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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목 죄는 ‘취업방해 블랙리스트’, 기소율은 고작···

조해람 기자
쿠팡노동자의건강한노동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월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법적 대응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쿠팡노동자의건강한노동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월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법적 대응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단을 만드는 ‘블랙리스트’가 만연하지만 신고사건 중 재판으로 넘어가는 비율은 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노동자의 취업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쿠팡에서 물류센터 근무자나 언론사 기자 등 1만6450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12일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현황’을 보면, 2019~2023년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신고된 1104건 중 기소된 사건은 5.2%인 57건에 그쳤다. 1년에 220.8건이 신고되지만 그 중 11.4건만 재판에 넘겨졌다.

노동청 수사 단계에서 합의 등으로 처리된 ‘기타종결’이 554건으로 가장 많았다. ‘법 위반 없음’이 267건,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한 ‘불기소’가 223건이었다. 노동청이 법 위반이 있다고 판단한 사건만 따져봐도 기소율은 6.8%에 그쳤다.

블랙리스트 작성은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범죄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에서도 근로기준법 제40조가 쟁점이 되고 있다. 노동계와 제보자는 블랙리스트로 지목된 쿠팡의 ‘PNG 리스트’가 취업제한 사유를 담고 있는 점, 인사관리가 필요 없는 퇴사자의 정보까지 담고 있는 점, 언론사 기자들의 이름이 포함된 점 등을 들어 명백히 블랙리스트라고 지적한다.

반면 쿠팡은 “정상적인 업무평가 자료”라고 반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에서 금지하는 ‘취업 방해’ 행위가 다른 회사에 대한 취업 방해에만 해당되는지, 자사의 다른 물류센터에 대한 취업 방해에도 해당되는지 여부도 쟁점으로 남아 있다.

노동계에서는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자주 드러나지 않을 뿐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안준호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지난 2월20일 ‘쿠팡 블랙리스트 규탄 인권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중에는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조선소 하청업체에 취업을 못 하거나, 취업방해 때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례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장 의원은 “인사관리라는 명목으로 블랙리스트가 용인되고 있고, 당국의 처벌 의지 부재 때문에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명단을 작성하고 타 기업에 제공하지만 않는다면 무혐의라는 소극적인 법률 해석도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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