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윤 대통령 풍자 영상 ‘입틀막’ 이유는 명예훼손·선거법 위반?

강한들 기자
언론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7일 서울 종로 서울경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관련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언론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7일 서울 종로 서울경찰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관련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찰은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영상을 짜깁기해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 대한 ‘접속 차단’을 요청했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근거로 댔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과거 윤 대통령이 검찰에서 재직할 당시 의혹을 보도한 언론인들의 사무실·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이때도 ‘허위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을 문제 삼았다.

‘대통령의 명예’를 이유로 시작된 수사와 제재가 공익 목적 언론 보도에서 풍자 목적 창작물까지 번진 것이다. 공식 행사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견을 표시했거나 하려던 정치인·학생이 경호원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입틀막’이 온라인까지 확대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쟁점을 헌법, 언론법 등 전문가에게 물어 정리했다.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가 지난 16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항의하자, 경호원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가 지난 16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항의하자, 경호원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Q. 발언 짜깁기 영상, ‘명예훼손’ 되나

기자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명예훼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법원은 ‘명예훼손’을 판단할 때 진위와 관계없이 문제의 콘텐츠가 ‘의견 표명’의 범주에 속한 것인지 ‘사실 적시’인지를 우선 따진다. 문제 영상은 제목에 ‘가상으로 꾸며본’을 명시했다. 이 때문에 창작물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양심 고백을 했다고 가상으로 소설을 쓴 것”이라며 “픽션(허구)이라고 밝힌 것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에 대한 사실 적시는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적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은 최근의 주요 사례는 <제국의 위안부> 판결이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 매춘’을 했다고 쓴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 주장은 의견 표명에 해당하므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는 ‘사실 적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같이 판단했다.

Q. ‘사실 적시’ 해당한다면 법원 판단은?

의견 표명이 아닌 사실 적시라 가정해도 해당 영상 게시자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을 국가기관으로 본다면, 공적 비판 대상이라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개인으로 보더라도 대표적 공인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특히 법원은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싣는 결정을 내려왔다. 지난해 김경호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가 낸 ‘언론 상대 고위공직자 명예훼손 소송 연구’를 보면 2010~2020년 대법원이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의 명예훼손을 판단한 13건 중, 명예훼손이 인정된 경우는 2건(약 15.4%)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두고 나온 “마약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고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라는 취지의 발언,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간첩”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라고 한 발언 모두 명예훼손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이른바 ‘쥐코 영상’은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소유예가 취소됐다.

Q. 영상이 ‘풍자’일지라도 오해를 유발할 가능성은?

법원이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을 판단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을 것인가?’ 역시 주요한 기준 중 하나다. 지난 23일 방심위 통신소위에서 방심위원들은 “가상으로 꾸며본”이라는 제목으로 허위의 사실임을 밝힌 해당 영상에 대해 “가상이라고 표시한 게시물도 보는 사람들은 속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상이라 밝힌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정치 심의”라면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대통령의 허무맹랑한 맥락의 발언을 사실로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Q. 경찰은 ‘공직선거법 문제 소지’ 있다는데?

해당 영상이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한 딥페이크 영상인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딥페이크 영상이라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에 해당할 수 있다며 공직선거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영상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딥페이크에 해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며 “선거 관련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82조 8은 ‘선거일 전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운동을 위해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 유포해서는 안 된다’라고 정했다. 선거일 전 90일 내에 해당하지 않을 때는 ‘가상의 정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선거용 딥페이크 영상을 게시할 수 있다.

해당 영상은 오는 4월10일인 선거일로부터 139일 전에 제작·유통됐다. ‘가상으로 꾸며본’이라는 제목을 달아 가상 정보라는 사실도 명시했다. ‘선거운동을 위해’ 제작했는지는 아직 경찰 수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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