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오경민 기자

※뉴스레터 점선면 12월20일자(https://stib.ee/a1IA)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독자님, 안녕하세요?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해요.

독자님은 스스로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세요? 세대는 아무래도 남이 입혀주는 옷 같아요. 스스로 MZ라고 생각할 일이 별로 없는 저도 회사에서 선배들에게 종종 “역시 MZ...”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1990년대생인 저는, 2010년대 초반생까지를 일컫는 ‘MZ세대’로 분류될 때면 황송해지곤 해요.

그러고 보면 20대 땐 30대랑 엮이면 황당했어요. 20대 초반, Mnet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 시즌2가 방영하던 때 일입니다. 고등학생에게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과외생이 “선생님은 ‘원픽’ 누구예요?”라고 묻더라고요. “나 강다니엘 좋더라”고 답했더니, “아 역시, 2030은 강다니엘 좋아하는 게 진짜구나!”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스물서너 살 밖에 안 됐는데 10대에겐 30대랑 똑같은 ‘2030’이라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20대와 30대는 당분간 운명을 같이하려나 봅니다. MZ, 2030 등으로 불리는 ‘청년 세대’가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어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청년은 누구이고, 청년의 마음은 어떻게 사는 걸까요? 정치부에서 정당을 출입해 온 조문희 기자와 함께 준비했어요.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지난 11월 중순, 더불어민주당이 시도당에 보낸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 현수막 문구과 디자인. 출처=더불어민주당 사진 크게보기

지난 11월 중순, 더불어민주당이 시도당에 보낸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 현수막 문구과 디자인. 출처=더불어민주당

청년, 청년…노래를 부른다

· 지난 11월,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와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등의 내용으로 새로운 캠페인 현수막 문구를 확정했다가 당 내외에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시도당으로 보내는 공문에서 “개인성과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2030세대 위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수막 문구는 정치 무관심과 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2030세대는 정치와 경제를 모른다’고 조롱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다는 우려를 샀습니다.

· 앞서 민주당은 지난 8월 ‘랩(LAB)2030’을 출범시켰습니다.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정책 활동 전반을 통합·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출범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표는 “청년들이 함께 토론하고 결론 내 당에 요구하면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2월11일, 민주당은 랩2030과 간담회를 열고 ‘월 20만원대 대학교 공공기숙사 5만호 공급’을 1호 청년 정책으로 발표했습니다.

· 금태섭 전 국회의원은 지난 12월17일 정의당 청년 의견 그룹 ‘세번째권력’과 함께 ‘새로운선택’의 공동창당대회를 열었습니다. 창당대회에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이 자리했습니다. 새로운선택은 앞서 12월11일 젠더정책 합동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징병제·모병제 등을 통한 ‘병역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2030세대 남성을 겨냥한 행보로 해석됩니다. 발기 취지문에는 “모든 개혁은 청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청년을 위한 복지 국가를 건설하겠습니다”며 청년을 언급했습니다.

· 김기현 전 당대표가 사퇴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게 된 국민의힘은 리더십 변화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경향신문 취재에서 한 의원은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에 실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수청’을 언급한 유승민 전 의원이나 2030 남성에게 지지를 받는 이준석 전 대표를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030 세대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각 당은 청년 표심을 얻기 위해 ‘공공기숙사 공급’ ‘병역 성평등’ 등의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1. 개XX라 할 땐 언제고

과거 청년 세대는 ‘정치 무관심층’으로 여겨졌습니다. 역대 총선과 대선에서 다른 세대보다 낮은 투표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주요 공략 대상’이 아니었고 청년 정책도 총선에서 ‘주력 상품’은 아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선거철마다 ‘20대 개XX론’이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치를 모르는’ 20대를 탓하는 거예요. 제19대 총선 땐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달성하는 결과가 나오자 실망한 다른 정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20대 여성 투표율이 10%도 안 된다’는 가짜뉴스가 횡행했습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집중유세에서 청년들과 손을 맞잡은 오세훈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사진 크게보기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집중유세에서 청년들과 손을 맞잡은 오세훈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2021년에는 4월7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향한 20대 지지율이 높은 것을 두고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20대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그 청년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냐”, “20대는 과거 역사에 대한 경험치가 낮기 때문”, “국민의힘에 표를 던지는 20대는 취업 시 불이익을 줘야한다”는 말까지 나왔죠.

그런데 어쩌다 청년이 정치권의 구애를 받게 된 걸까요.

먼저, 투표율이 상승했습니다. 20대의 투표율은 2007년 17대 대선과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46.6%, 68.5%로 평균 투표율(각 63.0%, 75.8%)과 차이가 컸는데요,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76.2%로 30대와 40대보다도 높았고, 평균 투표율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어요. 2022년 20대 대선에서도 투표율이 71%를 기록했고요. 다른 세대와 비슷한 수준의 투표율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또, 20대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혹은 ‘스윙보터’가 다른 세대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몇 차례 선거에서 나타난 청년 세대의 무당층 비율은 40~50% 정도 가량으로 가늠돼요. 전체 연령대 평균 무당층 비율인 20%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이 때문에 2021년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2022년 대통령 선거 등에서 청년은 최대 승부처가 됐습니다. 전후 세대인 60대 이상은 국민의힘, 민주화 세대인 40~50대는 더불어민주당의 콘크리트지지층 비율이 높은 데 비해 2030은 정책이나 후보에 따라 투표를 달리해, 예측할 수 없는 표였거든요.

2. 선거를 뒤집어 놓으셨다

“이들은 지난 4·7 재·보선에선 국민의힘에 힘을 몰아주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당선시켰고,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남녀할당제 폐지 등을 내세운 이준석 대표를 당선시키며 ‘0선의 30대 대표’를 만들었다. 국민의힘 경선에선 홍준표 의원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양강’으로 세웠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를 다룬 경향신문 기사는 정치권에서 호명되는 청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2030세대 남성 일부는 강한 응집력으로 ‘바람’의 시발점이 되며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줬다”면서요.

2021년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후드티를 입고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에 나타났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후드티를 입고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에 나타났다. 연합뉴스

대선 결과, 2030 남성의 과반 이상이 지지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는 20대 남성의 58.7%, 30대 남성의 52.8%의 지지를 받았어요.

앞서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와 박영선 후보 사이 가장 큰 격차가 나타난 것도 ‘20대 남성’이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어요.

같은 해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배경에도 2030 남성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 번도 총선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이준석 대표는 중진들을 누르고 보수정당 최초의 30대 당대표가 됐습니다.

3. 이준석이 말하는 ‘공정’

‘2030 남성 표심’은 이준석 전 대표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이준석 당시 최고위원을 향한 2030 남성의 지지는 특히 ‘이준석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탄핵 이후 ‘내로남불’ 정국 속에 민주당으로부터 떠나간 ‘2030 민심’을 이 전 대표가 흡수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이 전 대표는 꾸준히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를 말해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전 대표를 ‘20대 남성들의 의제를 껴안은 캐릭터’라고 해석합니다.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처음 정치에 발을 들인 이 전 대표는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과학고에 진학하고 미국 아이비리그를 유학한 자신을 ‘공정 경쟁’과 ‘사다리가 있는 세상’의 증거라고 설명합니다.

중학교 시절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한 환경이라 위화감 같은 것이 없었다.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졌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회상했어요.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공천자격시험, 토론배틀을 하자며 경쟁을 강조했습니다. 청년이나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할당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반대 의견을 펴왔고요.

“여성혐오나 차별은 망상에 가까운, 소설·영화를 통해 갖게 된 근거없는 피해의식(한국경제 인터뷰)”이라거나 “아무 데나 혐오발언 딱지를 붙여서 성역을 만들려고 한다(이준석 페이스북)”는 등의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젠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년 남성 일부의 호응을 얻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던 5월10일,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활동가들이 여성인권 후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던 5월10일,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활동가들이 여성인권 후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도현 기자

이 전 대표는 “기성 정치에 대항한 반골” “기득권 해체와 정치 변화를 갈망하는 미래 세대의 상징”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혐오와 차별을 정치 동력으로 삼”고 “특정 세대의 특정 성별에 딱지를 붙여 지지를 얻는 세대 선정주의”를 내세웠다고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4. 살아남은 ‘갈라치기’

대선 이후 이준석 전 대표는 성비위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 당 주류를 저격한 발언으로 추가로 당원권 1년 정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표류하는 동안에도 그가 상징하는 공정·능력주의 키워드와 갈라치기 전략은 곳곳에서 사용됐습니다. 여성, 장애인, 노동조합을 향한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대선 토론에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국무위원 19명 중 3명뿐인 내각이 ‘남성 편중’이라 지적하자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의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여성 장관 부족을 여성 책임으로 돌리고, 성차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어요.

여당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되풀이됐습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올해 초 “옛날에는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여가부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했지만, 지금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여성이 차별받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는 남성들은 잠재적 성범죄자 프레임에 영향을 분명히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이성을 꼬실 수 있는 자유가 점점 사라져 가는 이상한 나라가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올해 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려 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막아섰다. 성동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올해 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려 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막아섰다. 성동훈 기자

장애인, 성소수자, 노조원 등과 ‘일반 시민’을 나누는 혐오의 언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옹호하는 야권 인사를 향해 “전장연을 비판하면 일부 야권 인사들은 혐오와 차별이라고 낙인찍는다”며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전형적인 갈등산업 종사자의 모습”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도 안 되는 성소수자의 권익만 중요하고 99% 성다수자의 권익은 중요하지 않은가”라며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가로막았습니다.

국민의힘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불법파업 조장법”이라고 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전 대표는 “민노총을 해체해 세상을 살리자”고 말하기도 했고요.

이 말들은 ‘공정 이슈에 민감한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발언의 탈을 썼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정치 무관심층으로 여겨지던 20대의 투표율이 상승하고 무당층 비율이 많아지면서 청년 세대는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30 남성의 표심을 상징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이 전 대표의 갈라치기 전략은 정치권에서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1. 소수만이 점유하는 ‘정치적 효능감’

청년 세대는 정치의 주연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소구하는 청년을 따져보면 2030 중에서도 일부 남성 유권자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어요.

여성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준석 최고위원을 당대표로 만들고, 여성가족부 폐지 카드를 든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등 승리를 거듭하며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이들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일부 남성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초, ‘이대남 담론’을 통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수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해 초, ‘이대남 담론’을 통한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수빈 기자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이들(정치권이 겨냥하는 2030세대 일부 남성 유권자)이 ‘20대 남성’이란 집단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상의 정서를 바탕으로 단일대오를 이뤄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진 또 다른 청년들은 매번 패배했습니다. 2030 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응집된 목소리를 내왔지만 정치권의 청년 담론에서 배제돼 왔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18~29세 여성은 15.1%가 거대 양당이 아닌 소수정당과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옮겨간 같은 세대 남성보다 덜 조명 받았습니다.

이듬해 대선에서 20대 여성은 출구조사 직전까지 부동층에 머무르다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습니다. 이 후보의 20대 여성 득표율(58.0%)은 이전 해 보궐선거에서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44.0%) 득표율보다 50% 이상 높았어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사진 크게보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장은 이준석·윤석열 캠프의 20대 남성 구애 전략에 맞서 이재명 후보에게 결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이재명 캠프 합류가 계기가 된 걸로 보여요.

‘개딸(개혁의 딸)’이란 표현도 등장했어요. 최초엔 민주당으로 결집한 2030 여성들이 스스로 만든 호칭이었지만 비명계 의원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강성 팬덤’을 상징하는 멸칭으로 퇴색됐습니다. 사실상 더 이상 개딸은 2030 여성이 아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여전히 호명되는 2030 남성에 비해 2030 여성은 ‘무주공산’으로 놓여 있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제기한 성폭력 문제 등에 화답해 평등한 젠더정치를 말하는 광장을 만들고 여성을 이끌어내고 여성과 남성이 대화하게 한 정치인은 없었다”며 “과도한 청년 담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도를 고려한다면 좀 더 균형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세대론이 다른 연령이나 성별, 여러 계층에 따라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많은 집단들을 주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2. ‘이대남’도 ‘개딸’도 아닌 MZ

지난 6월, 충북의 한 반도체 전기검사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희씨가 ‘제조업에도 MZ 노동자 있습니다’ 이야기마당에서 발언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사진 크게보기

지난 6월, 충북의 한 반도체 전기검사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희씨가 ‘제조업에도 MZ 노동자 있습니다’ 이야기마당에서 발언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여성뿐 아닙니다.

어떤 청년들은 ‘MZ의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인서울’ 대학을 나오고, 수도권에 살며, 적어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사무직 정도는 돼야 비로소 ‘MZ’가 된다. 최상위 극히 일부인 그들의 목소리만이 ‘MZ의 요구’로 공론화되고, 오직 그들만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MZ와의 대화’ 행사에 초대된다.

영화 <다음 소희>의 주인공은 전북 특성화고 출신으로 콜센터에서 착취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를 ‘MZ’라고 불러준 사람은 없었다. 대학 대신 간 SPL 공장에서 숨진 23세 여성 노동자를, 발전소에서 세상을 떠난 24세 비정규직 김용균을 ‘MZ’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나.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리 세대엔 이들이 더 많을 텐데, ‘MZ’를 검색하면 깔끔한 오피스룩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웃는 청년들의 삽화만 나온다.

‘MZ세대’인 조해람 기자는 칼럼에 이렇게 썼습니다. 또래인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청년과 무엇을 하고 싶다면, ‘어떤’ 청년인지부터 명확히 밝히자.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 깡통전세와 지옥고의 세입자,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들을 빼놓고, MZ로 ‘퉁치는’ 것은 그저 철 지난 청년팔이에 불과하다.

필자들은 정치권의 화법에서 ‘청년’은 비정규직, 생산직, 여성, 장애인, 비수도권 거주자, 성소수자 등을 제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치권이 입맛대로 갈라치는 ‘이대남 담론’ ‘MZ 담론’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대남’ 신조어가 막 등장했을 때,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는 “정치인들이 지금 청년을 말하는 것은 불평등과 같은 근본적 문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초,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활동가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이대남이 아닌가” 되물었습니다. 지난 6월 ‘제조업에도 MZ 노동자가 있습니다: 호명되지 못한 다양한 청년노동자 이야기마당’에 참여한 청년 노동자들은 “정부가 말하는 MZ는 사무직이나 대학교 나온 엘리트들”이라며 “정말로 청년 목소리를 듣겠다면 현장으로 와서 저희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정 이후의 세계>를 쓴 김정희원 교수 등은 청년은 단일하지 않다며 이 시대 ‘공정 담론’에서 배제된 삶에 주목할 것을 촉구합니다.

3. 공정을 넘어 꿈꾸는 것

그럼 ‘단일하지 않은’ 청년 집단에겐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지난주 점선면 예고를 통해 독자님들께 의견을 받았어요. 독자님들은 환경 정책, 노동 정책, 주거 정책, 젠더 정책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주거, 환경 두 가지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양극화와 지구 온난화는 전 지구를 위협하는 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청년고등어조봉학님)

“하도급, 일용직, 파견 등의 형태를 근로기준법 상 노동으로 잡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최대한 줄여나가야 합니다. 젠더정책의 경우 임금평등에서 더 나아가, 유리천장 담론의 한계와 더 나아갈 점이 어디인지를 직시한 젠더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y21님)

“다양한 정책이 있어야겠지만 청년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반’이 아닐까 싶네요. 그 기반을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하고 터를 마련해 줘야할 것 같아요.” (🐈꼬리님)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정치 플랫폼 섀도우캐비닛과 함께 기획한 ‘무가당 프로젝트’에서 나온 의견들과 맥을 같이 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2030 무당층 유권자들은 지역소외, 주거, 빈곤, 기후위기, 젠더 등의 이슈를 고루 고민했습니다. 특히 기후위기, 국민연금 이슈가 청년과 밀접하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에서는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춘 정책이 아닌, “듣기 싫어도 국가에 필요하다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사람을 꼭 뽑겠다”는 말을 한 참여자도 있습니다.

‘듣기 싫어도 할 말은 하는 정치’ ‘지금과 다른 정치를 하는 정치’가 많은 이들이 ‘청년 정치’에 기대하는 바인 것 같아요. 이준석 전 대표가 당대표에 당선된 데에도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요.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사진 크게보기

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2012년 이후 정치권은 청년을 대변하겠다며 나름대로 ‘청년 정치인’을 영입해 왔어요. 이마저도 소수에 불과했지만 어렵게 당 지도부나 국회에 입성한 청년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나 소속 정당을 비판했을 때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쇄신하겠다’며 당명을 갈아치우던 정치권은 이제는 청년 영입을 쇄신의 대안으로 삼은 듯 보여요.

청년 정치인들은 “단순히 청년 할당을 시혜처럼 추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한두 명씩 수혈하듯 영업하면서 청년 할당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악순환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2년 넘게 국회를 출입한 조문희 기자는 의회 내 청년 정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권에 ‘충성’하는 게 최우선 전략이라고 자조하는 청년들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땐 과연 이 사회가 청년 정치인에게 보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가 싶죠. 언론도 당사자에 의한 청년 정치를 일단 ‘선(善)’으로 묘사하고, 청년에게 몇 개 의석을 배당할 것이냐는 단편적인 기준에 쉽게 기댄 면이 있다고 봐요. 청년을 대표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후 청년 정치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손쉽게 갈라치기 정책을 펴거나 청년을 영입한다고 청년들이 “정치가 나를 대변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니까요.

남성, 대졸, 50대 이상이 주를 이루는 국회의원 구성부터 갈라치기를 답습하는 공약 내용까지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엔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청년을 위한 정치의 첫 단추는 어디서부터 꿰야할까요?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독자 의견을 끝으로 오늘 레터를 마칩니다.

“지금의 정치가 보여주듯 세대론이 얼마나 큰 효용을 갖는지, 세대가 과연 유의미한 분석틀이 맞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향신문도 ‘청년 정치’의 빈 표상만 볼 것인지, 의제 자체를 깊이 들여다 보며 진보적 가치를 찾을 것인지 분명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y21님)

”제가 청년의 정체성을 가졌는지는 의문이고 또 청년의 정체성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청년은 너무도 다양하고, 나이로 묶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요즘 듭니다. 청년정치에 회의적이면서도 또 없어선 안 된다는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어요. 청년 문제보다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노인 문제에 더 눈이 가요. 청년보다 넓은 범위지만 이들을 관통하고 지원해야 청년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꼬리님)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전문가들은 정치의 주연이 된 ‘청년’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일부 2030 남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여성, 비정규직, 생산직, 비수도권 청년은 논의에서 배제돼 왔습니다. 청년들은 혐오·갈라치기나 보여주기식 청년 영입이 아닌 기후위기, 지역소외, 주거, 빈곤, 노동, 젠더 등 다양한 이슈에서 의미 있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 줄 점선면

▶ ‘무당층’ 비율이 높은 청년 세대는 최근 선거에서 ‘최대 승부처’이자 공략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 정치권은 청년의 마음을 사기 위해 혐오, 갈라치기 전략을 사용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청년 정치인을 영입했습니다.

▶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청년 대표성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누가 청년을 대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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