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주거비 33만원, 선택지는 쪽방뿐”…장애 홈리스가 마주한 ‘겨울의 문턱’

배시은·김세훈 기자

탈시설 택한 장애인들, 쪽방·고시원 등 취약 거주지 몰려

좁은 방·경사로·계단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또 고통 받아

홈리스행동 등 좌담회…거주 고충 공유·돌봄 해법 논의

장애인인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대표가 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자택에서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장애인인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대표가 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자택에서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문턱 하나를 넘는 것도 힘들어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았어요. 내 몸이 환경에 맞지 않으니 내 장애를 탓하게 됩니다.”

지난해 3월 복지시설을 나온 지체장애인 지모씨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쪽방에 거처를 마련했다. 다리장애 때문에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하는 지씨에게는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넘어지지 않고 방 문턱을 나서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있기에 3.3㎡ 남짓한 쪽방은 너무 비좁았다. 지씨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화장실이 방 안에 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넓이인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등 47개 단체로 구성된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등이 6일 용산구 아랫마을에서 ‘장애와 취약거처가 만났을 때’ 좌담회를 열었다. 홈리스 장애인들과 활동가 30여명이 모여 쪽방 등 취약거처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고충과 이들을 위한 돌봄 정책 등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지체장애인 홈리스에게는 입주할 고시원·쪽방을 찾는 것부터 일이라고 했다. 2022년 8월, 지체장애가 있는 노숙인 A씨가 서울역 인근 거리에서 숨졌다. A씨는 생전 목발을 이용해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고시원·쪽방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임시주거비 33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쪽방·고시원은 제한적이다. 대부분 엘리베이터도 없고, 휠체어가 오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도와 화장실 등이 좁은 경우가 많다”며 “고시원과 쪽방 주인들도 휠체어를 타고 집을 보러오면 손사래를 치기 일쑤”라고 했다.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대표가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대표가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병으로 다리를 잃은 윤용주 동자동사랑방 공동대표는 “동자동 쪽방촌 건물 대부분이 계단 층고가 높고 안전바가 없다. 거동이 불편한 쪽방 주민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다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고 사망한 사례도 있다”며 “나도 지금 사는 건물에 입주하기 위해 화장실 입구에 합판을 놓고 벽에 손잡이를 설치해 혼자서도 다닐 수 있게 수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도 장애 홈리스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공공임대주택은 극소수다. 뇌경색 환자이고 다리가 불편한 B씨는 얼마 전 1층에 있는 공공임대주택 가구에 입주했다. 하지만 현관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총 7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B씨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수시로 넘어진다고 했다.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활동센터 활동가는 “엘리베이터나 1층에 있는 임대주택에 간신히 입주하더라도 지체장애인들은 안전바와 경사로를 직접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활동가와 당사자들은 장애 홈리스들의 사례에 맞춘 주거·돌봄 서비스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지역사회가 주거 취약 상태에 놓인 장애인의 자립지원 욕구를 조사하고 이에 맞는 지원계획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활동가는 “최소한 공공임대주택이라도 장애·나이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하기 편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공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장욱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는 “장애 거리홈리스의 주거를 지원할 때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긴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간소화된 이용·심사 절차를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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