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오얏 이씨’는 있지만 ‘오얏나무’는 없다

엄민용 기자

이즈음이면 농가 과수원이나 어느 집 울타리 한쪽에서 배꽃과 자두꽃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배꽃도 ‘이화(梨花)’이고, 자두꽃도 ‘이화(李花)’다. 소리는 같지만 배[梨]를 뜻하는 한자와 자두[李]를 의미하는 한자가 다르다.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아 잘못 쓰는 표현이 있다. ‘참외밭(오이밭)에서는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배나무(자두나무) 밑에서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는 얘기가 그것이다.

이는 중국 북송 때 곽무천이 지은 <악부시집>의 ‘군자행’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다. 이 말이 <명심보감> ‘정기’편에는 강태공이 한 말로 기록돼 있다고도 한다. 분명 원문에서는 ‘과전(瓜田)’과 ‘이하(李下)’를 썼다.

오이를 한자로 쓰면 ‘과(瓜)’다. 누렇게 익은 것은 ‘황과(黃瓜)’ 또는 ‘노각’이라 부른다. 이와 달리 참외는 ‘달콤한 오이’라는 의미의 첨과(甛瓜), ‘뛰어난 오이’라는 뜻의 진과(眞瓜)로 쓴다. 그런 점에서 ‘과전’이라고 하면 오이밭만을 뜻할 듯하다.

하지만 과전은 오이밭도 되고 참외밭도 된다. 참외도 어차피 오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중국에서 참외를 거의 재배하지 않지만, 참외가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됐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과전’은 참외밭이든 오이밭이든 다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관을 고쳐 쓰지 말라고 한 곳은 ‘배나무 밑’이 아니라 ‘자두나무 아래’다. 한자가 분명 ‘李下’다.

한편 사람들은 자두꽃을 ‘오얏꽃’, 자두나무를 ‘오얏나무’로도 부른다. 하지만 오얏꽃과 오얏나무는 비표준어다. ‘오얏’ 자체가 비표준어다. 그러나 이씨(李氏) 성을 가진 분들은 자신의 성을 ‘자두 리(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들 ‘오얏 리(이)’라고 한다. 한자사전들도 ‘李’를 ‘오얏 리(이)’ 또는 ‘성씨 리(이)’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을 살필 때 ‘오얏’은 한자말 ‘자도(紫桃)’가 변한 자두의 비표준어가 아니라, 자두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복수표준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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