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 얼마든지 해, 겁나지가 않어~” 여기 ‘힙한’ 노조가 있다?

이혜리 기자

공공운수노조, 총궐기 영상 SNS서 화제

“탄압 얼마든지 해, 겁나지가 않어~” 여기 ‘힙한’ 노조가 있다?

검은 벽 앞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어느 중년 남성이 들어와 자리에 앉더니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의 반주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남성이 말한다.

“야, 너네 탄압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아. 왜냐면 나는 겁나지가 않어. 한 개도 겁나지가 않어~.”

“어? 너네 민영화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왜냐면 난 겁나지가 않어. 전혀 겁나지가 않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4일 유튜브 계정에 올린 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음달 2일 총궐기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선전실에서 만든 티저 영상이다. 영상 길이가 1분26초에 불과한데, 트위터에서 1만회 이상 리트윗(공유) 됐다.

SNS에서는 “총궐기 홍보 영상이 이렇게 힙할 수 있다니”, “멋있다. 스웩이 넘친다”, “이게 K-노동자이고 찐 힙합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특히 지난 7일부터 8일간 이어진 화물연대 총파업과 맞물려 영상 댓글엔 파업을 응원하고 연대한다는 메시지가 잇따라 달렸다.

통상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총궐기, 결의대회에는 ‘파업가’나 ‘민중가요’ 같은 다소 삼엄하고 진지한 노래들이 함께한다. 구호도 딱딱한 내용들이 많다. 공공운수노조 총궐기가 내세우는 구호는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비정규직 철폐, 민영화 분쇄,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다.

이번 영상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나왔다. 일단 장기하의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와 신박한 가사로 각종 패러디와 틱톡 챌린지를 만들어낸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차용하기로 했다. 돈과 성공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부럽지 않다는 말을 던지는 이중적 상황을 짚은 이 노래 메시지는 청년들에게 가볍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가사는 ‘탄압’ ‘민영화’ ‘공공성’ ‘노동권’ ‘교섭’과 같은 몇 개의 키워드만 남기고 나머진 대중적 언어로 풀었다. 개사 과정에서 “투쟁하는 거야” “연대하는 거야” 같은 문장을 넣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의 집무공간을 상징하는 용산에 초점을 맞춰 “같이 용산 쳐들어 가는 거야”로 바꿨다. 직설적으로 ‘투쟁’을 외치지 않더라도 반노동적 인식을 드러내온 윤석열 정부를 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은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인데, 영상 속에서 자신의 직함을 명확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박 수석부위원장은 영상 막바지에서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겁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우리야”라고 말한다. 영상은 다음달 2일 공공운수노조 총궐기에 ‘겁나지가 않는 사람 모이라’는 문구로 끝난다.

이번 영상을 기획한 박영흠 공공운수노조 선전실장은 “중앙집행위원회·대의원회의와 같이 의사결정구조가 꽉 짜여진 노동조합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고 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 노동조합의 총궐기를 희화화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새로운 선전·홍보 방식을 조합원들이 원하고 진보진영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이슈를 의제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동조합의 다양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오프라인 집회를 하기 어렵게 되자 시민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아바타 캐릭터로 1인 시위를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에서 청년노동자대회를 열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한 ‘총파업 게임’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예능프로그램과 접목시켜 노동이슈를 쉽게 풀어내는 영상 제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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