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책임 인정하는 판결 더 나와야”···가해기업 책임 인정한 대법 판결에 환경단체·피해자 환영 성명

김기범 기자
가습기살균제 제조사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본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이정일 변호사가 제조·판매사인 옥시와 납품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제조사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본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이정일 변호사가 제조·판매사인 옥시와 납품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의 피해자에 대한 민사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환경단체와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판례”라며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법원이 피해자 측 요구액을 일부만 인정한 것과 사법적 판단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9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성명을 통해 “피해자 찾기, 건강 피해 확인, 기업과 정부책임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 가습기살균제 관련 어느 것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나온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의 첫 승소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과정에서 한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판례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이하 센터)는 이어 “현재 수백명의 피해자들이 수십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대부분 1심판결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손배소송에서도 기업책임을 묻는 판결이 연이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씨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와 납품업체인 한빛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자의 민사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1, 2단계 피해자들 중에는 기존에 민사 손배소송을 진행했던 이들이 있지만 2016년 옥시를 포함한 가해기업들이 피해보상안을 제시하면서, 가해기업들과 합의하고 모두 소송을 취하했다. 소송에 따른 배상액보다 가해기업들이 제시한 합의금 액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한국환경법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등 7개 학회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형사재판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한국환경법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등 7개 학회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형사재판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하지만 A씨를 포함한 3, 4단계 피해자들은 당시 가해기업들의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탓에 개별적으로 소송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는 2007~2011년 사이 5년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 2010년 폐질환이 발생한 사례다. 정부에 피해 접수를 했으나 폐손상 3단계 판정을 받아 가해기업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2015년 손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2심은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정부는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 이전까지 피해자들을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의 관련성을 평가, 판정해 1~4단계로 구분했다. 3단계는 ‘관련성 낮음’, 4단계는 ‘관련성 없음’에 해당하는데 가해기업들은 이 같은 구분을 근거로 3, 4단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2017년 피해구제법 시행과 피해 인정 질환의 범위가 천식, 간질성폐질환, 폐렴, 기관지확장증 등으로 인정범위가 확대되면서 A씨 등 다수의 3, 4단계 피해자도 피해구제 대상자로 인정됐다.

센터는 또 “정부와 기업이 인정하지 않고 있던 건강 피해사례에 대해 법원이 기업에 책임을 묻는 확정판결을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정부와 기업의 피해인정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고, 병원비만 지원하는 구제를 넘어 정신적, 경제적 피해의 위자료를 포함한 배보상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법원은 일부 가해기업에 대한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판결해 큰 사회적 비난이 일었으며, 내년 1월11일 2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라며 “이번 민사소송 판결이 SK, 애경, 이마트 등 가해기업의 형사재판 항소심 판결에서도 기업의 책임을 묻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ㆍ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ㆍ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센터는 “손배소를 제기한 김모씨의 주장을 일부만 받아들였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기업의 책임을 묻는 첫 확정판결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가해기업의 책임치고는 금액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이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2년이 지났지만 사법적 판단이 너무나 느리다는 점도 아쉽다”며 “그 사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원이 보다 신속하게 피해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옥시를 비롯한 가해기업들은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기업들은 여전히 늘어만 가는 피해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말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모두 7877명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835명이다. 10월 한달 사이에만 8명의 사망자가 늘어날 정도로 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에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A씨를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단체 등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옥시를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기업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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