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닮은 그 이름 ‘조선 독립’ 꿈꾼 경성 청춘들···창작 뮤지컬의 가능성 ‘일 테노레’

허진무 기자

소심한 의대생·문학회 리더와

무력투쟁 꿈꾸는 건축학도 이야기

우뚝하게 빛나는 홍광호의 기량

2월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배우 홍광호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윤이선’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홍광호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윤이선’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홍광호(가운데)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윤이선’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홍광호(가운데)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윤이선’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오, 그대여, 내 사랑이여/ 그댄 어느새/ 고독을 닮은 그 이름/ 그리워라, 내 사랑이여/ 그댄 먼 계절/ 겨울을 지나 푸른 봄/ 눈부신 신록이 되어/ 돌아와 주오.”

뮤지컬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 경성(현재 서울)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려는 항일운동단체 ‘문학회’ 학생들의 이야기다. 소심한 의대생이었지만 오페라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주인공 ‘윤이선’, 조선 독립 사상을 연극으로 대중에게 전하려는 문학회 리더 ‘서진연’, 문학회 활동에 회의감을 느끼고 무력투쟁을 추구하는 건축학도 ‘이수한’의 꿈이 엇갈린다. 작사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이 실존 인물인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 테너 이인선의 삶을 토대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제목 ‘일 테노레’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한다. 학생들은 베네치아 민중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침략에 맞서는 내용의 오페라 ‘꿈꾸는 자들’을 공연하려고 한다. 물론 이 오페라는 박천휴와 애런슨이 창작한 가상의 작품이다. 오페라가 중심 소재인 만큼 음악의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관객을 감정적으로 설득하기 어렵다. 테마곡 ‘꿈의 무게’와 ‘그리하여, 사랑이여’는 극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가 합쳐져 묵직한 감동을 줬다. 오페라 아리아보다 현대 가곡처럼 들리긴 했지만, 오페라와 뮤지컬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은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두 테마곡의 변주가 반복적으로 이어져 레퍼토리가 다소 단출하다는 인상도 남겼다.

기자가 관람한 지난 17일 공연에선 배우 홍광호가 ‘윤이선’, 홍지희가 ‘서진연’, 전재홍이 ‘이수한’을 연기했다. 홍광호의 기량이 우뚝하게 빛나는 무대였다. 특유의 따뜻한 음색에 폭발적인 성량으로 애절한 소리를 공연장에 꽉 채웠다. 발성법을 중간에 바꾸면서 노래할 때, 눈물을 흘리며 노래할 때, 노인 목소리로 노래할 때도 음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홍지희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전재홍의 안정적인 연기도 배역과 잘 어울렸다.

배우 홍지희(오른쪽)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독립 사상을 연극으로 대중에게 전하려는 문학회 리더 ‘서진연’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홍지희(오른쪽)가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조선 독립 사상을 연극으로 대중에게 전하려는 문학회 리더 ‘서진연’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전재홍(가운데)이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무력투쟁을 통한 조선 독립을 꿈꾸는 건축학도 ‘이수한’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배우 전재홍(가운데)이 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무력투쟁을 통한 조선 독립을 꿈꾸는 건축학도 ‘이수한’을 연기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독립운동의 대의가 담긴 심각한 줄거리지만 곳곳에 코미디 장면을 배치해 관객의 긴장을 풀었다. 윤이선과 서진연의 입맞춤이 오페라 장면과 포개지는 대목 등에선 서사와 연결된 감각적 연출이 돋보였다. 마지막 부민관 공연 장면은 무대 전체가 회전하며 ‘피날레’에 어울리는 현장감이 있었다. 노년의 윤이선이 감사와 회한을 담아 ‘꿈의 무게’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선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다만 세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에 대한 표현이 충분하지 않아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감이 아쉬웠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폭발적인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부족했다. <일 테노레>는 해외 유명 작품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낭독회를 열었고 올해 초연을 올렸다. 앞으로 재연을 거치면서 수정을 거듭한다면 더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천휴와 애런슨은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들의 삶은 비극적인 오페라 속 주인공을 닮아간다. 무사히 살아남기도 어려운 난폭한 세상에서 꼭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꿈이 생길 때의 아름다움과 비극을 모두 담고 싶었다. 오페라 넘버와 아닌 넘버 사이에 충분히 차별점을 두면서도 전체를 오페라적으로 편곡했고 그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박천휴는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 함께 생각할 만한 의미 있는 주제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네 가지 버전의 대본을 썼다”고 말했다. 애런슨은 “일제강점기 자료를 조사하면서 시대 상황과 사람들에 매우 몰두했다”며 “첫 대본에서 좋았던 디테일이나 분위기를 지키면서 이야기와 드라마가 간결하고 명확해지도록 계속 수정했다”고 말했다.

<일 테노레>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월25일까지 공연한다. 윤이선 역에 홍광호·박은태·서경수, 서진연 역에 홍지희·김지현·박지연, 이수한 역에 전재홍·신성민이 번갈아 출연한다. 공연 시간은 휴식 20분을 포함해 170분. R석 16만원, OP석 14만원, S석 12만원, A석 8만원.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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