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 취재후기

샌더스 지지자는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나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경제 상황 및 이민 문제 관련해

바이든 ‘무능’ 지적 목소리 커져

“트럼프 재임 때 상황이 나았다”

미국 공화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현지시간) 밤, 맨체스터의 한 식당에서 주(州)공화당이 주최한 경선 전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코트와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과 달리 허름한 플리스 재킷 하나만을 걸친 72세 드레이에게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내일 이길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이번엔 트럼프를 뽑을 것이니 당연히 (이길 것)”라고 답한 뒤 웃으면서 덧붙였다. “내가 원래 누구를 지지했을 것 같습니까? 버니 샌더스입니다. 두 번 다 샌더스에 투표했어요.”

2016년,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샌더스를 지지했던 그가 4년 만에 정당을 바꿔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이유가 뭘까. “미국이 중간 지점에 오려면 양 극단이 필요하다. 워싱턴도 연방기구도 모두 부패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은 2016년 양당 대선 경선에서 샌더스와 트럼프가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가 아직도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도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고, 무엇보다 91개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보여주듯 부패의 정점에 있지 않은가.

드레이는 기자에게 “뭐 틀린 말은 아니다”라면서도 “어쨌든 더 부패한 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트럼프 팬은 아니지만 그가 취임하기 전에 좋지 않았던 것들이 그가 퇴임하고 나서는 더 악화됐다. 차라리 그가 재임할 때가 상황이 나았다”고 덧붙였다.

미국 공화당 두번째 대선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열린 23일(현지시간) 트럼프 캠프의 경선 축하 파티가 여린 내슈아의 한 호텔 앞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려는 지지자들을 뉴욕에서 실어나른 단체버스가 서 있다. 내슈아(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미국 공화당 두번째 대선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열린 23일(현지시간) 트럼프 캠프의 경선 축하 파티가 여린 내슈아의 한 호텔 앞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려는 지지자들을 뉴욕에서 실어나른 단체버스가 서 있다. 내슈아(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드레이와 같은 이유로 트럼프를 선택하겠다는 미국인들을 지난 21~23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 도시와 마을 6~7곳을 방문하면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 등 경제 상황, 급격한 에너지 전환 정책, 이른바 ‘불법 이민자’ 증가 등 세 가지 이슈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물가상승률 둔화, 미국의 ‘나홀로’ 경제 호황, 미국 내 투자 확대 및 일자리 창출 등을 경제 성과로 강조한다. 하지만 3년 사이 치솟은 금리와 휘발유·식료품 가격으로 생계에 타격을 입은 보통의 미국인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이민 문제는 개개인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단 입국자들로 혼란이 커진 국경의 모습, 텍사스 등 공화당 주지사들이 이민자를 버스에 실어 다른 주로 밀어내는 ‘이민자 버스’ 캠페인 등은 ‘원주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오는 11월 미 대선의 최대 쟁점인 경제와 이민(국경관리) 문제에서 바이든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트럼프를 뽑지 않은 양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고르게 퍼져 있었다. 단지 지지 후보 결정 과정에서 우선시하는 문제가 달랐던 것이지 바이든의 국정운영에 대한 저조한 평가는 공통된 줄기였다.

민주당 성향의 무당파인 60대 제이 설리번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이민은 미국의 정체성과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국경을 아무 통제도 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무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원 바버라도 “범죄, 홈리스, 전쟁까지 문제가 너무 많다”면서 “트럼프의 악랄하고 지저분한 화법을 견딜 수가 없지만, 트럼프가 경제정책을 좀더 잘한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이틀 앞둔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가 열린 로체스터 오페라하우스 앞에 지지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로체스터(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이틀 앞둔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가 열린 로체스터 오페라하우스 앞에 지지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로체스터(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사실 취재 현장에서 마주친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이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원들을 보며 여러번 당혹감을 느꼈다. 그들은 트럼프 연설의 주요 표현을 마치 외운 것 마냥 그대로 반복해서 말했다. “2020년 대선 결과는 조작된 것이고, 1·6 의사당 난입은 폭동이 아니며, 트럼프에 대한 기소는 정치 공작이자 민주주의 위협”이라는 주장은 이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만 독재자를 하겠다”고 발언했던 것도 농담에 불과한 것을 주류 언론이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이라 믿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이 경제·국경 문제에서 ‘무능’ ‘실패’ 이미지를 계속해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트럼프의 주장은 더 많은 미국인들에게 파고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는 아이오와·뉴햄프셔 2연승으로 더욱 강력해진 대세론에 힘입어 거의 확실시되는 바이든과의 ‘리턴매치’에 임하게 된다.

미국 정치와 선거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의 논리는 8년전인 2016년 대선 당시 그대로이고, 지지자들의 열광도 비슷하게 뜨겁다. 하지만 미국은 그 사이 인플레이션과 두 개의 전쟁으로 오히려 더 열악해졌다.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대결에서 유리하다는 점이 자명한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당일인 23일(현지시간) 맨체스터 7구역 투표소인 카디널커뮤니티 센터에서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맨체스터(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당일인 23일(현지시간) 맨체스터 7구역 투표소인 카디널커뮤니티 센터에서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맨체스터(뉴햄프셔)/김유진특파원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