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입추 땐 벼 익는 소리에 개들도 놀란다

엄민용 기자

8일은 입추(立秋)다. 한자 그대로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다. 이 무렵은 들녘의 과실들이 한창 여무는 때다. 옥수수는 벌써 알갱이가 꽉 찼다. 요즘이 제철인 옥수수는 수수팥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곡식인 ‘수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수도 알갱이가 큰 곡식인데, 그보다 더 크고 겉이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옥 같은 수수’, 바로 옥수수다.

이런 사실은 수수와 옥수수의 한자 표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돼 온 수수의 한자말은 ‘촉서(蜀黍)’이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옥수수의 한자말은 ‘옥촉서(玉蜀黍)’다. ‘수수’라는 말도 우리 고유어가 아니라 중국 발음을 가져다 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蜀黍’의 중국어 발음이 ‘수수’다.

그런 옥수수는 여름볕을 잔뜩 받아 이미 속이 꽉 찼다. 하지만 벼를 비롯한 많은 곡식은 이제부터 하루가 다르게 속을 채운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가 하도 커서 동네 개들이 놀라 짖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이즈음의 날씨가 올해 농사의 풍흉을 좌우한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 비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벼가 쓰러지거나 채 익지 않은 과실이 떨어져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도 비가 닷새 이상 이어지면 나라에서 비를 멎게 해 달라는 제사를 지냈다. 이를 이르는 말이 ‘기청제(祈晴祭)’다.

벼와 관련한 속담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있다.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을 뜻하는 표현으로, ‘씨나락’은 ‘볍씨’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사람들이 흔히 쓰는 ‘씨나락’은 없고, 좀 생뚱맞은 ‘씻나락’만 있다. ‘씨’와 ‘나락’이 결합하면 사이시옷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인데, ‘씨감자’ ‘씨소’ ‘씨눈’ 등 같은 구조의 다른 말에는 사이시옷이 붙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씻나락’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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