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내 음악방송은 틀지 않기로 했다

김정호
귓바퀴가 없는 올빼미는 소리를 모아 듣는 얼굴 구조를 가졌다. 청주동물원 제공

귓바퀴가 없는 올빼미는 소리를 모아 듣는 얼굴 구조를 가졌다. 청주동물원 제공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는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아마 3시부터 행복할 거야”라며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동물원에 아침이 오면 동물들의 기다림도 시작된다. 동물들은 동물복지사(구 사육사)가 출근하는 시간 전부터 자리를 서성이는데 멀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곧 맛있는 먹이가 온다는 것을 학습으로 알고 있다.

복지사의 발소리, 동물들은 분주해진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오토바이보다는 조용한 배터리카로 먹이를 운반하다 보니 동물들은 좌석에서 내린 복지사의 발걸음 소리부터 반응하게 된다. 동물들이 먹이를 기다리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시간이 조금은 짧아졌다. 그러나 산 중턱에 있는 동물원이라 경사가 있는 몇몇 동물사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사용하여 먹이를 나르는데 그 소리를 듣는 동물들의 능력을 우연히 목격하고는 한다. 수의사로서 동물들이 밤사이 무사한지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가끔은 복지사보다 먼저 동물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사자들이 분주해지자 몇분 후 복지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사자들의 청각 능력은 인간인 나를 훨씬 능가한다. 동물별 각기 다른 청각 능력을 오토바이 소리를 이용해 측정해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늑대는 왜 알토 색소폰에만 하울링으로 반응할까? 청주동물원 제공

늑대는 왜 알토 색소폰에만 하울링으로 반응할까? 청주동물원 제공

동물들이 소리의 크기뿐 아니라 음역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오래전 색소폰에 빠진 동물원 고참 복지사가 늑대사 근처에서 악기 연습을 하곤 했는데 늑대들은 테너 색소폰에는 가만히 있다가 알토 색소폰만 불면 하울링을 시작했다. 또한 공작은 엔진 차량의 소리에 유독 긴 시간 울어댔는데 이유가 궁금했다.

생물음향학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내는 소리를 분석해 생태연구에 활용하는 학문이다. 1971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로저 페인은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를 녹음해 앨범으로 발표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미 해군은 소련의 잠수함을 감시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해양소음을 녹음했는데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초저주파 영역의 잡음들이 자주 들렸다. 로저 페인은 이 잡음들이 광활한 바다에서 고래들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라고 확신했다. 그 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고래의 소리가 바다를 가로질러 수천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다른 고래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적 행동을 하는 고래들이 전하려는 내용이 이곳에 크릴새우가 많으니 친구들에게 먹으러 오라는 소리였으면 좋겠지만, 고래 포경이 성행했던 시대라 위험을 알리는 소리였을 가능성도 크다.

쇠딱따구리는 번식기인 3월이 되면 구애와 영역표시를 위해 1초에 약 33회 드러밍한다. 딱따구리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쇠딱따구리는 번식기인 3월이 되면 구애와 영역표시를 위해 1초에 약 33회 드러밍한다. 딱따구리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음악은 잠시 꺼두고 다채로운 동물의 소리를

봄, 동물원의 숲은 새소리로 가득하다. 귀 없는 새는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 저리 애를 쓸까? 새는 귀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겉에서 보이는 귓바퀴가 없는 것이다. 올빼미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머리에 나 있는 깃털 속을 뒤적이다 보면 양쪽 귓구멍이 나타난다. 왼쪽 귀가 오른쪽보다 높이 달려 있는데 비대칭적인 양쪽 귀로 깊은 밤 풀숲을 지나가는 쥐의 소리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정확한 위치에서 쥐를 움켜쥘 수 있다. 이때 자신의 비행 깃털에서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데 사냥감의 움직이는 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듣기 위해 깃털은 부드럽고 끝이 톱니 모양으로 되어 있다. 또 올빼미의 얼굴은 접시처럼 생겼는데 전파안테나처럼 앞쪽에서 나는 소리를 모아 양쪽 귓구멍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동물원에는 오색딱따구리와 쇠딱따구리가 산다. 딱따구리가 나무 찍는 소리를 드러밍(druming)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이른 봄, 잎이 없는 나무들 사이로 작은 몸의 쇠딱따구리가 드러밍을 하고 있다. 마치 전기재봉틀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로 드러밍을 하고 있어 논문을 찾아보니 쇠딱따구리는 1초에 평균 33회 드러밍을 한다고 한다. 3월 쇠딱따구리의 드러밍은 번식기 수컷의 암컷에 대한 구애와 자신의 영역표시라고 한다. 이 시기 사람이 도구를 이용해 나무를 두드리면 더 센 수컷의 소리로 오해해 딱따구리를 괜한 긴장 상태로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물에게 소리는 곧 언어 능력이다. 사자의 청각 능력은 인간을 능가하고 늑대는 중저음 소리에 유독 하울링을 한다. 청주동물원 제공

동물에게 소리는 곧 언어 능력이다. 사자의 청각 능력은 인간을 능가하고 늑대는 중저음 소리에 유독 하울링을 한다. 청주동물원 제공

신문 기사에서 숲의 소리를 녹음하는 과학자들을 본 적이 있다. 숲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 나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 잎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 곤충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 이외도 수많은 소리가 있다. 사람은 20~2만㎐ 안의 가청주파수 내의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박쥐의 초고주파나 고래의 초저주파는 기계로 분석하지 못하면 우리가 알 수 없다. 사실 생태계 대부분의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소리의 주인들은 오랜 시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또 경쟁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건강한 숲의 소리는 다양한 생물의 건재와 지속 가능함을 보장한다.

과거 동물원에서는 유원지다운 활기찬 분위기를 위해 음악방송을 틀어놨지만 몇년 전부터 원내 스피커는 아이를 찾는 안내방송 이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대신 광주기가 길어지면서 번식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두루미와 고니의 고음이 자주 들린다. 주변 산새들도 겨우내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에 숨죽여 지냈지만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짝을 찾아 목청껏 운다. 소리로 가득한 동물원의 봄은 다시 경쾌하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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