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남자라니”···16년째 통용되는 슬로건이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막힌 지점

이영경 기자

당연시 되는 가족 내 차별·배제

시부모 모시기·출산·집안일…

호주제 아래서 며느리 위상 고착

동성 부부 등장에 제도는 ‘균열’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의 한 장면. 남성 가족 구성원과 여성 가족 구성원이 따로 밥을 먹는 모습.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의 한 장면. 남성 가족 구성원과 여성 가족 구성원이 따로 밥을 먹는 모습.

가족 각본

김지혜 지음|창비|248쪽|1만7000원

며느리가 남자라니!

이 구호는 유서가 깊다. 2007년 최초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때 “며느리가 남자라니!”라고 개탄하는 구호가 처음 등장했다. 2010년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게이 커플이 등장하면서 한 일간지 1면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말이냐!”라는 광고가 실렸다. 지난해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도 이 구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번엔 ‘여자 사위’가 추가됐다. “남자가 며느리? 여자가 사위?”라는 팻말이 등장한 것이다.

16년째 애용되고 있으니, 매우 성공한 슬로건이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이 구호가 한국 사회의 막힌 지점을 정확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 사회가 평등을 추구한다면 맞서서 해체해야 했을 가족질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간접적으로 일깨운다.”

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일상 속 숨겨진 혐오와 차별을 생생하게 드러냈던 저자는 이번엔 한국의 ‘가족제도’를 해부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족제도 안에 내포된 차별과 배제를 성소수자 이슈가 만들어내는 균열을 쫓아 추적한다. 사회복지·인권·차별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답게 가족제도와 긴밀히 연계된 복지제도, 인권 등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엮어 설명한다. 풍부한 연구와 판례,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가족제도가 한국사회의 어떤 부분을 ‘꽉 막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분석은 날카롭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스하다. 결국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에 대한 이야기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는 왜 성공한 슬로건이 됐을까. 저자는 왜 하필 ‘며느리’가 ‘동성애 반대’의 이유로 등장했는지를 살핀다. 한자로 며느리를 뜻하는 부(婦)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집 안을 청소하는 여자를 형상화한 글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며느리’의 도리에 대해 세세하게 늘어놓는다. “시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어야 한다…밤낮으로 부지런히 바느질·길쌈·누에치기·음식 마련에 힘을 써야 하고, 일상의 살림살이에 근검·절약해야 한다.”

저자는 ‘며느리’가 단순히 아들의 아내가 아닌 가족 내 ‘직위’라고 말한다. 한국의 유교가부장제는 남계혈통을 따라 구성원들을 남성과의 관계, 성별, 출생순서 등으로 정교하게 정리하는데, 결혼한 여성은 남편뿐 아니라 시부모의 지배를 받는 며느리로서의 지위를 가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며느리가 가족 살림을 책임지고 경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지위는 낮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남존여비’를 교리삼은 유교적 가족문화가 근대로 이어지면서 “여성이 혼인제도를 통해 가부장적 가족들 사이에서 유사 노비적 존재로서 ‘교환’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사회학자 장경섭은 말한다.

호주제가 유교적 가부장제를 이어받았다. 호주제는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딸(미혼)-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하며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을 종속적으로 배열한 가족제도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가(家)제도가 이식되며 호주제로 법제화됐고, 2005년 폐지됐다. 헌법이 요구하는 평등한 가족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며느리는 여전히 성차별적이며 억압적인 가족제도를 표상한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선호빈 감독의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가 만들어지고 인기를 끈 이유를 생각해보자. ‘며느리’는 출산, 가사노동, 효를 행해야 하는 전통적 여성의 성역할을 수행하며, 이 자리에 ‘남자’가 들어서는 건 전통적 성역할과 부계중심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 ‘며느리가 남자라니’라고 개탄하기보다, 왜 며느리가 여성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생각을 비틀고, 그 전제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가족제도’가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역기능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동성애가 인정될 경우에 출산 문제는 어떻게 하는지 참 궁금한데요.” 2018년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김문수 후보가 한 발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최근 동성결혼을 한 김규진씨(미국에서 결혼을 했고, 한국에선 혼인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가 내놨다. 김규진씨는 최근 임신 사실을 밝히며 동성커플이 아이를 가질 권리를 주장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모든 출생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선 결혼을 출산의 유일한 기반으로 여긴다. 동성커플이 아이를 가질 권리는커녕, 비혼 출산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혼외 출생률은 2.5%로 매우 낮다. 칠레와 멕시코는 70% 이상이며, 아이슬란드와 프랑스는 60%대다. 회원국 평균 41.9%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비혼 출산에 대해 서얼, 사생아, 혼외출생자로 이어지는 낙인을 찍어 차별해왔다. 남성이 재산을 거의 차지하던 시절, 결혼이란 경계는 “어느 자녀가 상속인이 되어 재산상속의 법적 자격을 가질지 결정하는 효율적 수단”이었다. 남성에게 결혼 밖 출생 자녀에 대한 의무를 지우지 않음으로써 남성은 결혼 밖 성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주제 폐지로 혼외출생자를 구분해 차별하는 것은 없어졌다. 하지만 출생과 함께 모자관계가 성립되고 양육의 권리와 의무가 시작되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혼외출생자를 법적으로 ‘인지’해야만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지난달 1일 국제앰네스티 혼인평등 캠페인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 행진중에 임신 8개월차 임신부 김규진(왼쪽)·김세연 부부가 부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엠네스티코리아 제공

지난달 1일 국제앰네스티 혼인평등 캠페인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 행진중에 임신 8개월차 임신부 김규진(왼쪽)·김세연 부부가 부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엠네스티코리아 제공

또다른 모순도 있다. 비혼부의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가 까다롭다. 아이의 생모가 다른 남성과 결혼한 상태라면, 생부가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이런 제도가 혼외출생자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출생등록을 부모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할 아동 기본권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6월 국회는 출생통보제 도입해 출생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기지 않고 의료기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출산이 결혼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관념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을 적법과 불법으로 구분하며 생애 시작부터 불평등을 만들었다”면서 “애초에 태어난다는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출생의 순간부터 시작되는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에서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비혼가족이 많아지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어떨까. 합계출산율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에서 오히려 더 높다. 현재 34개 국가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2001년 가장 먼저 동성결혼을 인정한 네덜란드의 경우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62명이며, 1999년부터 비혼커플을 위한 대안적 결합제도인 연대계약을 도입하고 2013년부터 동성결혼을 인정한 프랑스는 1.80명이다. 이들 나라에선 혼외출생률도 높다. 저자는 출산의 본질은 법적 결혼이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비정상 가족에서 사람이 태어났을 때, 가족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탈자를 탓할 것인가, 평등을 위해 가족제도의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

저자는 한국 사회가 저출생을 우려하면서도 ‘출산의 자격’은 엄격히 따진다고 말한다. 한국전쟁 후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대거 해외로 입양 보냈으며, 한센인, 장애인 등을 상대로 강제로 불임수술을 실시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법적 성별정정을 위해 생식능력 제거 등 불임수술 강요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남겨진 혼혈아동에 대해 정부는 ‘전원’ 해외 입양을 보내려 했다.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국적법은 아버지가 한국인이어야만 자식이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부모 중 한 명만 한국인이어도 국적을 취득하게 부모양계혈통주의로 바뀐 것은 50년이 지난 1998년이다.) 호적법에서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매우 곤란해졌다. 혼혈아동은 입적할 호적이 없기에 ‘근본 없는 아이’로 ‘고아’ 같은 대우를 받았다. 저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아내가 오스트리아인이었던 점을 꼬집는다. “ ‘혼혈’을 모두 해외로 보내려고 할 정도로 ‘순혈’을 강조하면서도 남성의 피만을 고려하는 부조화가 그때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하지 않았나보다.”

저자는 해외입양 정책이 가부장제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사회보장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입양을 통한 외화수익도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해외입양은 경제성장기에도 계속돼 한국은 주로 ‘미혼모’의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냈다. 얼마 전 해외입양인 300여명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했다. 혼혈아동 해외입양이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반인륜범죄’였으며 경제성장기 해외입양 또한 부모가 있는 아동을 ‘고아’라고 서류를 조작해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진실화해위는 입양인 34명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인정하는 ‘출산의 자격’은 무엇일까? ‘중산층 이상의 결혼한 비장애 이성 부부와 자녀 2명(현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합계출산율 2.1명)으로 구성된 가족’ 정도가 아닐까. 이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소수이며, 한국의 낮은 출생률이 이를 방증한다. 저자는 부모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말한다. 출생으로 등장하는 예측 불가한 구성원을 위해 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부의 세습과 계급 재생산의 기반이 되는 현실 또한 지적한다. 한국 사회는 가족의 부양의무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사회복지제도 마련에 소홀했다. “가족부양 우선 원칙”이 적용되는 구조 안에선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선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다시 “며느리가 남자라니”로 돌아가보자. 이 구호가 차별금지법 반대 진영에서 울려 퍼질 때, 반대편에서 동성애인권연대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농번기에 좋겠구나”라는 구호를 맞걸었다. 저자는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해지면 가족 내 공고한 성역할이 해체되고 변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동성결혼의 경우 성별분업은 덜하고, 가사분담은 더 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연구결과 커플관계인 두 사람의 임금노동을 비교해보니 이성커플(0.41)이 분업하는 경향이 가장 컸으며 동성커플의 성별분업은 게이 0.72, 레즈비언 0.67이었다.

저자는 성소수자의 등장이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며, 익숙한 가족각본을 내려놓고 사회가 함께 질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가족을 꾸리는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한국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가족각본을 벗어나 새로 쓸 때가 되었다.

[책과 삶]“며느리가 남자라니”···16년째 통용되는 슬로건이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막힌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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