가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제작한 주거용 건축물.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insun3d.com)

최근 주목을 받는 3D프린팅 건축 기술로는 로봇 팔의 끝에 건축재를 뿜어내는 노즐을 단 ‘로봇 팔 방식’을 들 수 있다. 2018년 영국의 러프버러대학에서 특허을 받은 기술이다. 로봇팔 끝에 달린 노즐은 콘크리트 재료 등 다양한 재료를 뿜어낼 수 있어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비정형 구조물’을 제작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노즐을 로봇 팔이 아니라 기중기 끝에 설치하는 ‘크레인 방식’도 등장했다. 이 기술은 2020년 미국 특허를 받았다. 러시아 기업이 이 기술을 적용해 두바이에 바닥면적이 640㎡이고, 높이가 9.5m인 2층 건물을 완공한 바 있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크기의 3D프린팅 건축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3D프린팅 건축 기술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물이 집을 짓는 과정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라면서 “제비가 자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구상 대로 흙을 물어다 한 겹 한 겹 쌓아가면서 집을 짓는 것이나, 누에가 몸에서 실을 수백, 수천, 수만 번 뽑아내 고치를 만들어가는 과정 등은 3D프린팅 건축 기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부동산 시장의 대세는 3D프린팅 주택?

3D프린팅 건축을 주택 사업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업계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건설회사 아이콘은 2021년 부동산 개발업체와 협력해 텍사스 오스틴 지역에 약 93~186㎡ 면적의 주택 4채를 1주일 만에 완성했다. 기존 자재보다 강하고 내구성이 좋은 콘크리트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재료의 점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활용,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세워진 3D프린팅 주택.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iconbuild.com)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세워진 3D프린팅 주택.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iconbuild.com)

국내에서도 건설사와 3D프린팅 전문기업의 협력을 통한 3D프린팅 건축 기술의 실용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형태가 자유로운 비정형 건축재 제작 및 시공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2019년부터 3D프린팅 장치 전문업체인 쓰리디팩토리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터널 내벽 공사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비정형 건축재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이 3D프린팅 건출 기술로 제작한 벤치.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1.hdec.kr)

현대건설이 3D프린팅 건출 기술로 제작한 벤치.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1.hdec.kr)

이 회사는 3D프린팅 기술로 만든 비정형 벤치(폭 1m, 길이 8m, 높이 1m)를 자체 시공한 아파트에 시범적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6월 비정형 건축 전문기업인 마션케이가 자체 개발한 3D프린팅 건축 기술을 활용해 시공 기간을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한 소형 건축물을 선보인바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제작한 소형 건축물.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samsungengineering.co.kr)

삼성엔지니어링이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제작한 소형 건축물.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samsungengineering.co.kr)

■3D프린팅 건축 시장은 ‘블루 오션’

건설·부동산 업계에서 3D프린팅 건축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관련 기술 시장은 아직 비어있는 편이다. 치열한 경쟁 시장인 ‘레드 오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블루 오션’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국내나 해외나 비슷하다.

2일 특허청에 따르면 2019년과 2020년 접수된 3D프린팅 건축 기술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각각 9건과 14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까지 3D프린팅 건축 기술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의 기술개발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특허청의 분석 결과, 현재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 중 최근 5년간 미국 특허출원 건수가 10건을 넘는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야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마이티빌딩의 경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에 출원한 특허는 7건에 불과했다.

이상호 특허청 스마트제조심사팀 심사관은 “비교적 초기 단계인 3D프린팅 건축 시장에서 절대 강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라면서 “업계와 학계 등이 3D프린팅 건축 기술 분야에서 힘을 모아간다면 이 분야에서 ‘K-건축’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해외의 일부 업체는 이 분야에서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이어가면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3D프린팅 건축 분야에서 다수의 특허를 출원하고 있는 미국 스타트업 마이티빌딩은 최근 자외선을 쬐면 굳는 특수재료를 이용, 벽체와 함께 배관 구멍까지 동시에 만들 수 있으면서 약 32㎡ 넓이의 주택골조를 24시간 만에 완성하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이 기업은 팔라리그룹과 함께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고급 주택지인 랜초 미라지 지역에 미국 최초의 ‘친환경 3D프린팅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기업은 전체 공정을 80% 이상 자동화함으로써 135㎡ 면적의 집 15채를 일반주택보다 30% 정도 적은 비용으로 2~4주 만에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마이티빌딩은 향후 15년간 3D프린팅 주택을 100만채 이상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지역에 건설될 미국 최초의 친환경 3D프린팅 주택단지 예상도.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mightybuildings.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지역에 건설될 미국 최초의 친환경 3D프린팅 주택단지 예상도.  특허청 제공(사진 출처 www.mightybuildings.com)

이 심사관은 “실제 거주용 건물을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제작·공급하고 있는 외국의 기술과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비교하면 아직은 격차가 있는 것은 현실”이라면서 한국 기업의 기술개발 필요성을 지적했다.

■우주에 짓는 집은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이나 위성 등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꿈으로써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우주를 건설하는, 이 계획에서도 3D프린팅 건축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인화와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3D프린팅 기술의 특징이 그 배경이다.

일론 머스크는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를 설립하면서 인류를 화성에 이주하여 정착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이 꿈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연구와 탐사 목적으로 달이나 화성에 건축물을 지으려는 시도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런 시도의 중심에 3D프린팅 건축 기술이 있는 것으로 본다.

서을수 특허청 융복합기술심사국장은 “지구 밖 행성에 우주인을 상주시킨다는 인류의 원대한 꿈이 달성될지 여부는 3D프린팅 건축 기술의 발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우리의 희망을 바탕으로 황량한 무인 행성 표면에서 인류의 꿈과 미래를 한층 한층 쌓아 올리는 3D프린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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