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숙원’ 들고 바티칸 간 평화마라토너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전 세계를 달린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6월28일 바티칸의 교황 일반 알현행사장에는 전 세계에서 온 가톨릭 신부·수도사·수녀·신자와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산 피에트로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은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특별 초대 손님들과 함께 그 만남의 장면을 지켜봤다. 원불교 신도인 그는 교황에게 원불교 신앙과 수행의 대상을 상징하는 목재로 된 일원상과 실향민 이범옥 시인의 시,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 미사를 판문점에서 올려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전달했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강명구 선생은 2017년 9월부터 14개월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북한이 보이는 중국 단둥까지 1만4500㎞를 뛰었다. 그는 매일 마라톤 완주 거리를 뛰며 쓴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3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2020년 뇌출혈이 발생했지만, 작년 8월22일 한라산 백록담에서 출발하여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발칸반도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10개월간 1만1000㎞를 질주했다. 그가 입은 하늘색 티셔츠에는 ‘세계 각국의 평화’란 글이 새겨진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한 평범한 마라토너가 기본 생필품을 실은 유모차 한 대를 이끌고 평화를 위해 세계를 질주한 역사가 있을까.

그는 앞서 한반도 반쪽을 달릴 때 “한반도의 휴전선은 우리나라에 뇌경색을 일으키게 했다”며 “한반도가 앓고 있는 모든 병의 원인은 휴전선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키호테보다도 더 무모하게 한라에서 백두까지 절름거리며 달리면서 뇌경색에 걸린 내 몸의 어혈을 풀어주고, 한반도의 어혈을 풀며 평화의 시대, 상생 공영의 혁명을 꿈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교황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는 뉴스를 접한 후에는 바티칸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서신에서 “교황님의 성탄미사 집전은 우리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의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교황 성하의 성스러운 발걸음이 판문점 그리고 평양에 머무른다면 그곳은 세계적인 평화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판문점 미사가 결정된다면, BTS 등 한류 스타들에게도 요청하여 평화의 축제로 승화시키겠다고 한다.

청빈·겸손·사랑의 성자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삼은 현 교황은 교황 선출이 끝날 때까지 세계의 전쟁을 떠올렸다고 한다. 2014년 5월, 이스라엘에서는 ‘교황님, 우리는 정의에 대하여 말할 누군가가 필요합니다’라고 적힌,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갈라놓은 콘크리트 장벽에 대고 기도했다. 그는 “정의에 기초한 안정된 평화”를 말했다. 모든 존재의 생명을 살리는 자비와 사랑이 정의다. 이는 하느님의 정의인 동시에 동서양 모든 성현들의 정의다. 2019년 11월, 일본 나가사키에서는 인류의 핵무기 및 군비 확장을 질타하고, “오늘날 전 세계 수백만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받고 있음에도 무기 제조·개량·축적·장사 등으로 가일층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며 “엄청난 테러행위”라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슴에는 커다란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야만적인 ‘더러운 전쟁’을 벌인 군부독재를 경험하고, 부패 정치로 인해 추락하는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늘 민중의 고통을 생각해온 그는 이제는 가톨릭 수장으로서 세계를 걱정한다.

그런 그가 70년간 전쟁 상태에 놓인 남북한 백성의 쓰라린 가슴과 한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교황을 만나고자 달려온 강명구 선생의 바람 또한 전해졌으리라. 선생은 영국에 지배되었던 인도를 뛰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가난한 주민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그는 가난한 자들일수록 가족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그 사랑이 평화의 근원임을 설파한다. 또한 “부처님처럼 맨발로도 위대한 발걸음을 할 수 있다. 작은 사랑이 모여 큰 사랑이 되고, 가난한 마음으로 위대한 생각을 하고, 위대한 사랑의 발걸음으로 작은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한반도에 평화 건설의 희망을 부여한다.

올해 정전 70주년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행사, 휴전선 순례, 평화체제를 모색하는 학술대회, 정전일인 7월27일 평택 미군기지를 둘러싸는 평화행동 등. 평화를 원하는 제2·제3의 강명구가 뒤를 잇는다면, 머지않아 통한의 철책이 걷히고 하나 된 한반도가 세계의 평화성지로 우뚝 서는 날이 기필코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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