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수천년 묵은 ‘신목’ 이는 곧 ‘민중’

도재기 선임기자

개인전 여는 민중미술가 손장섭

손장섭의 ‘울릉도 향나무’(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112㎝.  학고재갤러리 제공

손장섭의 ‘울릉도 향나무’(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112㎝. 학고재갤러리 제공

“역사 속에 서 있는 자각한 인간은 결코 사회적 모순이나 비인간적 현실을 외면하거나 방관할 수 없다.” “자각한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나은 삶, 사회에 대한 꿈과 실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1985년 겨울, 40대 중반의 화가 손장섭(76·사진)은 민중미술가들의 조직체인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회장이 됐다. 민중미술의 대표적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화가로서 누구보다 뜨겁게 한 시대를 보냈다.

수백 수천년 묵은 ‘신목’ 이는 곧 ‘민중’

평생 ‘자각한 인간, 화가’이고자 했던, 70대 중반 원로가 된 그의 작품전이 마련됐다. 17일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손장섭: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전이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30년 전에는) 그래야만 했어. 힘들었지만 할 말은 해야 했지”라며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잖아. 역동적인 우리들 삶도, 시대상도 보여주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학고재갤러리 전관(3개 전시실)에 마련된 전시회는 회고전에 가깝다. 고교(서라벌고) 시절인 1960년대부터 최신작까지 38점이 나왔다. 한 고교생의 수채화 속 붓질이 어떻게 원로화가의 농익고 기운찬 붓질로 변화되는지를 흥미롭게 볼 수도 있다.

전시의 핵심은 2000년대 작업한 신목(神木) 연작과 자연 풍경화들이다. 신목 연작은 ‘울릉도 향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태백산 주목’ ‘거대한 반송’ 등 전국 노거수들을 답사해 화폭에 담은 것이다. 그가 ‘신목’이라 부르는 노거수들은 그저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수백, 수천년 동안 이 땅을 살아오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체취, 역사의 흐름이 녹아있다.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 희망과 꿈이 서려 있다. 전시기획자인 유혜종 박사는 “그에게 ‘민중’은 특정한 사회계층이라기보다 그 계층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의미했다”며 “신목은 이러한 의미로 이해된 민중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라 분석했다.

자연 풍경화에서도 그만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1000호 크기로 전시장을 압도하는 ‘설악산 용아장성’을 비롯해 ‘독도 해맞이’ 등이다. 그는 자연을 관조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인 민중들의 삶, 역사의 유구함을 품은 대상으로 보고 또 그렇게 표현한다. ‘노파는 가고 봄은 다시 왔네’ 등의 작품에서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전시장에는 현대사 주요 장면을 담은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2011)을 비롯해 ‘기지촌’(1980), ‘역사의 창-6·25’(1990), ‘동해 철책과 해오름’(2006~2009) 등의 작품도 있다.

특히 ‘사월의 함성’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가 고3 때인 1960년 스케치를 나갔다가 만난 4·19 시위를 작품화한 것이다. 유혜종 박사는 “4·19 당시에 그려진 4·19 관련 그림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선 ‘손장섭의 색’이라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색감도 살펴볼 만하다. 흰색은 대부분의 화가들이 피하는 색이지만 그는 흰색 물감을 절묘하게 섞어 관람객을 화면으로 끌어들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조를 구축하고 있다. 6월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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