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모든 것이 찢긴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14일(현지시간) 오후 튀르키예 남부 지진 피해 지역인 안타키아에서 경향신문 사진부 문재원 기자가 동네 어린이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서영 기자 사진 크게보기

14일(현지시간) 오후 튀르키예 남부 지진 피해 지역인 안타키아에서 경향신문 사진부 문재원 기자가 동네 어린이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서영 기자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모든 것이 찢긴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3일차를 맞은 지난 8일 밤(현지시간), 튀르키예로 향했다. 이튿날부터 아다나, 안타키아, 카라만마라슈 등 지진 피해 지역에서 땅과 함께 인생이 뒤틀려버린 이들을 만났다. 차마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지진 피해 지역은 ‘폐허’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처참했다. 특히 하타이주 안타키아는 누군가가 아포칼립스 콘셉트의 테마파크를 공들여 조성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만들지 못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도무지 성한 건물이라곤 없었다.

완전히 옆으로 눕거나 아래로 폭삭 꺼진 건물이 어디에나 눈에 띄었고, 외벽이 통째로 뜯어져 나가거나 쫙쫙 금 간 건물도 흔했다. 도로에는 건물 잔해, 생수병, 옷가지, 일회용품 등을 비롯한 온갖 쓰레기가 넘쳐 흘렀고 공기 중에는 곳곳에서 피워댄 모닥불 냄새와 시멘트 가루가 떠돌아다녔다. 골목을 돌 때 가방에 담긴 시신과 마주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안타키아를 취재하고 돌아와서 코를 풀면 피가 섞여 나왔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채 길거리에 앉아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채 길거리에 앉아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안타키아뿐만 아니라 아다나, 카라만마라슈 등에서도 거리로 내몰린 이들의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편히 발뻗고 잠들었을 사람들이 이제는 거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튀어나온 철골과 중장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어디에나 천막이 들어섰다. 천막 안의 세간이라고 해봐야 이불과 물, 옷가지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군인들이 폐허를 뒤져 땔감을 주워 모았고, 주민들은 지원받은 물품을 자루에 넣어 텐트로 날랐다. 그 험하고 삭막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생존자를 찾지 못하고 끝내 돌아서는 구조대의 등을 바라보는 유족의 표정이 가슴에 맺혔다. 이들은 “한 번만 더 해달라”고 연신 부탁하며 구조대를 붙잡았다. 그나마 이렇게 구조 가능성에 매달릴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 상황은 ‘구조 및 수색’에서 ‘철거’로 옮겨 갔다. 거리에서 구조대를 마주치기가 이전보다 점점 더 힘들어졌고, 따라서 구조대원을 붙잡고 “저쪽에도 한 번만 가달라”고 우는 주민들도 줄어들었다. 튀르키예 정부 또한 구조 작업 종료 지역을 속속 선언했으므로 앞으로는 실종자 구조가 아닌 생존자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한 남성이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한국 구조대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한 남성이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한국 구조대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이 폐허를 복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도시 전체를 새로 지어야 하는 작업이다. 땅 속에서부터 어긋난 공간에 수도와 전기, 가스를 복구해야 한다. 한 번 금이 간 건물은 다시 사용할 수 없으니 결국은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지진 생존자들이 다시 지진 피해 지역으로 되돌아올지도 미지수다. 생존자들은 지진에 한 번,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심에 다시 한 번 집을 잃었다. 이들 상당수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몇몇 도시에선 빈 방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건물 재건을 넘어 교육과 보건 문제 등으로까지 확장하면 완전한 ‘회복’엔 최소 한 세대가 걸릴 듯했다.

보면 볼수록 한 국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 참상을 널리 알릴 필요에 공감하는 듯 튀르키예 시민들은 구조대뿐만 아니라 기자도 반가이 맞아줬다. “튀르키예를 도우러 가는 것이냐”는 질문을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몇번이고 받았다. 재난 현장에서 마주친 이재민, 경찰, 군인, 구조대원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고개를 살짝 내리며 인사를 건네왔다. 임시 대피소와 길거리, 매장지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는 이들을 만났다. 아다나 시내 한 음식점에선 프레스 카드를 보고는 한사코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의 붕괴된 주택에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의 붕괴된 주택에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이재민들은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든 손 사이로 빵과 과자, 음료를 쥐어 줬다. 쪼그려 앉아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 사진기자의 얼굴 옆으로 과자를 든 아이의 손이 불쑥 들어오기도 했다. ‘형제의나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더 반가워하며 먼저 말을 걸었다. 이들의 표정에서 슬픔과 감사가 보였다.

튀르키예의 폐허에선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타인에게 자신의 남은 것을, 마음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들의 앞에 놓인 지나치게 큰 고통이 하루 빨리 덜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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