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김지혜 기자

※뉴스레터 점선면 2월8일자(https://stib.ee/Bjz6)에 게재된 글입니다. 지난 2월7일 첫선을 보인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독자님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련 기사를 검색하신다면, 자주 만나게 될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중단’과 ‘재개’인데요. 2021년 12월 첫 시위 이후,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1년이 넘도록 끝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사가 지하철 시위로 인해 생긴 출근길 혼잡과 불편을 다룹니다. 시위의 ‘재개’ 직후 상황들을 주로 집중 조명하죠. 하지만 이 시위의 끝이 궁금하다면, ‘중단’ 이후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중단이 중단으로 끝나지 않고, 매번 재개로 이어지게 된 이유가 여기 있거든요.

점선면은 지난 1년간 전장연이 시위를 ‘재개할 결심’을 이어온 이유를 알아보려 합니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대차대조표를 그려보면서요. 지난 한 해, 사회부 사건팀에서 전장연을 취재했던 박하얀 기자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1. 지하철 시위 단숨 요약!

·2021년 12월3일 시작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현재까지 총 47차례 진행됐습니다. 전장연은 같은 해 12월6일부터 매일 아침,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선전전도 벌여왔어요.

·요구의 내용은 늘 같았어요. 장애인권리예산을 늘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및 자립생활권 등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묶어 장애인권리예산이라 부릅니다.

·요구 대상은 계속 바뀌었어요. 주로 예산의 ‘키’를 쥔 사람 혹은 부처를 향했죠.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윤석열 대통령→기재부→국회→기재부→오세훈 서울시장→기재부…)

·요구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 12월24일 국회가 최종 의결한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전년 1조9493억원보다 3043억원 늘었지만, 전장연에 따르면 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연 증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2023년 1월2일부터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겠다 밝혔지만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의 ‘무관용 원칙’을 앞세워 열차 무정차 통과, 탑승 제지를 강행했기 때문이죠.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에 6억원여의 손해배상도 청구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 2월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 이후 오는 13일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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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이어진 지하철 승하차 시위에도 전장연의 요구는 대부분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정차 통과·손해배상 청구 등 서울시의 대응이 강경해졌어요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난 1월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장애권리예산 쟁취를 위한 지하철 행동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난 1월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장애권리예산 쟁취를 위한 지하철 행동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 ‘돈 얘기’만 하는 이유, 뭘까요?

시위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볼까요?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전장연의 요구는 한결같습니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늘려달라는 거예요. 네, 돈 얘기입니다. 돈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시위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일이 허다했는데도, 전장연은 ‘돈 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 장애인이 늘 ‘후순위’로 밀리는 예산 배분 때문이에요. “장애인 먼저”라는 말은 쉽지만, “장애인 먼저” 예산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습니다. 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서울시는 2004년에 이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갖췄을 거예요. 2002년 이명박 시장이 그렇게 약속했거든요. 2015년 박원순 시장은 선언까지 합니다.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요. 하지만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못했어요. 이유는? 언제나 “예산 문제”였죠.

2. “장애인 권리보장은 저효율”이란 말

그럼 예산이 책정되지 못한 이유는요? 여기에 두 번째 배경이 있습니다. 2021년 10월 강은 기자의 취재에 응한 서울시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월2일 전장연-서울시장의 면담 자리에서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탈시설을 해서 일반지역에 거주할 때 (…) 연 1억 5000만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액수를 힘주어 강조한 그는 이후 탈시설보단 장애인 시설 환경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죠.

서울시의 두 공무원은 사실상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권리보장에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여기에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마치 수익이 나지 않는 상품에 더 이상 비용을 투자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죠.

하지만 권리예산의 배분은 상품 아닌 사람에 대한 결정입니다. 비용과 수익을 기준으로 ‘사람다운 삶’의 자격을 정할 순 없어요. 전장연의 ‘돈 얘기’는 그런 사회에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3. 권리예산은 모두 ‘탈시설 예산’인가요?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안을 조금 뜯어보겠습니다. 지난해 전장연은 권리예산을 전년보다 약 1조2700억원을 늘려 장애인의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전장연이 가장 큰 규모로 증액(약 9000억원)을 요구한 예산은 바로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 예산입니다. 홀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운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활동지원사가 부족해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활동지원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죠.

책 <유언을 만난 세계>엔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한강대교를 맨몸으로 기고, 휠체어로 차량을 막고, 장기간 노숙까지 불사했던 장애인운동가들의 치열한 투쟁기가 적혀있어요. 그만큼 절박한 요구로 생겨난 제도인데도, 예산 문제로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밖에 전장연은 탈시설 이후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169억원),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예산(45억원), 장애인 근로지원인 지원 예산(1611억원) 등의 증액을 요구했습니다. 모두 자유롭게 이동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일하고, 교육받는, 삶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돈이죠.

4. 왜 하필 출근길 지하철인가요?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2001년 1월 서울 4호선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전장연은 다양한 행동을 해왔습니다. 이후 22년간 지하철은 전장연 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죠. 쇠사슬을 몸에 감은 채 지하철 선로를 점거한 적도 있고요.

다만 앞선 시위는 모두 비교적 한가한 낮 시간에 이뤄졌어요.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승하차 시위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죠. “비장애인들에게 맞아 죽을까 봐 두려워 감히 생각도 못 했”던 방법이었어요. 그럼에도 감행한 이유는 뭘까요? 박경석 대표는 “이동권 문제만 놓고 봐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청와대 안에서 기습 시위까지 벌였지만, 목소리는 소용없이 흩어지는 듯했죠.

전장연이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들고 곧바로 출근길 지하철로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21년 3월부터 전장연은 권리예산 요구안을 전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이메일을 보내고, 청사 앞에서 농성도 했지만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어요. 아홉 달이 조용히 흘렀습니다.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당시 기재부 복지예산과장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게 됩니다. 비록 들은 건 “각 부처에 직접 예산 증액을 요구하라”는 통보뿐이었지만, ‘맞아 죽을’ 각오 끝에 벌인 시위에서 드디어 소통의 물꼬를 트게 된 거예요.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해 4월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열차에서 ‘오체투지’ 방식으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해 4월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열차에서 ‘오체투지’ 방식으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5. 중단과 재개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시작은 좋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2022년 3월) 인수위를 통해 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받고 “당연히 중점과제로 다루고 추진할 예정”이라 말했죠.

이 정도 약속이면 괜찮지 않나요? 하지만 정작 정책이 없었어요. 전장연은 이미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4개부처에 대한 증액 요구안을 세세히 정리해 인수위에 전달한 상태였는데도요.

기다림은 전장연의 특기입니다. 이들은 장애인의날(4월20일)까지 인수위의 정책 발표를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날까지 출근길 승하차 시위를 잠시 중단한 채, 혜화역 승강장에서 삭발 투쟁만 지속하겠다면서요. 하지만 인수위 발표엔 전장연의 요구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릴없이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가 재개됩니다. 이번에는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오체투지’ 방식으로요.

6. 있었는데 없어진 약속

전장연은 또 기다립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당시 후보자)로부터 인사청문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날까지 열차 승하차 시위를 멈추기로 하죠. 약속은 지켜졌을까요? 글쎄요. 추경호 후보자는 장애인 콜택시 운영비의 국비 지원을 약속한 것 외에는 권리예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2022년 6월 말, 전장연은 7개월간의 승하차 시위 끝에야 처음으로 기재부와 보건복지부의 실무자를 만나게 됩니다. 예산안 반영의 실무적 논의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뿐이었습니다.

7월에도 전장연은 기다렸어요. 추경호 부총리와의 면담을 약속받고 승하차 시위를 잠시 중단했죠. 그렇게 만난 추 부총리는 “기재부는 전 부처가, 대한민국의 모든 곳에서 예산을 더 달라고 하는 곳”이라며 “그거(요구) 다 담아내면 대한민국 나라 망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8월에도 기다렸어요. 윤 대통령 취임 100일째인 8월17일까지 대통령실이 권리예산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며 승하차 시위를 중단했죠. 그러나 돌아온 건 ‘무응답’이었습니다. 이날 아침 전장연 활동가들은 지하철 4호선을 탔습니다.

지하철 승하차 시위의 중단-재개 사이클은 이렇게 지속됐습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시작한 시위를 어떻게든 끝맺으려는 전장연의 ‘대화 시도’는 정치권의 허울뿐인 약속과, 혹은 허울조차 되지 않는 막말과 무응답으로 차단되곤 했습니다.

7. 시위가 남긴 것

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것이 2022년 8월입니다. 장애인권리예산이 전년보다 늘긴 했지만, 전장연 요구 수준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규모였어요. 전장연은 이마저도 “최저임금 인상분 반영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래서 전장연은 8월 이후에도 부단히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사이 국회 상임위가 기존 정부안보다 규모를 대폭 늘린 권리예산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 2022년 12월24일 최종 통과된 예산안에 반영된 건 그중 0.8%뿐이었어요.

결과적으로 1년 넘게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전장연이 유의미하게 얻은 성과는 106억원의 장애인 근로지원인 예산 증액 정도입니다. 애초에 전장연은 이 사업에 약 1600억원 규모의 증액을 요구했으니, 대부분은 묵살된 셈이지만 말이죠.

그래도 하나 더 짚어 보자면, 원래는 없던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 예산이 신설됐다는 성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효성 면에서 의문이 있어요. 이 역시 당초 요구안의 7분의 1 수준 편성에 그쳤거든요. 전장연은 “콜택시 1대당 운전원 1명의 인건비도 안 되는 예산”이라고 꼬집습니다. 돌아보고 나니 결국 ‘원점’입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전장연은 1년이 넘는 지하철 시위를 벌이며 한결같이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이들의 요구 대부분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1. “굉장한 강자, 전장연”

지난 2월2일 전장연과의 면담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입니다. 전장연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오 시장의 시각이 잘 드러나있어요.

 “저는 전장연이 굉장한 강자가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시성을 정말 큰 생명으로 하는 대중교통, 지하철을 84번을 운행 지연을 시켰습니다. (…) 그런데 경찰도 우리 박경석 대표님을 비롯한 전장연의 시위하시는 분들을 제대로 처벌을 못 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 정도 사회적 강자는 없습니다.”

오 시장은 전장연이 모든 처벌과 소송을 피해가는 ‘법 위의 존재’처럼 표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전장연을 두고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고 했고, 현재도 전장연 활동가 27명이 형사처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오 시장은 이날 뜻밖의 진심도 털어놓는데요.

 “장애인 여러분들의 불편함 없는 이동권 보장해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 1년에 예산 1억 5천이 아니라 15억이 되더라도 가능만 하다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진심입니다. 그런데 예산을 그렇게 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고 단계가 필요합니다.”

전장연은 “굉장한 강자”지만, 장애인 여러분은 “도와드리고 싶다”는 그의 진심은 “예산을 그렇게 배정하기는 어렵다”는 말로 끝맺습니다. 그러나 예산 없는 진심은 현실이 되지 않아요. 특히 ‘시간과 단계’에서 줄곧 후순위로 밀려온 장애인에겐 더더욱 그렇습니다.

2. “넌 시민이 아니야”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오 시장의 말을 “전장연을 강자로 승격시킨 게 아니라 약자에서 탈락시킨 것”으로 해석합니다. 오 시장의 눈에 비친 장애인은 강자도, 약자도 아닌 “시민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모자란 존재”일 것이라면서 말이죠.

 “과연 그는 비장애시민들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서울의 15개 역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역사들 중 5%에 불과하죠. 이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닌가요?’ 누구나 이용하지만 내게는 허용되지 않는 역이 있다면 단 한 개여도 문제가 아닐까. 정부든 서울시든 당장 문제를 시정할 것이고,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시민이 아니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시민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모자란 존재인 것이다.”

고 연구원에 따르면 오 시장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거나 “’내 권리 달라’ ‘내 돈 내놓으라’” 요구하는 약자를 약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 시장은 늘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지만 그가 동행하고자 하는 약자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이어야 해요. 약자를 애초에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죠.

 “삼각지역의 장애인들은 돌덩이처럼 묶여 있던 사람인가, 사람 모양으로 놓여있던 돌덩이인가. 노인처럼 소리를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정부 당국자들도 이들이 사람인지 툭툭 건드려본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을 사람, 시민이 아닌 ‘돌덩이’로 보는 건 비단 오 시장뿐이 아닙니다. 지난 1월2일 아침 삼각지역, 지하철 탑승을 제지당한 전장연 활동가들을 보며 고 연구원은 이렇게 씁니다. 당시 장애인에게 “너희가 사람이냐” 모욕한 것은 한 노인 탑승객이었지만, 정부 당국자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다고요. 사람을, 시민을 ‘돌덩이’로 취급하지 않고서야 온갖 냉대와 혐오를 감수하며 쏟아낸 이들의 목소리를 이렇게까지 모른 체할 리 없으니까요.

3. 곁에 남은 동료 시민들

지난해 전장연을 취재했던 박하얀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전장연이 이 시위로 얻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박하얀 기자는 “현장에 가면 대놓고 혐오 표현을 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덧붙였어요.

 “전장연을 응원하는 시민들 역시 늘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지하철 시위로 출근이 늦어진 경우, 해당 직원의 근태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회사도 나타났고요. 장애인 권리 보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4월, 야당 대표였던 이준석씨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TV 토론은 정치적 이슈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장애인의 권리 보장 요구를 장애인-비장애인 갈라치기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혐오에 힘을 부여하는 나쁜 정치인의 폐해도 확인했고요. 이제는 장애인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을 논해야 할 때이고, 많은 시민이 이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동료 시민’의 등장은 얼마나 유의미한 성취로 남을까요? 이와 관련해 지난 2월3일 전장연이 보도자료와 함께 게시한 글의 토막을 함께 읽으며 오늘의 점선면을 끝맺으려 합니다. 글은 “시민분들께 제안드립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요.

 “전장연은 100명 중 99명의 시민이 혐오하고 갈라치게 될지라도, 1명의 시민과 함께 지하철 행동을 포기하지 않고 외치겠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전장연과 함께 하는 1명의 시민이 되어주십시오.

✔전장연이 잃은 것: 혐오하고 갈라치는 99명의 시민. ✔전장연이 얻은 것: 그들과 연대하는 1명의 시민. 이 명확한 대차대조표 앞에서 독자님은 어떤 시민이 되고 싶으신가요?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숱하게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도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았던 시간들, 그 오래된 모욕과 배제야말로 전장연이 1년이 넘도록 지하철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간의 시위가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어요. “전장연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늘었다”는 박 기자의 말처럼요.

[뉴스레터 점선면]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로 무엇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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