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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소, 산천어

입력 2024.02.07 20:00

수정 2024.02.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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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Leave the World Behind, 감독 샘 에스마일)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2023년 11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인기 영화인데 제목은 “세상을 뒤로하고 떠나라”, 즉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마음껏 휴가를 즐겨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연 영화는 중산층 뉴요커 부부(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지친 일상을 뒤로한 채 해변의 고급저택을 빌려 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번잡한 도시와 평화로운 자연, 쾌적한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이어지는 두 세계다.

그런데 ‘자연’에 도착하자마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다. 먼바다에서 시커멓고 거대한 유조선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더니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던 백사장에 콱 처박힌다. 아하, 화석연료 사용으로 위협받는 세계의 상징이로군. 이어 통신망이 마비되고, 자율주행차들이 뒤엉키고, 테러 위협이 고조되고, 부자들은 지하벙커에 비상식량을 사재고…. 한밤중에 집주인이라면서 흑인 부녀가 찾아오는데 이렇게 비싼 집의 주인이 흑인일 리 없다는 의심까지, 영화는 서구 주류 백인의 시각을 꼬집고 현대문명을 비판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동물의 침범이다. 처음 몇 마리가 보일 때는 감탄을 자아내던 사슴의 개체 수가 무섭게 늘어나는가 하면 난데없이 홍학 떼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친다. 숲속에 들어갔던 아이는 무언가에 물려 괴질을 앓는다. 관리되지 않는 동물에 대한 묘사는 또 다른 재난영화인 <놉>(Nope, 감독 조던 필, 2022)에서도 본 적 있다. 이 영화 역시 사막 한가운데 폐쇄된 테마파크를 무대로 UFO, 즉 불확실하게 다가오는 재난을 피하려는 흑인 남매의 분투를 그렸는데 그 테마파크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을 훈련하던 곳이다. 방송 출연 중 평소 고분고분하던 유인원이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고 아수라장이 된 사건이 숨어있다.

요즘 재난영화에서 재난은 지진이나 홍수처럼 자연재해만도 아니고 대형 화재나 원전 폭발처럼 사람들의 태만과 실수로 비롯된 사고만도 아닌, 모호한 상황이 펼쳐진다. 인간이 굴복시켰다고 생각한 동물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 들어온다. 일차적으로는 코로나19의 공포 때문이겠지만 분명 오랫동안 축적돼온 동물에 대한 죄책감을 담고 있다. 지구상의 포유류를 무게로 계산하면 인간이 50%, 인간이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이 47%이고 야생은 3%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자연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언제 어떻게 문명 세계로 침입할지 모른다.

물론 영화와 현실은 아주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동물을 많이 먹고 서슴없이 오락용으로 대한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사람의 가족이 된 개만큼은 먹지 말자는 개식용금지법(2027년 시행)이 올해 초 국회를 통과했다. 오래전 동물원을 탈출해 바다로 돌아갔으나 그곳에서도 위협받는 제주남방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전북 정읍의 ‘정읍전국민속소힘겨루기대회’(소싸움에서 명칭 변경)가 27년 만에 폐지됐다. 소싸움을 하는 전국 11개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다. 힘을 북돋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뱀탕과 개소주 등 육식 보양식을 먹이고 억지로 혹독한 훈련과 싸움을 시킨다는 비판 아래 ‘민속놀이’라는 명분이 무색해졌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막을 내린 강원 화천의 산천어축제를 다시 생각해본다. 축제가 열리는 한 달여 동안 153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대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이다. 즐겁게 낚시해 현장에서 먹은 산천어가 60만마리라고 한다. 동물권 단체에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 산천어가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다, 원래 화천에 살지 않는 외래종이어서 생태계를 교란한다, 아이들에게 생명경시를 가르친다 등등. 산간지역에서 이만한 축제를 일구기까지 주민들의 노력, 자연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려는 평범한 시민들의 여가에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를 쉽게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분명 변화는 필요해 보인다. 산천어를 잡아서 먹을 수 있다. 먹고 먹히는 게 자연이다. 하지만 반칙이 너무 심하다. 자연상태에서 물살이는 그렇게 쉽게 잡히지 않는다. 죽고 사는 문제라서 잡는 사람이나 잡히는 물살이나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양식한 산천어를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잔뜩 가둬두고 며칠씩 굶겨서 미끼를 덥석 물게 하는 건 자연도, 수렵도 아니다.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지역축제가 될 수는 없을지, 올해는 이미 지나갔으니 내년에는 궁리해보면 좋겠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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