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2022 사건·사고-(1)안전불감증

예견 가능한 재난에도 ‘사전 대비’ 없었다

김송이 기자

올 한 해 한국사회는 대형 산불부터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 물류센터 화재,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였지만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전불감증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 대신 이미 만들어둔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8월8일 중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50대 주민 A씨가 집안에 고립돼 사망했다. 사진은 8월11일 사고 현장 옆집 모습. 문재원 기자

8월8일 중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50대 주민 A씨가 집안에 고립돼 사망했다. 사진은 8월11일 사고 현장 옆집 모습. 문재원 기자

관악구 반지하 주택, ‘낯익은 모습’의 재난

여름에는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8월 초 수도권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했다.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5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발달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5년 전에도 90대 노인이 침수된 반지하 방을 벗어나지 못해 익사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지역은 침수가 예견된 곳들이다. 서울에서 반지하가 가장 많은 관악구는 2011년과 2018년 집중 호우 때도 상습 침수지역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유역특성 기반의 서울시 침수위험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관악구는 2011년 7월 집중호우 때도 시간당 최대강수량이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다. 보고서에는 “도림천의 범람 영향 등으로 내수 배제(빗물을 퍼내는 작업)가 불량하고 노면수가 저지대로 집중 유입돼 침수 피해가 크게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선제적 대응은 없었다. 위기관리 기구의 ‘안전불감증’ 탓이다. 관악구를 포함해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침수방지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침수피해 예상지구’를 지정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도 인명 피해가 난 뒤에야 “침수에 취약하지만 (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을 적극 발굴하겠다”고 했다. 재난 이후 발표된 ‘안전 대책’도 새로운 게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 8월10일 ‘반지하 거주가구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반지하 공간을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12년 상습 침수 지역에 반지하 건축 허가를 제한할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9월에는 태풍 힌남노 영향을 받은 경북 포항시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8명이 사망했다. 기록적인 폭우에 더해 포항시가 2019년까지 진행한 냉천 정비사업으로 하천 폭이 8m 이상 좁아진 것도 원인으로 거론됐다. 좁아진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사고가 발생한 지하주차장을 덮친 것이다. 정부·여당은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신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대한 차수벽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존 아파트에도 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을 앞둔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보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을 앞둔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보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이태원 참사’ 당시 먹통된 ‘참사 경보 시스템’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사고였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핼러윈 축제 때 다수 인파가 밀집한 점을 감안하면 참사 당일인 지난 10월29일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용산구청은 2020년 핼로윈 축제를 앞두고 서울교통공사에 이태원 무정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며 “대규모 인파가 이태원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었다. 참사 2주 전 같은 지역에서 열린 ‘지구촌 축제’ 때는 용산구청, 용산경찰서가 함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했다. 지구촌 축제 때는 구청 직원도 150명 현장에 배치됐다. 반면 이태원 참사 당일에는 직원 8명만 현장에 나왔다.

경찰과 소방은 ‘압사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위험 경보를 울리지 못했다. 행안부, 서울시, 용산구는 각각 재난문자 발송 권한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참사 발생 1시간 41분 뒤인 오후 11시56분이 돼서야 첫 문자가 발송됐다. 재난관리 기관끼리 정보를 공유하도록 한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달 11일에서야 “재난안전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 교육과 합동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역별 실시간 인구를 추정하는 ‘실시간 도시데이터’ 서비스 이태원 참사에 활용하지 못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뒤늦게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적인 조직개편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재난 대응 시스템 ‘불비’ 아닌 ‘오작동’ 문제”

전문가들은 재난 예방·대응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는 18일 “국가위기관리센터에는 어느 지역에 어떤 식의 문제가 일어난다는 데이터가 쌓여 있다”면서 “이런 체계가 지금 잘 작동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위기관리센터는 국가안보실 직속 기구로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이 명시하고 있는 세 개의 축이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했다. 세 개의 축은 재난발생 단계별로 각 시장·군수·구청장이 두는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을 말한다. 안전관리위는 지자체장이 소방, 경찰, 한전 등과 지역 재난에 대비해 합동계획을 세우는 기구이다. 안전관리위가 작동해야 재난 발생 우려시 가동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 재난 발생시 투입되는 긴급구조통제단이 원활히 소집된다. 문 교수는 “기초지자체부터 안전관리위원회를 실질화해야 하고, 중앙정부는 기초지자체를 점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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