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후위기에 길어지는 ‘비자발적 금식’···그늘진 2024년 라마단

윤기은 기자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해가 진 뒤 식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해가 진 뒤 식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이 4주차에 들어섰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의 무슬림들은 이 기간에 전쟁, 기후위기 등으로 인해 궁핍한 라마단을 보내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일부 무슬림들은 해가 지면 풍성한 만찬을 즐기며 영양을 보충하는 ‘이프타르’ 전통을 잇지 못한 채 비자발적으로 굶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 예멘 무슬림들의 상황을 전했다. 초등학교 교사 모하메드 압둘라 유수프(52)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라마단 기간 저녁으로 고기, 풍미 가득한 페이스트리, 캐러멜 등과 함께 배불리 저녁을 먹었지만 올해에는 빵, 수프, 채소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말했다. 유수프의 월급은 66달러(약 9만원) 남짓인데 2주 만에 생활비가 동나 식사를 거르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유수프의 경제 사정을 악화시킨 원인은 내전이다. 후티 반군과 정부군 간의 대립으로 일어난 이 전쟁은 2014년부터 10년째 진행 중이다. NYT는 유수프의 월급이 10년 전보다 50% 올랐지만,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예멘 리얄 통화의 가치는 약 7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예멘 남부 해안도시 무칼라에서 30년간 식료품점을 운영해온 상인도 최근 들어 손님들이 쌀보다 저렴한 빵을 사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누텔라나 참치 통조림 등 고급 식료품은 사 가는 사람이 더는 없어 판매를 중단했다고 NYT에 말했다.

6개월째 전쟁을 겪고 있는 가자지구 시민들도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가자지구가 속한 팔레스타인 인구 중 무슬림은 98%다. 제3국에서 인도적 차원으로 보낸 식량을 받으려다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도 연일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북부 가자시티의 쿠웨이트 로터리 근처에서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이 구호품 트럭을 기다리다 5명이 숨졌고, 다음 날에도 같은 곳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10여 명이 사망했다.

인구 97%가 이슬람교인 북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지난 3월에 접어들며 몇몇 지역의 기온이 45도에 이르렀고, 지난해 말에는 가뭄 현상이 나타났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남수단의 불규칙한 강수량, 내전 등 여파로 농작물 식생이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처한 수단인은 1800만 명 이상으로 5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며 “공동체 간 폭력 증가, 경제 위기, 식량 등 필수품 가격 급등, 평균 이하의 농업 생산량 등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WFP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라마단 시작을 선포한 지난달 11일 성명을 내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지속적 식량 안보 위기가 닥쳤다”며 “단식은 의도적으로 행해온 종교적 관습이었지만, 장기간의 갈등과 경제 위기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가혹한 일상이 됐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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