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흔적’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 4명 법원 출석···“다 죽여” 현장 영상 공개한 IS

정원식 기자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가 경찰에 의해 포박된 채 모스크바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가 경찰에 의해 포박된 채 모스크바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총격 테러로 130여 명이 사망해 러시아인들이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용의자 4명이 법원에 출석했다.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사전 경고를 받고도 테러를 막지 못한 것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보안기구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테러 용의자 달레르존 미르조예프(32), 사이다크라미 라차발리조다(30), 샴시딘 파리두니(25), 무하마드소비르 파이조프(19) 등 4명이 이날 모스크바 바스마니 지방법원에서 공판 전 구금 2개월 처분을 받았다. 재판 일정에 따라서는 5월22일 이후까지 구금이 연장될 수 있다.

이들은 지난 22일 밤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총격을 가해 137명을 살해하고 180명 이상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초 이들 전부 또는 3명이 혐의를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AP통신은 법원 발표에 따르면 이날 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한 것은 2명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테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타스통신은 4명 모두 타지키스탄 출신이라고 전했다. 타지키스탄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의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민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다.

이날 미르조예프, 라차발리조다, 파리두니 등 3명은 얼굴이 심하게 부은 모습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파이조프는 환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왔다. 가디언은 러시아 블로거들 사이에 보안요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한 용의자의 귀를 자르고 소총 개머리판과 발을 사용해 눈밭에 누워 있는 또 다른 남성을 구타하는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관리들과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테러 배후를 자처한 ISIS-K의 주장을 무시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는 익명의 관영 매체 직원들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관영 매체와 친정부 매체에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에 개입한 흔적을 강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반면 반푸틴 활동가들은 이번 테러를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야권을 탄압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앞서 2009년 독살된 전직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자신의 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연방보안국(FSB) 수장이던 1999년 발생한 체첸 반군의 연쇄 폭탄 테러가 FSB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ISIS-K의 선전매체 아마크는 이날 90초 분량의 테러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용의자들이 공연장 로비를 걸어가면서 근거리에서 관객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한 것이다. 용의자 중 한 명은 “용서하지 말고 다 죽여”라고 말한다. 영상 아래에는 ‘독점 영상: 기독교인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공격’이라는 아랍어 자막이 들어가 있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ISIS-K는 이번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상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가 이번 참사가 발생하기 2주 전에 미국으로부터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기도 위험에 대해 사전 경고를 받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한 데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평소 거리 시위가 발생하면 몇 분 만에 나타나는 국가근위대가 이번에는 출동하는 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신경 쓰느라 국내 안보에 소홀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은 FSB 요원 수천명이 국내의 보안 위협에 대응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점령지 관리와 우크라이나에 동조하는 이들을 체포하는 데 투입됐다고 전했다.

푸틴 정권 초기 테러 위협을 제기했던 북캅카스 출신들과 달리 이번 테러 용의자들이 중앙아시아 출신이라는 점도 허술한 대응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러시아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는 가디언에 “FSB가 북캅카스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경험은 많지만 중앙아시아는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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