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이 트라우마가 되기까지···'아동문학의 노벨상' 백희나의 영광과 상처

이영경 기자
지난해 1월  <나는 개다> 펴낸 백희나 작가가 서울 용산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책 제작에 쓰인 인형을 손질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해 1월 <나는 개다> 펴낸 백희나 작가가 서울 용산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책 제작에 쓰인 인형을 손질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구름빵> <달 샤베트> <이상한 엄마> <알사탕>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백희나는 지난 1일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작가로서 크나큰 영예를 안았지만,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구름빵>의 저작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작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슬퍼 보입니다. <구름빵> 논란엔 신인에게 지금도 요구되는 저작권 양도 계약 관행,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어린이책 작가의 위상 등의 현실이 반영돼 있습니다. 2004년 처음 출간된 <구름빵>에서 2020년 백희나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어떤 성취는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이 된다. 성취의 정당한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때, 성취가 클수록 고통은 커진다.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경우가 그렇다.

백희나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한 그림책 작가다. 지난 4월 1일 한국인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했다. <삐삐 롱 스타킹>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를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만든 문학상인 린드그렌상은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상금만 50크로나(6억원)에 이른다. 그림책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지만 백희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백희나는 수상 직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평탄하지 않았고 너무 심한 좌절을 시작부터 겪었다”고 말했다. 백희나가 언급한 ‘시작’은 바로 <구름빵>이다. <구름빵>은 그의 데뷔작이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성공작이다.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고 영어판을 비롯, 해외 10여개국에서 번역출간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백희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었다. <구름빵>의 저작권이 백희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대표작인데, 저작권이 작가에게 없는 커다란 모순이 여기에 있다.

■ ‘경이로운 데뷔작’ <구름빵>은 어떤 책

“경이로운 세계로 가는 통로.”

린드그렌상 심사위원회의 보엘 웨스틴 심사위원장은 백희나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평했다. 심사평처럼, 백희나의 작품 세계는 일상에 기반한 따스한 판타지를 특징으로 한다. 목욕탕에서 선녀님이 나타나 냉탕에서 신나게 놀고난 후 감기에 걸리자 밤에 선녀님이 감기를 싹 낫게 해주는 이야기(<장수탕 선녀님>),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선녀님이 찾아와 아픈 아이를 위해 밥을 짓고 돌봐주는 이야기(<이상한 엄마>), 먹으면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알사탕이 등장하는 이야기(<알사탕>) 등 그간 백희나는 일상과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로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를 펼쳐왔다.

2004년 출간된 <구름빵>은 이런 백희나 작품세계의 시초와 같다. 비 오는 날 아침,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반죽해 빵을 구워 먹고, 엄마와 아이들은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회사에 지각해 아침도 못 먹고 나간 아빠에게도 빵을 하나 가져다준다.

백희나는 첫 아이를 낳고 <구름빵>을 만들었다. 그는 “첫 아이 홍비를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인생최대우울 베스트 1위였던 시기에 만든 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 ‘홍비’는 작가의 첫 아이 이름이기도 하다.

캐릭터와 소품을 손수 제작해 세트에 놓고 사진으로 찍은 ‘입체 작품’인 것도 마찬가지다. <구름빵>에선 2차원 평면 캐릭터 인형으로 작업했지만, 요즘 백희나는 진흙과 비슷한 스컬피라는 재료를 손으로 빚어 구운 3차원 인형을 만든 뒤 촬영하는 기법을 쓴다.

<구름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2005년 볼로냐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됐고, 같은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 그림책 100선’에 선정돼 해외에 소개됐다. 같은해 창비어린이 ‘올해의 어린이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대만·프랑스·독일·노르웨이 등 해외에 번역 출간됐다.

<구름빵>의 한 장면. 한솔수북 제공

<구름빵>의 한 장면. 한솔수북 제공

■ <구름빵> 법정 소송과 논란…진흙탕 현실

그림책 <구름빵>의 작품 세계는 아름답지만, 현실 속 <구름빵>을 둘러싼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다. <구름빵>은 ‘불공정 계약’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구름빵>은 작가 백희나에게 성취이기보다는 커다란 트라우마다.

신인이던 백희나는 2003년 한솔교육이 만든 회원제 월간 그림책 시리즈 ‘북스북스 플러스’ 1권으로 <구름빵>을 펴내기로 하며 850만원을 받았다. 당시 계약서엔 저작재산권, 2차 저작물 모두 한솔교육에 양도한다고 돼 있다. 한솔교육은 2013년 출판사업 부문을 분할해 한솔수북을 만들고, <구름빵>은 한솔수북으로 넘어간다. <구름빵>의 애니메이션 제작권은 강원정보, 디피에스로 넘어갔다. <구름빵> 애니메이션은 KBS에서 방영된 데 이어 프랑스, 핀란드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됐으며, <구름빵>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그림책도 발간됐다. <구름빵> 캐릭터를 이용한 물티슈, 기저귀 등 각종 ‘굿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백희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뤄졌다. 이후 백희나는 인센티브로 1000만원을 추가로 지급받았을 뿐이다.

강원정보 등으로 에니매이션 제작권 등이 넘어가면서 <구름빵>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이같은 소식을  다룬 기사.

강원정보 등으로 에니매이션 제작권 등이 넘어가면서 <구름빵>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이같은 소식을 다룬 기사.

[정리뉴스]대표작이 트라우마가 되기까지···'아동문학의 노벨상' 백희나의 영광과 상처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백희나의 <구름빵>을 ‘불공정 매절 계약’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웠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2차적 컨텐츠 창작권까지 매절하도록 하는 출판계약 관행은 누구나 창작자가 되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 환경에서 문화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다며 “4400억원 상당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도 매절계약으로 1850만원 밖에 보상받지 못한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예가 대표적 피해사례”라고 밝혔다.

이후 백희나 작가는 한솔수북과 강원정보 등을 상대로 저작권 반환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이는 백희나를 깊은 절망을 빠뜨렸다.

지난해 펴낸 백희나의 <나는 개다>는 1심 패소 후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백희나는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름빵> 1심에서 패소하고 이렇게 작가의 권리가 보잘 것 없다면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드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게 생명있는 존재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이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린드그렌상 수상 직전, 백희나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에 빠졌다. 지난 1월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것이다. 당시 백희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패소 소식을 전하며 “법은 창작자의 희망을 저버리고 기업을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당시 ‘이상문학상 저작권 양도 조항 논란’이 불거지며 트위터엔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구름빵을작가에게돌려주세요’ 해시태그 운동이 함께 일었다.

그런 그에게 린드그렌상 수상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백희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다고 하더니, 이 상이 절망 속에 주저앉아 있던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백희나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구름빵> 재판과 관련해 올린 글.

백희나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구름빵> 재판과 관련해 올린 글.

백희나 작가에게 <구름빵> 저작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에 올라왔다.

백희나 작가에게 <구름빵> 저작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에 올라왔다.

■ 다시 번지는 <구름빵> 공방…한솔 “수익 20억원 불과” vs 백희나 “수익 축소”

백희나의 린드그렌상 수상은 <구름빵>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청와대에 ‘아동 문학의 노벨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아 국가의 위상을 높인 백** 작가에게 <구름빵>을 돌려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2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구름빵> 저작권 매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술수북은 공식 입장을 내고 반박에 나섰다.

한숙수북은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백희나의 입장을 반박했다. 한솔수북은 “4400억 매출은 터무니 없다”며 “구름빵의 실제 매출은 20여억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2004년 출간돼 15년 동안 40여만부가 팔려 2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어 한술수북은 “대승적 차원에서 <구름빵>의 저작권을 백희나 작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2015년 2월 서로 구두합의까지 했으나, 작가 측에서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여 무산됐다”며 “한솔은 인세를 지급하겠다는 조정안을 제출하고 법원의 조정에도 응하고자 하였으나 작가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신인이던 백희나 작가를 발굴하여 책을 만들고 베스트셀러로 키우기까지 회사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 및 작가에 대한 지원이 투입되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백희나 측은 ‘20억원’이란 수익 규모가 축소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백희나 작가를 대리한 이은우 변호사는 “한솔교육의 금감원 공시보고서를 보면 2010년 12월 31일 기준 구름빵 판매부수가 이미 48만부 이상이라고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다”며 “2011년에도 ‘48만부 이상’으로 기록했으며, 2012년 말 기준에는 판매부수를 빼버렸다”며 “판매 부수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이며 이렇게 쓴다면 ‘허위 사업보고서’가 된다”고 말했다.

백희나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꿈에 그리던 린드그렌상을 받았지만 기뻐만 할 수 없게 만드네요. 구름빵 저작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제가 얼토당토 않은 무리한 욕심을 부려 협상이 무산되었다고 주장합니다”라며 “지금까지 충분히, 지나치게 괴로웠습니다. 정말 이제는 살고 싶습니다. 아직 살아야할 시간이 길게 남았고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백희나는 “인세를 받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저작권을 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라며 “작품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받고 저작자로서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가 인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백희나 작가의 최근작 <나는 개다>에 쓰인 인형 전체 사진. 책읽는곰 제공

백희나 작가의 최근작 <나는 개다>에 쓰인 인형 전체 사진. 책읽는곰 제공

■ 제2, 제3의 <구름빵>은 계속 생겨난다

한솔과 백희나 작가 사이의 법적 공방의 끝은 대법원이 내릴 것이다. 과거 계약을 무효로 만드는 판결을 대법원이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림책 작가’의 열악한 권리와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직도 많은 신인 작가들이 이같은 ‘저작권 매절 계약’을 맺고 있으며,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는 지난 2월 성명을 내고 “전집과 지식정보책을 출판하는 다수의 아동물 출판사들은 당당하게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하는 계약서를 작가 앞에 내민다”며 “저작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하여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하는 신인 작가들에게, 생계를 걱정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관행과 힘의 논리로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서를 내미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차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한 모든 저작재산권을 영구적으로 모두 양도하라는 계약서에 날인한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가 힘겨운 소송 중에 있는 현재에도 제2, 제3의 백희나는 양산 중에 있다”고 밝혔다.

각종 그림책 공모전도 ‘대놓고’ 일정 기간 저작권 양도를 조건으로 내건다. 천재교육, 천재교과서, 해법에듀가 주최하고 ‘밀크T’에서 주관하는 ‘밀크T 창작동화상’은 올해로 2회를 맞는다. 공모 요강엔 “수상작에 대한 포괄적인 사용 권한 및 권리(출판권, 저작재산권 포함)는 향후 7년간 주최사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같은 불공정 조항 때문에 지난해 수상자로 꼽힌 작가가 수상을 거부해 수상자가 교체되기도 했다.

또한 MBC 창작동화대상 또한 공모요강에 “입상작에 대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저작권은 발표일로부터 5년간 (주)문화방송에 귀속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상은 금성문화재단과 MBC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정부가 후원하는 문학상이 저작권 양도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인데, 문체부는 뒤늦게 “금성문화재단에서 문체부 승인을 받지 않고 후원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세계적으로 도약하려는 작가가 자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에 대한 저작권 문제로 고통을 겪으며 창작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작가의 창작의욕과 직결된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발돋움할 계기가 된 것인데 작가가 16년 동안 한 가지 문제로 메달려 있는 건 창작하기 힘든 조건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린드그렌상 심사평처럼 그의 작품은 “경이롭다.” 손으로 만들어 찍은 영상이 주는 입체감,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 그 판타지가 건네는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가 백희나를 한국을 넘은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다. 백희나가 부디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경이로운’ 작품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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