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숭이 시리즈' 완간한 임승수 작가와 김태현 편집자

김유진 기자
서울 마포구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임승수 작가(왼쪽)와 김태현 시대의창 편집팀장이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승수 작가는 최근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을 펴내면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과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2010)에 이은 ‘원숭이 3부작’을 완간했다. 김영민 기자

서울 마포구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임승수 작가(왼쪽)와 김태현 시대의창 편집팀장이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승수 작가는 최근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을 펴내면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과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2010)에 이은 ‘원숭이 3부작’을 완간했다. 김영민 기자

“책을 만들다보면 완전히 갈라서거나 ‘브라더’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며 임승수 작가(43)가 어깨를 으쓱했다. 옆에 있던 김태현 시대의창 편집팀장(35)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둘은 어느 쪽에 속할까 생각해보는데, 임승수가 덧붙였다. “솔직히 남남이죠. 오늘 세번째로 만났어요. 친밀감의 90퍼센트는 인터뷰에서 형성된 거에요(웃음).”

연초부터 대부분 이메일로 연락을 해 왔다는 두 사람은 오랜 선후배 지간처럼 허물 없어 보였다. 지난 7월 중순 서울 마포구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만난 이들은 최근 출간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작업에 대해 “일단 재미있었다. 서로 할 말이 있으면 선명하게 다 말했고, 논리적으로 납득하는 과정을 거쳤다”(김태현), “편집자의 어마어마한 노력과 도움이 없었다면 책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임승수)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은 임승수가 쓴 2008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2010년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에 이은 ‘원숭이 3부작’의 완결판이다. 임승수는 “처음부터 시리즈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자본론을 다룬 첫 책이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빵’ 터지면서 출판사에서 후속작을 제안했다”며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실천가적 면모가 담긴 공산당 선언까지 다루고 나니 시너지도 나고 스스로 일단락을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원숭이 시리즈’는 출판사가 자신있게 꼽는 스테디셀러다. 앞서 나온 두 권은 지금까지 5만부 가까이 팔렸다. 김태현은 “시류를 타서 반짝 성공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독자들이 꾸준히 호응을 보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느끼는 팍팍함이나 어려움이 마르크스를 알기 쉽게 해설한 이 책에 대한 수요를 계속 불러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리즈의 성공으로 임승수도 10년 넘게 전업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책을 낸 후로 지금까지 대학, 지자체,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서 자본론 등 마르크스 사상에 관한 강의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서울대 공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벤처기업에서 5년간 일하다가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진보정당 활동가의 길을 택했다. 파격적으로 비칠 수 있는 결정에는 대학 시절 허세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다가 받은 충격이 작용했다. 임승수는 “마르크스는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만나게 되면 한국 사회도 진보할 것으로 기대해서 내가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놔 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관둔 2006년, 임승수는 첫번째 책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를 시대의창에서 냈다. ‘진보 실용서’ 저자라는 그의 정체성은 출판사가 함께 만들어간 셈이다. 패기 넘치는 ‘신인’ 저자를 알아본 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는 종종 와인잔을 기울이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열린 한국 소믈리에 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이고, 임승수는 준프로급 와인애호가다.)

출판사와 저자의 남다른 신뢰는 지난해 회사에 합류한 김태현과의 작업에서도 이어졌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사서 읽었던 김태현은 독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의 방향을 잡았다. “전작들의 초점이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는 것이었다면, 공산당 선언은 가장 유명한 정치 팸플릿으로 저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줄여서 썼기 때문에 친절하게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기획 의도는 책의 구성에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진다. 왼쪽 페이지에는 공산당 선언 원문을 배치하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해당 원문에 관한 해설과 핵심 키워드를 실었다. 500장 분량의 초고는 편집 과정에서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적잖이 바뀌었다. 마르크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가를 지배하는 ‘과도기’의 핵심 과제들로 누진세 도입, 상속권 폐기, 국립은행 역할 강화, 어린이에 대한 무상 공교육 실시 등을 제시했다. 임승수는 이들 중 일부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김태현이 “아직도 치열한 모순이 존재한다”고 지적하자 톤을 수정했다. 임승수는 “편집자가 나보다 더 빨간 것 같다”고 웃으면서도 “책을 전체적으로 보니 조언을 따르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웬만하면 편집자의 의견에 따르는 저자가 딱 한 번 강짜를 부린 적이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캐리커처와 함께 원숭이와 합성한 저자의 캐리커처를 그려넣은 표지 디자인이다. “마치 그들과 동급인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민망했다”는 임승수는 고민 끝에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대다수가 현재의 표지 시안을 선택하자 결국 수용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임승수는 책이 노동과 협업의 산물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책은 여러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기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거나 못 미더워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질 수 있다. 성경도 아닌데 자기가 쓴 원고를 일점일획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저자들이 있다. 글은 남이 보라고 쓰는 것인데, 첫 독자로서 애정을 갖고 봐 주는 편집자와 싸울 정도면 독자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가 저자의 ‘체면’을 내세우며 점잔을 부리기 보다 ‘영업’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다. 한 때는 배낭에 자신의 책을 26권이나 가득 채워넣고 강의장 등에서 팔기도 했다니, 그의 말대로 ‘상인의 혼’이 흐르는 게 분명하다. 김태현은 “책 나온 뒤에도 책임지고 앞장서서 알리는 저자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편집, 제작, 홍보 등 일련의 과정을 존중하는 분이 더 좋은 글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승수는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사, 시간, 와인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고정 출연하며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책 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진보적 담론을 퍼뜨리면서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자와 편집자, 이 책을 말하다](2) '원숭이 시리즈' 완간한 임승수 작가와 김태현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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