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 이곳에 잠들다”…구정물 담은 관 놓고 장례식 열린 이유

최혜린 기자
6일(현지시간) 덴마크 동부에 있는 바일레 피오르 인근에서 환경단체 그린피스 주최로 열린 이른바 ‘피오르 장례식’에서 오염된 물이 관 안에 들어 있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덴마크 동부에 있는 바일레 피오르 인근에서 환경단체 그린피스 주최로 열린 이른바 ‘피오르 장례식’에서 오염된 물이 관 안에 들어 있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덴마크의 동부 도시 바일레의 한 공터에 투명한 관이 등장했다. 안에는 탁한 갈색빛을 띠는 물이 담겼고, 그 앞엔 형형색색의 꽃다발이 놓였다. 묘비에는 “피오르, 영원히 이곳에 잠들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바일레 피오르 인근에서 열린 ‘피오르 장례식’의 풍경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수질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 같은 행사를 기획했다. 장례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피오르는 수만 년에 걸친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계곡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채워지면서 만들어지는 지형이다. 이는 덴마크를 비롯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일대에서만 관찰되는 독특한 자연경관으로 꼽힌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총 22㎞에 달하는 바일레 피오르에 산업과 농업 폐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완전히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축산농가에서 사용하는 비료에 포함된 질소 성분이 흘러들어 빛과 산소를 차단하면서 수중 동식물도 거의 멸종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크리스티안 프롬베르그는 “오늘 행사는 매우 슬픈 기념식”이라며 “지난해 덴마크는 최근 25년 중 가장 심각한 탈산소화 현상을 겪었다”고 말했다.

실제 지자체가 피오르에 설치한 수중 감시 카메라에는 70시간 동안 물고기가 한 마리만 포착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바일레 지역 주민 위그 드디유는 “30년 전에는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며 “물이 완전히 오염돼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잠수부, 어부 등 지역에서 피오르를 통해 생계를 꾸려 온 이들은 주민들을 대표해 관 속에 흙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외해 접근이 차단된 덴마크의 지형적 특성상 다른 연안에 비해 쉽게 오염되기 때문에 수질 개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티그 마르카게르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 교수는 “덴마크 해안의 생태학적 상태는 EU 회원국 중 최악일 가능성이 높다”며 “덴마크 환경청은 109개 해안 지역 중 5개만을 ‘양호’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덴마크 농업 등이 유럽연합(EU)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향후 3년 동안 질소 유출량을 45% 더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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