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에코사이드

최민영 논설위원
환경오염을 생태학살, 즉 ‘에코사이드’로 인식하고 법제화를 통해 막으려는 움직임이 전세계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톱에코사이드 홈페이지 캡처

환경오염을 생태학살, 즉 ‘에코사이드’로 인식하고 법제화를 통해 막으려는 움직임이 전세계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톱에코사이드 홈페이지 캡처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맹독성 다이옥신 성분의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을 8000만ℓ나 정글에 살포하면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했다. 1970년 미국 독립시찰단이 맞닥뜨린 현장은 달랐다. 망고나무는 말라죽고, 가축들이 폐사했다. 주민들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15만명이 기형아로 태어났다. 자신의 연구 결과물이 고엽제로 무기화된 데 충격받은 생명윤리학자 아서 갤스턴은 이를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에 빗대 ‘에코사이드’(ecocide), 즉 생태학살로 처음 규정했다. 환경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이다. 1972년 열린 첫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는 에코사이드를 국제법으로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에코사이드는 계속됐다. 인간중심의 경제발전이 자연환경을 제물 삼으면서 저인망 조업, 유조선 기름 유출, 토양 오염 등이 이어졌다. 자연이 깨지자 인간도 휘청였다. 호주 사막지대 원주민들은 우라늄 채굴과 방사성폐기물 매립으로, 캐나다 원주민들은 원유 채굴로,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은 열대우림 벌채로 생존을 위협받았다. 최근의 화두는 화석연료가 일으키고 있는 기후변화다. 해수면 아래로 잠길 위기인 몰디브와 바누아투는 2019년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자고 국제사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2021년 국제 비정부기구 ‘스톱 에코사이드’는 생태학살을 전쟁범죄·반인륜범죄·집단학살·침략범죄처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 가능한 다섯번째 국제범죄로 규정하자며 개정 초안을 내놨다. 심각한 환경파괴를 야기한 개인을 법정에 세우자는 것이다.

그렇게 지구에 쌓인 말과 땀이 헛되지 않다. 에코사이드 법제화 물결이 커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멕시코 하원에는 ‘환경에 장기간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베트남·우크라이나·프랑스 등 10여개국에선 이미 법제화됐고, 네덜란드·브라질 등은 입법 단계다. 1986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제기된 전 세계 기후소송 2341건의 절반이 2015년 이후 제기됐다고 한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도 훗날 법정에서 다투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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