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게…사내벤처 ‘착한 기술’, 삼성 TV 바꿨다

이재덕 기자

저시력자 TV 시청 돕는 ‘릴루미노 모드’

다른 사내벤처 개발 기술도 여럿 상용화

쉐리던 오도넬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Flush>의 한 장면. 왼쪽은 일반 화면, 오른쪽은 저시력자를 위한 ‘릴루미노 모드’가 적용된 화면이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크게보기

쉐리던 오도넬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 <Flush>의 한 장면. 왼쪽은 일반 화면, 오른쪽은 저시력자를 위한 ‘릴루미노 모드’가 적용된 화면이다. 삼성전자 제공.

시각장애인에 속하는 저시력자들은 사물 형태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이들은 시야가 좁고 앞이 희미하게 보이며,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물을 볼 때 얼굴 가까이에 대고 봐야 겨우 식별 가능한 수준이다. 독서를 하거나 시험을 칠 때는 확대기에 책이나 시험지를 올려놓고 모니터에 크게 띄워 내용을 본다.

저시력자들이 더 이상 TV를 듣지 않고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2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출시될 삼성전자의 네오 QLED TV 상위 모델에 저시력자들도 TV를 볼 수 있는 ‘릴루미노 모드’가 도입된다. 릴루미노란 ‘빛을 다시 밝힌다’는 뜻의 라틴어로, 이 모드를 활용하면 TV에 탑재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화면 속 이미지를 분석해 외곽선을 또렷하게 그린다. 명암비, 밝기, 색상, 선명도도 함께 조절해 저시력자 맞춤형 화면을 실시간으로 만든다. 어둡고 흐릿하게 보이던 드라마 속 인물, 사물, 배경을 더 밝고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시력자가 TV 화면을 보면 왼쪽처럼 뿌옇게 보인다. 반면 릴루미노 모드를 적용하면 오른쪽처럼 인물 표정이나 움직임을 세세하게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크게보기

저시력자가 TV 화면을 보면 왼쪽처럼 뿌옇게 보인다. 반면 릴루미노 모드를 적용하면 오른쪽처럼 인물 표정이나 움직임을 세세하게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제공.

릴루미노 모드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박람회 ‘CES2023’에서 처음 공개됐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쉐리던 오도넬은 현장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앞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이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이런 기술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계속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릴루미노는 5년 전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C랩’에 소속된 직원들이 개발한 시각보조기술이다. 당시 개발된 릴루미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가상현실(VR) 기기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VR기기에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릴루미노 앱을 실행시키면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가 켜지면서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밝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이 기술이 다시 태어난 것은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직원들이 TV에 구현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다.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관계자는 “시청거리가 먼 TV에 효과적으로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구현 방안이 고려됐다”면서 “네오 QLED TV 상위 모델의 경우 신호처리 능력과 화질 처리 능력이 뛰어난 퀀텀 프로세서 등이 장착돼 릴루미노 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발 과정에 저시력자 고객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관계자는 “화면을 어느 수준까지 조정해야 저시력자 고객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파악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면서 “당사자들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시력자 고객들이 개발 초기부터 참여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종이 가구가 되는 삼성전자 TV 포장지 에코패키지.

다양한 종이 가구가 되는 삼성전자 TV 포장지 에코패키지.

사내벤처인 C랩 소속 직원들이 제안한 다양한 아이디어는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세로형 TV인 ‘더 세로’, TV 포장 박스를 잘라 종이 가구나 인형을 만드는 ‘에코 패키지’도 릴루미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공교롭게도 더 세로(2020년), 에코패키지(2020년), 릴루미노(2023년)는 모두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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