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진화 ‘사각지대’(3)

헬기 담수지 없는 대도시·강원·경북 산지, 공터와 수조만 있어도 된다?

강한들 기자

빠른 담수 확보, 산불 진화의 핵심

지난 5월15일로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났다. 올해 산불 피해 면적은 지난해보다 적었지만, ‘충격’은 더 컸다. 지난달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불기둥이 솟구쳤고 하루 동안 전국 30여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 진화에는 난관이 많다. 송전선이 있으면 헬기가 진화에 나서기 어렵다. 산불 현장 인근에 담수지가 없으면 헬기가 많아도 효율이 낮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군 사격장 등은 산불이 나도 대응이 쉽지 않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산불이 더 자주,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향신문은 녹색연합과 함께 산불 대응의 ‘사각지대’를 찾아 그 실태를 점검했다.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 헬기가 울진 죽변 비상 활주로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 헬기가 울진 죽변 비상 활주로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4일 경북 울진 북면 덕구온천. 산불 피해로 온 산이 잿빛인 가운데에서도 덕구온천 주차장은 푸른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해 3월 울진에서 산불이 났을 때 출동한 헬기가 부지런히 오갔던 곳이다. 가로 약 80m, 세로 약 50m 정도의 평범한 주차장은 산불진화의 ‘전초기지’로 톡톡히 역할을 다했다.

최근 서울 인왕산, 대전 서구 산불 사례 등에서 또 다른 ‘산불 진화 사각지대’가 주목받았다. 산불을 끄려면 주변에 물이 풍족해야 하는데, 이곳은 강 등 하천과 거리가 멀었다. 진화 헬기는 먼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느라 진화 작업이 더뎠다.

환경단체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강원 영동 등 담수지가 부족한 지역에 이동식 저수조 설치 공간을 미리 마련해 두면 유사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립공원 주차장을 이동식 저수조 설치 장소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 헬기가 덕구저수지에서 물을 담고 있다. 진화 헬기는 각 산림항공관리소에서 출발해, 저수지 등 담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물을 채우고, 산불 현장에 가서 방수한다. 담수와 방수를 반복하다가 연료 보충을 위해 착륙하기까지 통상 이륙 이후 2시간~2시간 30분 정도가 한계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 헬기가 덕구저수지에서 물을 담고 있다. 진화 헬기는 각 산림항공관리소에서 출발해, 저수지 등 담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물을 채우고, 산불 현장에 가서 방수한다. 담수와 방수를 반복하다가 연료 보충을 위해 착륙하기까지 통상 이륙 이후 2시간~2시간 30분 정도가 한계다. 녹색연합 제공

하천이 건천이고, 저수지가 적은 곳에 산불이 난다면

경북 울진은 유사시 산불 진화 헬기가 물을 뜨기 어려운 대표 지역으로 꼽힌다. 그래서 덕구온천 주차장이 산불 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 덕구온천 제2주차장과 제3주차장까지 고려하면 대각선 길이가 250m 이상으로 늘어난다. 주변에 큰 나무도 없어 헬기가 오가기 편하다. 산림청은 이곳에 이동식 저수조를 설치했다.

경북 울진군 덕구온천 제2주차장에 지난 4일 몇몇 차량이 주차돼있다. 지난해 울진 산불 때 이 주차장은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강한들 기자

경북 울진군 덕구온천 제2주차장에 지난 4일 몇몇 차량이 주차돼있다. 지난해 울진 산불 때 이 주차장은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강한들 기자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헬기가 덕구온천 제2주차장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제공

지난해 3월 울진산불 당시 진화헬기가 덕구온천 제2주차장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제공

이동식 저수조는 호박처럼 생긴 ‘진화 헬기용 풀장’이다. 지름은 7m, 높이 약 1.8m다. 평소에는 산불 진화 차량에 접어서 보관한다.

산림청은 서울, 대구, 대전 등 대도시와 울진·봉화 등 경북 산지, 강원도 동해안 등에 담수 공간이 특히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이 지역은 모두 농경지가 적어 저수지도 없고, 인근 하천이 ‘건천’(가뭄이 오면 유량이 적어지는 하천)이다.

지난달 2일 서울 인왕산에서 산불이 났을 때 진화 헬기는 6~7㎞ 정도 떨어진 한강에서 물을 떠야 했다. 만약 인근 대학 등 공터에 ‘이동식 저수조’를 설치했다면 헬기는 더 신속하게, 자주 물을 뜰 수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담수지는 산불 현장 5㎞ 이내에 있고, 헬기 4대가 동시에 물을 뜰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갖춰야 한다. 산불 현장과 7㎞ 이상 멀어지면 효율이 떨어진다. 서울 북한산은 한강까지 10~12㎞, 강원 삼척 도계읍은 담수지인 광동댐까지 13㎞ 떨어져 있다. 울진 소광리는 왕피천까지 17㎞가 떨어져 있어, 헬기 한 대가 한 시간 동안 담수를 3~4번밖에 하지 못했다.

이동식 저수조를 설치하면 진화 헬기의 효율이 크게 올라간다. 같은 기종을 기준으로 2㎞ 떨어진 곳에서 담수하는 헬기 1대의 진화 효율은 8㎞ 떨어진 곳에서 담수하는 헬기 4대와 비슷하다.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은 “헬기가 최대 두 시간 반 정도 비행할 동안 담수지가 가까우면 25번 정도 물을 뿌릴 수 있는데, 멀 때는 15번 정도밖에 뿌리지 못한다”라며 “적절한 위치에 담수지를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산불 진화 ‘사각지대’③]헬기 담수지 없는 대도시·강원·경북 산지, 공터와 수조만 있어도 된다?

담수지가 먼 대표적 산불진화 사각지대

설치는 쉽지만, 장소가 관건

지난 10일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직원들은 강릉 과학 일반산업단지 내 공터에서 훈련하면서 10분 만에 이동식 저수조를 펼쳤다. 산림청이 보유하고 있는 저수조는 2만~4만ℓ 정도 규모로 헬기 5대가 연속으로 물을 채우고도 남는다.

여전히 지자체별로 저수조를 설치할 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곳들이 많다. 김만주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헬기가 이착륙할 때 전선, 가로등 등 시설 때문에 피해가 생길 우려가 있어 아무 공터나 사용할 수 없다”며 “지자체가 산불 우려가 있는 지역 근처에 미리 복합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터를 발굴해둘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통상 대형 헬기가 이착륙하려면 30m 정사각형 크기 이상, 초대형 헬기는 50m 정사각형 크기 이상의 공터가 필요하다.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직원들이 지난 10일  강원 강릉시 강릉 과학 일반산업단지 내 공터에서 이동식 저수조 전개 훈련을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직원들이 지난 10일 강원 강릉시 강릉 과학 일반산업단지 내 공터에서 이동식 저수조 전개 훈련을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원 삼척시 도계공설운동장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 저수량은 5만ℓ 규모다.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제공

강원 삼척시 도계공설운동장에 설치된 이동식 저수조. 저수량은 5만ℓ 규모다.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제공

지난 ‘산불 조심 기간’ 동안 강원 삼척시는 도계읍에 있는 도계공설운동장에 5만ℓ 규모의 이동식 저수조를 항상 설치해뒀다. 2017년 5월 발생해 765㏊를 태웠던 삼척시 도계읍 점리 일대 산불을 계기로 삼척시가 설치 장소를 직접 발굴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국립공원을 비롯한 농산촌 산림인접 공공시설의 주차 공간을 산불 발생시 진화 지원 시설로 활용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며 “산불비상대책 기간이라도 가로등을 제거해 만일의 산불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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