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르크스 ‘자본’은 추리소설”에 충격 “한 권? 12권으로 펼치자”

김유진 기자

저자 고병권·천년의상상 대표 선완규, ‘북클럽 자본’ 시리즈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철학자 고병권(오른쪽)과 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가 집필 중인 ‘북클럽 자본’ 기획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철학자 고병권(오른쪽)과 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가 집필 중인 ‘북클럽 자본’ 기획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저자가 책의 ‘주인공’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과 달리, 편집자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편집자가 없다면 저자의 지적·예술적 세계를 응축한 글을 책이라는 매체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2인3각’ 경기처럼 하나가 되어 달리는 ‘저자와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한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사이여도, 함께 일을 도모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철학자 고병권(47)과 출판사 천년의상상 대표 선완규(52)의 첫 만남은 1998년.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이던 고병권이 첫 책을 내고 싶다며 선완규 편집자를 찾아왔다.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만난 두 사람은 “원고는 거절당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그 책이 첫 책이었다면 두고두고 창피했을 것이다”(고병권), “사실 20년간 책 작업을 같이 해 왔다고 생각한다”(선완규)고 회고했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그 오랜 인연의 결실이다. 2014년과 2016년 고병권의 니체 강독 강의를 바탕으로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를 펴낸 바 있지만, 이번에는 스케일이 다르다. 다음달부터 격월간으로 2년간 마르크스의 <자본>을 해석하는 책 12권을 출간하는 ‘대장정’이다.

“마르크스 감성 담은 지식 에세이”
강의도 하며 수시로 머리 맞대
“2권 문체 좋으니 1권 다시 쓰자”
편집자 의견에 본문·부제 수정

시작은 강의였다. 선완규는 지난해 연구공동체 우리실험자들에서 진행된 고병권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본론이 원래 이런 책이었나” 싶을만큼 놀랐다. 85학번으로 마르크스의 여러 저작을 접했던 그에게 “자본은 착취라는 밀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에요”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래서 강의 마지막 날, 출판을 타진했다. “니체 책 처럼 한 권으로 묶으면 되겠거니” 했던 고병권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선완규가 “한 번 내고 끝나기에는 아깝지 않냐”며 열두 번의 강의를 각각 한 권씩 담아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저자와 편집자, 이 책을 말하다](1)“마르크스 ‘자본’은 추리소설”에 충격 “한 권? 12권으로 펼치자”

자본론 1권의 총 33장(서문 포함)을 12권에 걸쳐 풀어쓰는 북클럽 자본은 그렇게 탄생했다. “풍부한 강의 내용을 압축하기보다는 펼치는 편이 좋겠다”는 편집 의도에 따른 구성이다. 온·오프라인 강의도 열두 차례 진행된다. 저자가 국가·자본·인간의 한계에 대해 탐구하려던 공부 계획을 잠시 미뤄야 했을 만큼 대형 프로젝트이다. “남의 1~2년을 우습게 아는 것이냐고까지 항변했다”는 고병권은 “심약해서 남들이 하자고 하면 하는 편이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선 대표가) 지식의 장에서 사람들과 자꾸 만나게 하려는 시도를 보고 반성도 했다”며 “자본이라는 텍스트가 지닌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느낌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이미 3권까지 초고를 완성해 놓았음에도, “자꾸만 따라잡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본업’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과 장애인 야학 일, 각종 기고에 더해, 책을 내지 않는 달에는 자본 강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자서 책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기획을 제안한 편집자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1권 초고가 나온 뒤에는 세미나를 하듯 ‘독회’를 진행했다. 2권의 문체에 대한 평가가 더 좋자 1권부터 다시 고쳐썼다.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본문 내용을 추가하고 부제도 전부 새로 달았다. 귀찮을 수도 있는 이 작업을 두고 고병권은 “원래 책 쓰는 일이 이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이 되는 순간 여러 사람들이 개입하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의 소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출판 편집이 점차 전문적 영역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는 해도, 여전히 저자와 편집자는 대등하다기보다는 보조적인 관계에 머물 때가 많다. 어떤 저자들은 편집자를 기껏해야 교정자, 심하면 비서로 여기기도 한다. 선완규는 “책을 함께 만든다는 생각이 있다면 쓰는 사람이 집중할 일과 쓴 것을 형식으로 담아내는 일을 구분할 것”이라며 “읽는 사람의 환경을 알려주고 라이팅된 텍스트를 배열해주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병권은 “편집자는 저자에겐 첫 독자이자 독자 입장에선 저자의 생각을 잘 전달하려고 애쓰는 번역자”라며 “사람들이 작가의 세계만 주목하지만 사실 책은 편집자의 필터를 통해서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숲, 휴머니스트(편집주간) 등을 거치며 편집자로 잔뼈가 굵은 선완규는 2013년 독립해 회사를 차렸다. 대표를 포함해 직원이 모두 3명 뿐인 미니 출판사이지만, 틈틈이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 올 1월부터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매달 한 권씩 의성어·의태어를 주제로 책을 쓰는 ‘월간 정여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왜 자꾸 일을 벌이는 걸까. “편집자들이 활자에만 고착되어 있어요. 좋은 생각도 전부 책으로만 담아내죠. 하지만 앞으로 책의 미래는 고착된 것을 어떻게 펼쳐내느냐에 있다고 봐요. 자기 생각대로 방법을 찾아내면 그것이 새로운 사례인 거죠. 실패, 성공은 중요하지 않아요.”(선)

20년 지기의 격월간 2년 대장정
내달 시리즈 첫 번째 권 출간
“오디오북도 낼까”…“큰일났다”

<자본>의 한국어 최초 번역본이 나온 지도 30년이 흘렀다. “예수에 관한 책만큼이나 마르크스에 관한 2차문헌을 다 읽는 것이 불가능”(고)해졌을만큼 마르크스 해제서도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북클럽 자본은 “고병권이 새로운 조명을 비추어 쓴 지식 에세이”(선)를 표방한다.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노동시장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교환’이 끝난 뒤 노동자가 슬픈 표정을 하고 소처럼 끌려갔다고 묘사한 대목을 가리켜 ‘마르크스의 감성적인 눈’에 주목한다. 그는 “마르크스는 표면의 등가성이 아니라 숨어있는 불평등, 합법적 약탈을 읽어냈다”며 “경제적 법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마르크스의 생각들이 큰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20년지기 저자와 편집자의 목표는 단 하나, 시리즈 완간이다. 아울러 그들처럼 자본을 다시 읽거나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 모두에게 다가가고 싶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입장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는 여전히 유효하다”(선) “마르크스는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우리 시대의 사상가”(고)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리즈 첫번째 권 <다시 자본을 읽자>는 내달 21일 출간된다.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목표 금액 1000만원을 내걸고 사전 펀딩이 진행 중이다. 선완규가 “12권을 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디오북도 내 볼까”라고 말을 꺼내자, 고병권이 나직이 되받았다. “아, 또,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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