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연’ 찍은 영화감독 문근영, 이 작품을 통해 “심연에서 벗어났다”

오경민 기자

단편 데뷔···BIFAN서 시리즈 3편 공개

전부 대사 없어···‘심연’은 본인 이야기

“앞으로의 연기, 과거와 다를 것 같아”

10일 경기 부천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최초로 공개한 문근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10일 경기 부천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최초로 공개한 문근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푸른 물 속에 한 여자가 잠겨 있다. 눈을 뜨니 주변은 어둡고 혼자다. 멀리서 빛이 내려온다. 여자는 그곳을 향해 간다. 닿을 듯하자 빛이 꺼진다. 포기한 채 절망하자 또 다른 빛이 내려온다. 이 빛도 곧 사라진다. 여자는 이제 화가 난다. 달리고 구르고 헤엄친다. 그러다 자신의 입 속에서 나오는 공기방울을 발견한다. 여자는 공기방울이 되어 사라진다. 배우로 활동해 온 문근영 감독의 첫 연출작 <심연>이다. 문 감독은 <심연>(9분) <현재진행형>(9분) <꿈에 와줘>(15분) 세 편의 단편영화를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 섹션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이날 영화 첫 상영을 마친 문 감독을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연기하려고’ 영상을 연출했다고 했다. 그는 “‘내 감정을 연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극이든, 배우로서는 정해져 있는 캐릭터를 제 옷으로 만들어서 입고 연기를 합니다. 그런 것 말고 순수 창작활동을 해보자, 가수들이 작사·작곡을 하고 댄서들이 코레오그래피(안무)를 만들 듯 우리도 스스로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판을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세 편의 영화는 ‘창작집단 바치’의 첫 번째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 시리즈다. ‘바치’는 문 감독이 영화 창작을 위해 만든 집단이다. 그는 “‘바치’는 원래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사다. 마당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노릇바치, 가죽 만드는 사람은 갖바치라고 했다고 하더라”라며 “처음에는 노릇바치라고 이름을 정하려다가 배우에만 한정하는 것 같아서 ‘바치’로 정했다. 연출도 하고, 글도 쓰고, 찍기도 할 것이라서 역할을 열어뒀다”고 했다.

문근영 감독의 <심연>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문근영 감독의 <심연>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문근영 감독의 <현재진행형>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문근영 감독의 <현재진행형>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문근영 감독 <꿈에 와줘>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문근영 감독 <꿈에 와줘>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심연>은 문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현재진행형>은 배우 정평의 이야기를, <꿈에 와줘>는 배우 안승균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세 편 모두 대사가 없다. 배우는 표정과 몸짓으로 말한다. 음악과 빛을 입체적으로 활용해 연출했다.

3년 전 문 감독은 <유리정원>을 함께 찍은 신수원 감독과 한 전시회에 가 물이 찰랑이는 이미지를 봤다. 예전에 썼던 일기와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물, 심해, 심연, 사람이 나오는 글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으며 전시를 본 뒤, 집에 오자마자 떠오르는 장면들을 적었다. 죽기 전에 이 글을 영상화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심연>이 탄생했다.

10일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문근영 감독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10일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문근영 감독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반복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고통이 끝나면 행복이 오겠지 했는데, 사실 인생이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계속 고통이 반복된다는 걸 깨닫는 것도 고통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는데, 그런 마음을 <심연>에 담았죠. 빛을 좇아서 나갔는데도 여전히 물 속이고, 어쩌면 더 깊고 어두운 물 속이에요. 방향성도 모르게 일부러 화면을 뒤집기도 했어요. 그러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숨쉬고 존재해야만 반복되는 굴레도 있는 거고 벗어날 곳도, 희망이라는 것도 있는 거죠. 나를 인지하고 찾아내서 결국 심해를 벗어났다는 게 결말이에요.”

수중 연기도 직접 했다. 그는 “수중 촬영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수중 촬영 세트장을 운영하는 대표님이 콘티 보고는 하루 만에 못 찍는다고, 5일은 걸릴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루 만에 찍어냈다”며 “‘저렇게 독한 사람 처음 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시더라. 연습하러 언제든지 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심연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가 딱 제 지금과 겹친다. <심연>을 찍는 순간 그것에서 벗어났다. 찍어야지, 찍어야지 마음 속에만 갖고 있었을 때와 다르다”며 “촬영을 하면서 사람도 정말 많이 만났다. 이전에도 현장에서 많은 이들과 만나긴 했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다.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 그곳에서 나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어서 다 정리하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 소속사도 나오게 됐다”며 “많이 쉬고 나서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심연>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받고 환기가 됐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연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이제 연기를 하면 예전의 나와는 좀 다를 것 같다”고 했다.

문 감독의 영화는 14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상영된다. ‘창작집단 바치’의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심연 (Abyss) - 문근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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